NMD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2000-09-04 박혜경 기자
빌 클린턴 대통령이 국가미사일 방어(NMD)체제 추진 결정을 차기 정부로 넘기기로... 빌 클린턴 대통령이 국가미사일 방어(NMD)체제 추진 결정을 차기 정부로 넘기기로 발표하자 러시아, 중국 EU등이 일제히 이를 환영했다. 이는 현재 미국 대선에서도 고어와 부시의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고어는 클린턴의 이번 결정을 반기며 무리한 추진을 반대하고 있고 부시는 이의 강력한 추진을 주장하면서 이를 계기로 보수주의 세력을 반고어로 몰아 가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이 NMD구상의 주요 타겟 중의 하나가 바로 북한이고 이는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데도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NMD 반대 시민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입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글을 여기에 싣는다.
NMD-TMD 저지를 위한 동아시아 연대 모색
G8 정상회담이 열린 오키나와. 일본 전체 영토의 0.6%에 불과한 땅에 주일미군 75%가 몰려 있는 곳이다. 주요 8개국의 정상들은 애써 이 문제를 외면했지만, 회담장 밖은 "기지와 이라나이(기지는 필요없다)"라는 함성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회담 첫 날인 7월 21일에는 미국의 아시아 최대 공군기지인 가데나 기지를 2만 7천여명의 주민과 세계 각지에서 모인 활동가들이 포위하였고, 회담 마지막 날인 23일에는 후텐마 공군기지 이전 지역으로 확정된 나고시 헤노코 해변에서 '니라이카나이 축제'가 열렸다. 니라이카나이는 오키나와도 류큐도 아닌 '우르마' 시대의 말로써 '바다 멀리에 있는 영원한 평화의 땅'을 뜻한다. 4명 중 1명이 죽었다는 오키나와 전쟁에서 아버지와 남편을 잃은 여자들은 "바다는 생명"이라며 결사적인 투쟁의지를 춤과 노래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오키나와 주민들의 간절한 염원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냉전 시대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그리고 그 망령은 이제 막 따뜻한 화해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한반도에도 찬바람을 몰고 올 지 모른다. 망령의 실체는 냉전의 종식과 함께 '에피소드'로 사라질 것처럼 보였던 미국의 스타워즈, 즉 국가미사일방어(National Missile Defence : NMD)와 전역미사일방어(Theater Missile Defence : TMD)이다. 돈도 있고 기술도 있는 미국의 냉전주의자들에게는 '꿈같은' 스타워즈 구상을 실현하는 것이 즐거운 일이 될 지도 모르겠지만, 대다수 국가와 민중들에게는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세계의 상당수 국가들과 평화주의자들이 연일 미국의 NMD를 성토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북한을 비롯한 깡패국가들(Rogue states)로부터 미국 본토와 해외주둔 미군, 그리고 동맹국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추진되고 있는 NMD와 TMD는 갈수록 궁지에 몰리고 있다. 위협의 수준, 기술적 신뢰도, 예산, 국제사회의 반응 등을 고려하여 NMD 배치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클린턴 대통령에게 어느 것 하나 유리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가장 임박한 직접적인 위협국가로 묘사되어온 북한은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국제사회에 화려하게 데뷔함으로써 '북한위협론'이 갈수록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고, 3차례의 실험 중 최근 2번이 실패함에 따라 군사과학기술주의의 환상을 갖고 있던 미국 국민과 언론에게도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더구나 요격미사일은 탄두와 교란체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치명적인 기술적인 결함을 보이고 있다. 예산 문제 역시 만만치 않다. 당초 300억달러 안팎이 소요될 것으로 보였던 미사일요격망 구축에 최소 600억달러가 들어간다는 의회예산국의 연구조사보고서가 나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조시 부시 2세 공화당 대선 후보가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는 해상과 우주 요격시스템 구축에는 1200억달러 이상이 투입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학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만큼 유래 없는 호황을 누려온 미국이지만, 갈수록 벌어지는 빈부격차와 열악한 사회복지 시스템을 악화시키면서 스타워즈를 구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국제사회의 반응은 더욱 난감한 문제이다. 일본, 대만, 이스라엘, 호주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명시적, 묵시적으로 NMD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중국의 반발은 예상된 일이었지만, 믿었던 NATO 동맹국들 마저 미국에 등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적어도 NMD문제를 놓고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왕따'당하고 있는 것이다.
스타워즈와 한반도 평화
최근 한국신문의 국제면에는 NMD 관련 뉴스가 눈에 많이 띤다. 그러나 이 문제가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유럽 등 강대국간의 '그들만의 리그'라는 느낌만 줄 뿐, 이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제대로 지적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 냉전구조의 속성을 유심히 들어다보면 스타워즈가 단지 '별'들의 전쟁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0년전의 한반도와 세계 시각의 비동시성이 국제적 수준의 냉전구조의 해체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냉전이 지속되었다는 특징을 나타냈다면, 21세기의 비동시성은 남북한의 화해와 국제사회의 긴장고조간에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반도 냉전구조의 국제적 성격, 특히 최근 주변 강대국의 치열한 외교 각축전을 감안할 때, 우리는 NMD와 TMD의 위험성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첫 번째로 지적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위험성은 NMD와 TMD가 한반도 분단과 전쟁, 그리고 적대적 대립 관계의 구조적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국제적인 수준의 냉전구조'를 불러오고 있다는 점이다. 냉전 해체이후에도 여전히 강력한 동맹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미일, 한미 동맹에 대해 동아시아 구사회주의 동맹국인 북한, 중국, 러시아는 경계의 눈빛을 보내왔다. 그런데 NMD와 TMD의 강력한 명분이 되어왔던 '북한위협'이 상당 부분 허구로 드러나거나 해결 국면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미사일방어망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이들 국가의 반발은 동맹체제의 부분적인 복원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분석은 다음과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 전개 가능성에 의해 뒷받침된다. 미국의 NMD 배치 결정→러시아 핵폐기 중단 및 중국의 핵전력 강화→일본의 TMD 배치와 핵무장론 부상, 그리고 한미일군사동맹체제 강화→북한-중국-러시아 군사동맹관계의 부분적 복원→주한·주일미군 전력 강화 및 미국 군사력의 전진 배치→동북아 신냉전 도래. 물론 냉전시대에 비해 이념적 대립의 성격이 상당 부분 이완되고 경제적 실익을 중요시 여기는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과거와 같은 강고한 군사동맹체제가 부활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부분적인 냉전의 부활만으로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더욱 험난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두 번째로 각종 인권침해와 환경오염, 그리고 주권침해 등의 문제로 논란이 일고 있는 주한미군의 주둔을 영속화할 근거를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동북아 세력균형과 군비경쟁 억제를 위해 한반도 통일이후에도 미군을 주둔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으나, NMD와 TMD 추진을 비롯한 미국의 패권주의적 동아시아 전략이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본질이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동북아의 안정을 해칠 수 있는 미사일방어망을 추진하면서 동북아 안정을 위해 미군을 계속 주둔시킨다는 발상은 '병주고 약주며' 사실상 동아시아를 관리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마지막으로 NMD와 TMD가 야기하는 동북아의 군비경쟁 메커니즘이 남한의 군비증강 필요성에 대한 강력한 외부적 압력으로 작용함으로써 주변 강대국과의 군비경쟁에 휘말릴 위험성이 있다. 주변국가의 군사력 강화와 대한반도 영향력 확보 경쟁은 남한 국민들 사이에서 외세에 의한 식민지배와 분단이 심어준 역사에 대한 피해의식을 되불러옴으로써 군사력 증강을 요구하는 대내적 압력과 상승작용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남한이 주변국가에 대응해 군사력을 증강한다면, 북한과의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축협상에 근본적인 장애요인이 될 것이며, 이것은 또 다시 주변국가에게 군비강화의 구실을 제공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가 개선되어 평화가 정착되고 통일로 향한다는 것은 분단과 전쟁, 그리고 적대적 대립이라는 비정상적인 상황의 극복을 의미한다. 이것은 동시에 국가안보를 이유로 정당화되거나 묵인되어온 민족적, 개인적 권리를 되찾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주한미군 역할의 전면적인 재검토를 비롯한 한미관계의 재정립, 날로 악화되는 삶의 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국방비의 감축, 그리고 개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인생의 황금기를 군대에서 보내야 하는 현행 병역제도에 대한 개선 등도 예외일 수 없다.
한국위원회의 결성과 동아시아 연대의 추진
지난 7월 18일과 27일에는 평화·통일·환경 단체 등이 모여 'NMD-TMD 반대 한국위원회' 결성에 합의하였다. 늦은 감이 있지만, 범세계적인 이슈에 한국 NGO들이 공동 대응하기로 한 점은 우리 운동사에서 적지 않은 의의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아직 연대기구의 구체적인 틀은 마련되지 않았으나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어 그 파장이 주목되고 있다. 우선 8월 10일경에는 국문과 영문 사이트를 개설하여 단체들간의 활발한 사이버 연대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8월 22일에는 NGO 활동가를 대상으로 이삼성 카톨릭대 교수의 강연회와 토론회가 예정되어 있고, 9월 중순에는 심포지엄을 개최할 예정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스타워즈 반대 세계 행동의 날'인 10월 7일에는 'NMD-TMD 철회 촉구 대회'를 열 계획이다.
동아시아 연대 추진 움직임도 활발하다. G8 정상회담이 열린 오키나와 NGO 대회에서 미군문제가 주된 이슈로 다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미국의 동아시아전략의 문제점에 대한 공감이 이루어졌고, 미군주둔을 영속화할 수 있는 NMD, TMD문제에 대한 대응 방안이 논의되었다. 우선적으로 합의한 것은 두 가지이다. 아직 활동가들에게조차 생소한 문제인 만큼 관련 자료를 각국의 언어로 번역하여 인터넷 홈페이지 및 소식지를 통해 널리 알려내고, 10월 7일 세계 행동의 날에 서울, 도쿄, 오키나와, 타이페이 등에서 동시다발적인 집회를 추진하기로 한 것 등이다. 일본에서는 피스데포와 피스보트 등이, 오키나와에서는 한-오키나와 민중연대가 중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만의 경우에는 국민여론이 TMD에 우호적이기 때문에 연대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노동인권협회에서 대만 내 조직화를 추진해보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한국위원회에서는 연대의 정신과 파급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전세계 활동가들이 같은 옷을 입고, 로고와 슬로건을 통일시켜 같은 시간대에 기자회견과 집회를 열 것을 제안하기로 하고 구체적인 프로그램에 마련에 착수했다. 또한 10월 아셈 대회에서도 국제 심포지엄과 공동기자회견 등을 통해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여 NMD 클린턴 행정부와 대선 후보들에게 포기를 촉구할 예정이다.
이러한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NGO들의 NMD와 TMD 반대 연대의 태동 조짐은 이미 수년 전부터 이 운동을 전개해온 유럽과 미국의 NGO들과의 자연스러운 연대가 가능할 것으로 보여 클린턴 행정부를 더욱 곤혹스럽게 할 것이다. 특히 동아시아인들의 반대 운동은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미사일방어망을 추진한다"는 미국의 명분에 상당한 타격을 가할 것으로 보인다.
정욱식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시민네트워크 대표)
※평화네트워크에서는 세계평화운동단체의 연대회의체인 'Global Network Against Weapons and Nuclear Weapons in Space'와 함께 'NO BMD/NO STAR WARS'라는 슬로건을 걸고 전지구적 사이버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