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추석정국 구상-아직은 카드가 없다-

2000-09-09     박혜경 기자

강경대치가 계속되는 가운데 추석연휴를 맞아 여야가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당장은 타협을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관측된다.

정치권은 추석연휴 동안 특별한 계획 없이 연휴 이후의 정국구상에 들어간다. 민주당은 각 지역에서 정국 현안을 설명하는 한편, 한나라당 투쟁의 정당성을 홍보하고 지역민심을 파악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의 강경노선은 큰 이변이 없는 한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부 초·재선의원들을 중심으로 현 지도부의 안일한 대책을 비판하고 있고, 또 점차 그 목소리가 커가고 있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한나라당이 장외투쟁을 계속하고, 강경파가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대통령이 자리를 비운 상태에서 현 민주당 지도부가 정국 타개책을 적극 내놓을 수 없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대통령의 강경기조를 대통령이 없는 상황에서 바꿀 수 없는 것이 민주당의 현실이다. 물론 대통령이 미국에서 돌아와 추석연휴 동안 파악한 민심 동향을 종합 분석하고 한나라당의 대응을 고려해 새로운 대책을 세울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런 상황론적인 이유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여기서 한나라당에 밀리면 정권의 도덕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곧바로 걷잡을 수 없는 레임덕이 시작된다.' 는 민주당의 기본인식이다. 한빛은행 대출 사건도 만만치 않지만 부정선거문제는 하나도 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대통령으로서도 해답을 찾는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한나라당도 추석연휴 동안 대국민 홍보에 주력하면서 추석 이후 대여 투쟁 전략 구상에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추석이후 여당을 압박하기 위해 더욱 강경한 투쟁전략을 세울 가능성이 높다. 영남지역 대규모 집회, 이회창 총재 단식, 의원직 사퇴 등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나라당 내부는 강경노선이 주도해 나가고 있다. 타협을 통한 문제해결을 주장했던 온건노선이 서울역 집회 이후 크게 위축된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장외집회를 언제까지 계속할 수는 없다. 여권이 타협안을 제시할 준비가 되거나 대통령이 귀국후 대야 전술에 변화가 보인다면 한나라당 내부의 온건론 목소리에 힘이 실릴 수 있는 가능성도 내재해 있기는 하다.

여야의 치열한 대치국면이 고조되면 고조될수록 반대로 타협안도 힘을 얻기 마련이다. 서로 끝까지(?) 가지 않을 바에야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타협점을 찾을 것인지 서로 탐색을 하는 것이 순리다.

하지만 문제는 실현 가능한 '타협'의 카드가 각 당 내부에서 검토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윈윈'은 물론 '제로섬'의 방안도 찾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만에 하나 타협에 이르더라도 얼마나 갈지 모르는 불안한 것이 될 것이다. 국민들이 그런 타협을 반겨하며 박수를 쳐줄리도 없을 것이다. 국민들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여야 모두의 근본적인 반성과 혁신이기 때문이다.

여야대치 정국속에서 국회의원회관의 보좌진들도 국정감사 준비에 손을 놓고 있다. 예년 같으면 비록 국회일정이 불투명하더라도 추석휴가를 줄이거나 포기해 가며 국정감사를 준비했지만 올 가을은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고 보좌관들은 털어놓는다.

추석은 국회의원들에게도 찾아온다. 그들도 오랜만에 부모를 찾아뵙고 친지들을 만날텐데 무슨 얘기를 할까? 또 조상묘에 찾아가 무엇을 생각할까? 겸허한 자세로 고향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려고 할까?

정성스레 민심을 메모하는 의원들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남의 당이나 자기당의 지도부에게만 모든 책임을 돌리지 않고 나부터 이렇게 하겠다는 새로운 각오를 가지고 여의도로 돌아오기 바란다.

보름달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