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최고위원회 왜 이러나?
2000-09-19 박혜경 기자
'박지원 장관 용퇴론' 둘러싸고 최고위원간에 '진실게임'이 벌어졌다. 누가 진실이든 집권당 지도부가 국민을 우롱한 셈이 되었다.
사건의 발단은 9시간에 걸친 워크샵 직후 정동영 최고위원이 "(박장관이) 현직 장관을 유지한 상태에서 철저한 수사가 되겠느냐는 우려가 나왔고 대부분의 최고위원이 공감을 표시했다"고 공개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이 사실은 19일 조간 신문에 일제히 보도되었고 오후에는 '용퇴론'의 발언자는 정동영 의원 자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19일 아침 경제관련 긴급최고위원회를 전후 박병석 대변인은 물론 권노갑 최고위원과 김옥두 총장이 입을 모아 "워크샵에서 박장관의 진퇴를 둘러싼 논의가 전혀 없었다."고 해명에 나섰다. 서영훈 대표도 "개인사정으로 한시간 가량 자리를 비웠으나 그런 말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권노갑 최고위원은 더 나아가 19일 기자들에게 "혐의도 없는 사람이 무슨 사퇴냐? (박장관은 )혐의가 드러나면 할복이라도 하겠다더라. 21일 이운영씨가 검찰에 출두하고 의혹이 해소되면 박장관의 인권을 마구 짓밟았던 모든 언론은 미안해 할 것"이라며 박장관을 적극 옹호하고 나섰다.
그러나 익명 요구한 다른 최고위원은 "그런 발언이 확실히 있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었고 정대철 최고위원은 "공식석상이 아니었지만 누군가 그런 말을 한 것 같다."고 했다. 다른 최고위원들은 대부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얼버무렸다.
도대체 무엇이 진실인가? 정말 그런 발언이 없었을까? 당 주변에서는 정황으로 보아 최소한 "거론은 됐으나 적극적인 토론은 없었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다만 파장이 커지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덮어씌우려 한다는 것이다. 박장관의 용퇴 문제가 의원총회에서 다시 거론되고 최고위원들이 발언을 자제하면서 이 문제는 그냥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은 다른데 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역할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받고 있는 최고위원회가 이번 일로 그 신뢰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는 것이다.
9시간에 걸친 난상 토론 후에도 야당을 설득할 만한 결과를 내놓지 못한 것도 비판받아 마땅한데 같은 자리에 있던 최고위원간에도 말이 틀려 집권당 최고위원회로서 최소한의 권위마저도 무너졌다는 것이다. 더욱이 국민과 언론을 상대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저급한 거짓말을 늘어놓았다면 그것은 매우 부도덕한 행위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이날 의총에서 상당수의 의원들이 박지원 장관의 용퇴를 들고 나왔다. 자민련도 공식적으로 박지원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그렇지 않아도 부산 민심이 흉흉한데 한나라당이 가두행진까지 한다고 한다. 상황은 점점 민주당의 결단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