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주먹 Vs 철권 - 코스투니차 Vs 밀로셰비치
2000-10-07 박혜경 기자
유고의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하면서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유고대통령의 13년 철권통치가 마침내 종식...
지난 9월 24일 유고는 유고연방 대통령선거와 연방의회 및 각지방의회 총선을 동시에 실시, 야당의 보이슬라프 코스투니차 후보측이 57% 득표로 33%인 밀로셰비치를 물리치고 당선을 주장한 반면 정부측은 밀로셰비치가 44%, 코스투니차가 41% 를 득표했다고 주장하면서 당선논란은 시작되었다.
이틀 뒤인 26일 연방선거관리위원회가 코스투니차 48.96%, 밀로셰비치 38.62% 득표로 1차투표 당선자(50%이상 득표자)가 없어 2차투표 실시한다고 발표. 코스투니차는 투개표 부정을 주장하였다.
이후에도 선관위기 결선투표 강행을 천명하자 야당은 전국적인 시민불복종 운동을 이끌면서 10월 4일에는 파업광부까지 합세하여 전국적으로 30만명 이상이 시위에 참가하게 되었다.
결국은 10월 5일 수십만 유고 시위 군중들은 연방 의사당과 국영TV방송 점거하고 밀로셰비치 퇴진 요구을 요구하게 되고 밀로세비치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 피신하게 되었다.
맨주먹으로 철권을 무너트린 보이슬라브 코슈투니차(56) 세르비아민주야당(DOS) 당수는 베오그라드대학에서 법학과 철학을 공부한 전직 변호사로 부패 스캔들에 연루되지 않은 몇 안되는 정치인 중 한사람이다. 외양은 조용하고 침착하다는 평이며, 온건 민족주의자로서 일찌감치 반(反)공산주의 투쟁에 앞장서면서 정치판에 뛰어든 인물이다.
1990년 민주당을 공동 창당했으나 당이 변질됐다는 이유로 과감히 뛰쳐나왔으며 1992년 세르비아민주당(DSS)을 창당, ‘민주화 투사’로서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며 투쟁을 벌여왔다.
특히 13년간 철권통치를 휘두른 독재자 밀로셰비치와 맞붙은 이번 싸움에서 당초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야당이 후보단일화에 실패, 제1야당 후보와 별도로 18개의 군소야당 연합인 DOS 후보로 출마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코 정권과 타협하지 않고 반(反)부패 선봉에 선 그는 곧 밀로셰비치의 독재를 꺾을 유일한 희망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신변 위협 등 온갖 압력이 쏟아졌으나 그는 결코 굴하는 법이 없었다. 지난 시대 밀로셰비치의 나팔수 역할을 해온 대부분의 유고 언론은 그에게 최대의 적군이었다.
유럽의 마지막 공산주의 독재자 밀로세비치의 몰락
반면에 밀로세비치는 1987년 코소보에서 세르비아인들의 반(反)알바니아계 정서를 자극하는 연설로 일약 ‘세르비아의 영웅’으로 떠오른 인물이다. 그러나 그가 세르비아인들에게 가져다준 것은 재앙이었다. 그의 집권이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가 91년 분리독립을 선언했다.
1995년 크로아티아에 거주하던 20만명의 세르비아계 주민들이 500년 전부터 살아온 고향에서 추방됐다. 그가 개입한 보스니아 내전으로 인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는 100만명의 세르비아인들이 유랑민으로 전락했다. 무엇보다 그의 코소보 자치권 박탈과 알바니아어 사용 금지는 결국 ‘인종청소’로 점철된 코소보 사태를 일으켰다.
코소보 참사는 한때 반(反)서방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밀로셰비치의 권력을 유지하는데 톡톡한 기여를 했지만 역사적으로는 용서받을 수 없는 비극이라는 지적이다. ‘영웅’ 밀로셰비치가 세르비아의 부흥보다 권력 유지에만 집착한 결과였다.
그는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코소보의 분쟁과 지난해 코소보 위기때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유고 공습, 뒤이은 국제사회의 제재, 야당의 축출시도 등 많은 정치 위기를 차례로 넘기면서 권좌를 유지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왔다.
그는 그러나 지난달 24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갖가지 부정을 저질렀다는 의혹속에서도 야당 연합 후보인 보이슬라브 코스투니차 후보에게 패배한 뒤 이 선거결과를 무효화시킴으로써 위기를 자초했다.
세르비아 동부 프로자레바치 태생인 그는 변호사 교육을 받고 산업계와 금융계에서 경력을 쌓았다.
최측근 보좌관역할을 맡고 있는 부인 미라 마르코비치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한 그는 개인적인 정력과 대중 웅변술로 1987년 티토가 만든 공산주의 동맹의 세르비아 지부장이 됐다.
그는 이어 유고에서 공산주의 통치가 끝난 뒤 1989년 세르비아공화국 대통령이 됐고 1997년에는 헌법에 의해 대통령 연임이 금지됐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장악한 의회에서 헌법을 고쳐 또다시 대통령에 당선됐다.
내년 6월로 임기가 만료될 예정인 그는 또다시 4년 더 대통령직을 유지하기 위해 이번에 조기 선거를 실시했다.
그는 1990년대 초반 유고슬라비아가 여러나라로 쪼개질 때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슬로베니아등지에서 세르비아 민족주의 반군들을 지원했다는 비난을 받았으며 지난해 6월에는 코소보 알바니아계 주민들을 학살한 혐의로 유엔 유고전범재판소에서 전범으로 기소된 상태다.
유고 야당 연합체인 세르비아민주야당(DOS)은 과도정부를 수립하다
밀로셰비치 정권의 붕괴가 거의 확실시된 지금 보이슬라브 코슈투니차 대통령 당선자는 주요 국가업무를 담당하게 될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가동에 들어갔다. 준(準)정부 성격의 이 비상대책위원회는 국방, 경찰, 공공설비, 경제 등 주요 국가업무를 처리하게 된다고 민영 베타 통신이 DOS 지도자 가운데 한명인 블라디미르 일리치는 전했다.
jchong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