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적이탈'로 정치개혁의 계기를...
2000-10-14 박혜경 기자
김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을 정치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대통령의 '당적이탈'을 통해 그 물꼬를 터야 한다는 구체적인 주문도 나오고 있다.
자신감 가지고 내치에 전념
여권은 노벨상 수상으로 국정운영에 보다 적극적으로 임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 동안 '내치에 소홀하다'는 비판이나 개혁 마무리에 대한 반발 현상이 일정정도 무마되고 여론통합의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고려대 함성득 교수는 "북-미, 남북, 동북아 정세 변화에 '노벨상'이 촉매작용을 할 게 분명하다"고 예상했다. 남북관계에 대한 국제적 공인을 받았기 때문에 대북정책에 속도를 붙일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더불어 야당에 대한 포용정책 기조를 강화하면서 경제문제 해결에 힘을 싣고, '국민통합' 정책을 새롭게 다듬어 집중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회창 총재는 김 대통령에게 전화을 걸어 "진심으로 축하한다"면서, "경제발전과 민생안정, 남북평화를 위해 역사에 길이 남는 대통령이 되도록 노력해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대체로 김 대통령이 남북관계에 대한 성과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듯이 국내문제에서도 인정받기 위한 노력을 경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정운영의 큰 틀은 변하지 않고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4대개혁 완수, 국민통합 등을 위해 주력하고, 대북정책에 자신감을 갖고 적극 추진해 나가리라는 것이 중론이다. 이와 관련해 박준영 청와대 대변인은 "국정운영과 노벨상 수상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우려
그러나 한나라당은 겉으로는 축하하지만 내심 김 대통령이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전권을 휘두르려 할 것을 염려하고 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노벨상을 내세워 여야관계와 대북정책을 밀어붙일 경우 정국은 더욱 꼬일 것"이라고 말했다. 노벨상의 권위를 앞세워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의 유혹에 빠질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 여권에서도 이점을 우려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렇듯 정가에는 김 대통령이 정국운영의 기본틀을 재구성할 것이라는 관측이 돌고 있다. 하나는 김 대통령의 친정체제를 더욱 강고하게 구축해 강력한 여권 중심의 국정운영을 풀어나갈 것이라는 예상이고, 다른 하나는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국민적 지도자로 새롭게 국정운영에 임한다는 구상이 그것이다. 민주당 내부에도 두 가지 기류가 나타난다.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정국운영권을 장악할 가능성
민주당 관계자들은 "소수정권의 한계를 느껴왔던 김 대통령이 자신있게 국정운영에 나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는 김대중 대통령이 이번 기회에 여권의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국정운영 전반에 대해 직접 관여하면서 친정체제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사실 민주당의 당직개편에서 비주류의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동교동 가신중심의 당직을 유지 강화했다. 임기 후반기를 맞아 김 대중대통령 중심의 친정체제로 더욱 고삐를 쥐고 정국을 운영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중을 일부 보였다는 분석이다. 이는 더욱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정국운영의 중심에 설 때 정권재창출도 가능하다는 기본 생각에서 기인한다.
여야 영수회담 전까지 대통령은 정국운영에 야당이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왔다고 판단했었다. 대북정책, 경제정책, 여야관계, 4대개혁 과제 등에 대한 야당의 비판은 대통령으로서는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러한 구상이 현실로 나타날 경우에 대해 우려감도 크다. 서울대 장달중 교수는 "김대통령이 자신감을 갖고 국내문제로 확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후에도 4대 개혁이 지연되거나 경제문제가 풀리지 않고, 영남민심이나 보수층의 비판이 계속될 경우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의 유혹에 빠질 가능성도 크다는 것이다.
야당뿐만 아니라 민주당 내부에서도 같은 요구가 제기될 가능성도 많다. 한나라당의 대여투쟁을 강화하고 민주당 비주류가 민주적 당운영을 주장하고 나올때 대통령이 사면초가에 빠질 수도 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한나라당 주변에는 김 대통령이 노벨상 수상이후 한나라당 의원들에 대해 사정작업에 착수하고 당을 분열시키기 위한 모종의 작업에 들어갈 것이라는 설이 돌고 있다"고 전한다. 한나라당도 매우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정가에 '야당 10월대란설'이 돌기도 했었다.
김 대통령이 일방적 국정운영 스타일로 변화할 경우 국론분열과 정국혼란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고, 대통령이나 정권재창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견해가 중론이다. 익명을 요구하는 한 최고위원 측근은 "여야관계를 무리하게 조정하려 하기보다는 4대개혁을 완수하는데 노벨상의 권위를 활용해야 대통령이 성공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당적이탈을 통해 국민적 지도자로 나서야
한편으로는 김 대통령이 정파적 부담을 벗고 큰 정치로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민주당 관계자도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정국운영 전략이 바뀔 것이며, 김 대통령은 탈 정파적 입장에서 큰 틀의 정치를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당적 이탈까지도 상정하고 있는 견해다. 보다 높아진 대통령을 위상을 최대한 살려 국내 여야관계에서 한발 물러나 여야를 모두 포용하고 국론을 통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대승적 차원의 문제다.
민주당 일부에서는 "대통령이 국민적 지도자로 역사에 남기 위해서는 경제문제 및 민생안정을 위한 내치에 전념하고, 외교와 남북관계에 집중하면서 국민적 통합을 이루어 내야 한다"고 제기한다. 또 "여야관계에서 한발 물러나 국정을 운영해야 대통령에게나 민주당에 도움된다"는 견해다. 이럴 때 여권의 정권재창출이나 정치개혁에 긍정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 판단에는 김 대통령이 일방적 힘에 바탕한 정국운영으로 나타나는 여야대립이나 정치혼란이 장기적으로는 대통령과 민주당에 부담을 안겨줄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있다. 더욱이 수상의 분위기가 가시기 시작하면 '노벨상을 받기 위해 저자세적인 대북정책을 펼쳐왔다'는 보수집단의 공격이 시작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있는 것 같다.
민주당 박인상의원은 "수상이 멍에가 될 수도 있는데, 앞으로 대통령이 할 일은 내치이며 경제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힘에 바탕한 무리한 정국운영이 대치상황을 우려한 말이다.
서울대 오연천 교수는 "소위 당파적 지도자에서 국민적 내지는 공익적 지도자로 변화할 수 있는 계기를 확보했다"면서, "정치적 경쟁자로서의 대통령이 아니라 경제위기 극복과 민주주의와 인권이 한국의 국가발전으로 마무리할 책무를 가진 지도자로서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현재 여권의 핵심부는 당적 이탈 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이다.대통령이 당을 장악하지 않고서는 개혁을 이끌어 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정권재창출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대통령 아니면 누가 주도해 나갈 수 있겠냐는 것도 분명한 이유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인식이 그간 여야의 갈등을 심화 시켜왔고 정치발전을 막아왔다는 시각도 무시 할 수 없다. 대통령의 대승적 결단이 야당의 '발목잡기' 명분을 없애고 정치문화를 획기적으로 개선 할 것이며
정권재창출도 오히려 지금보다 그 가능성을 높여 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점이 해결되지 않으면 각종의 사회통합 정책의 효과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김대통령의 '당적 이탈'은 정치적 '手'의 수준이 아니라 정치문화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혁명'이 될 것이라는 기대다. 사실 대통령에 의해 만들어지는 이러한 극적인 계기없이 도대체 어떤 다른 과정을 통해 한국정치가 개혁될 수 있겠느냐는 절실한 인식도 깔려 있다.
어쩌면 일부에서는 정치 현실을 무시한 주장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는 이런 제안에 대해 대통령과 그 주변 모두의 진진한 검토가 필요하다.여권 만이 아니라 야당도 이를 정략적인 공세로 활용할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스스로의 변화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