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복잡해지고 있는 남·북·미 관계

2000-10-28     박혜경 기자

북한이 2차 이산상봉자 명단과 일정을 전격 통보함에따라 소강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알려졌던 남북교류가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미국은 '북의 가시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여론으로 클린턴 방북을 신중하게 판단하고 있는데 남`북`미 관계 변화 방향은?

북한이 27일 판문점 남북 적십자 연락과 접촉에서 11월 30일부터 제2차 이산가족 교환방문을 실시하고, 11월 8일부터 11일까지 남북경협 실무접촉도 평양에서 갖자고 전격 제의해 오고 우리정부가 이를 받아들였다.

이로써 노동당 창건 55주년 기념식, 북미회담 등 북한 사정에 의해 소강상태에 빠졌던 남북교류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동안 북한이 이미 계획되었던 남북교류일정을 아무런 해명없이 지연시키자 국내에서는 "남북교류 추진 인력 부족으로 일정이 잠시 미뤄지고 있다"는 해석과 "북미회담이 급진전되면서 북한이 '통미봉남' 또는 '경남통미' 전략을 구사하기 위한 조정기를 갖는다"는 해석이 크게 대립해 왔었다.

이러한 논쟁에 대해 부담을 느낀 듯 박재규 통일부장관은 26일 세종대 세종연구원 주최 조찬강연회에서 "제주에서 열렸던 제3차 장관급회담에서 북측이 인력부족 등을 이유로 내년 봄까지 일정을 늦춰줄 것을 통사정해 남북학생교류, 경-평축구 부활 등을 추후 정례화 하겠다는 이면 양해각서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 양해각서 문제는 통일부 대변인이 "남북이 내년에 방문단 교환 등을 추진해 나가기로 양해했으나 양해각서는 없었다"고 말을 바꿨다.

또 박 통일부장관이 남북교류일정이 내년봄으로 늦춰질 것이라고 말하고 나서 하루만에 북한이 2차 이산가족 상봉자 200명 명단과 함께 일정을 통보함으로써 박 장관의 발언 진위가 논란이 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박 통일부장관이 나서기를 좋아하는 개인적 성향 때문에 나타난 말실수'라는 지적도 있고, '북미관계에 밀려 남북관계가 소원해지는 것 아니냐'는 일반의 우려와 인식을 불식시키려는 의도가 오히려 불신만 가중시켰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통일부와 국정원이 손발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사실 대북정책은 국정원이 주도하고 있어 대북교류 창구를 전담하다시피 하고 있다고 알려져 왔다. 이 때문에 대북관계를 앞에서 주도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주무부서인 통일부로서는 대북 정보부족으로 인해 어려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닐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박 장관의 실수로 보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남북문제를 책임지고 추진해 나가는 최고 책임자인 박 장관이 남북관계 일정이나 추진방향에 대해 전혀 알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는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비판하고 나서기도 했다. 박 장관은 이래저래 대·내외적으로 신뢰를 잃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동안 약속을 어겼던 북한이 아무런 해명도 없이 불쑥 남북교류 일정을 통보한 것에 정부가 전혀 따지지 않고 그 일정을 받음으로써 북한에 끌려가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정부의 신중하고 치밀한 대북정책이 요구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특히 남북문제는 국론을 통합하고, 또 국민을 설득해야 할 부분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설득해 추진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이나 추진 방향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상실하면 남북관계 추진이 매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북한의 제의를 정부가 받아들임으로써 일시 중단되었던 남북교류가 다시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방북에 이어 클린턴 미국대통령이 조만간 북한을 방문하고 북미관계가 급변할 것이라던 전망이 클린턴 방북에 대해 미국 여론이 부정적으로 돌아서고 있어 클린턴 방북을 통한 북미관계의 급속한 변화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LA타임즈는 25일 사설을 통해 "클린턴 대통령은 북한이 미국과 아시아 우방의 관심사를 만족시키는 가시적이고, 검증가능한 구체적 조치를 취할 경우에만 방북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면서 "클린턴 대통령이 방북을 서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워싱턴 타임즈도 "클린턴은 미사일 문제 등을 놓고 구체적인 결과가 미리 보장만 된다면 평양 방문에 나서야 한다. 북한을 상대하는데는 불확실성이 도처에 깔려 있다"고 지적했다. 또 프랑스 르몽드지는 "북한이 미사일 생산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렇듯 유럽이나 미국내에는 "북한이 실질적인 변화가 없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그래서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이 시기상조'라는 비판적 여론과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방북이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으로 직결될 정도의 성과가 없었음을 지적하는 여론이 높다고 전해진다.

올브라이트도 25일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과 관련해 "미국내 여론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백악관은 26일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방북결과를 평가한 후 1개월 내에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때문에 미국이 다음주 초에 열릴 북미 미사일전문가회의에서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나오지 않는 한 클린턴 방북은 불투명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클린턴 행정부가 11월 7일 있을 미국 대선에 미칠 영향을 고려한 신중한 판단이 필요할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북미관계의 진행정도 및 그 속도가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두고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