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주, 국민의정부를 취하게 하는 독약

2000-11-04     박혜경 기자

이정빈 외교통상부 장관이 기자들과 폭탄주를 마시면서 한 여성비하 발언과 외교적 마찰을 가져올 취중농담으로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 더 나아가 장관으로서의 자질문제까지 거론되고 있는데 김대중 대통령에게는 또하나의 짐이될 것으로 보인다.

이정빈 외교통상부 장관이 지난달 외교부 간부 및 출입기자들과의 '아셈 뒷풀이' 저녁을 하면서 폭탄주를 돌리고, 여성에 대한 성적 비하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를 통해 공개돼 파장이 일고 있다. 더욱이 고위공직자들의 비리 및 정치권 실세들의 비리 의혹은 집권후반기를 맞는 김대중 정부의 국정운영에 큰 차질을 빚게 하고 있으며, 국민의 정부로부터 국민을 떼어놓는 또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시민운동 단체 관계자들은 아무리 술자리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다"며 이정빈 장관의 자질에 대한 문제제기하면서 장관직 사퇴여론도 일고 있는 실정이다.
김형완 협동사무처장은 "공직자로서의 자질 미달이다. 언론과 고위공직자 술자리 문화의 도덕적 파산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이다"고 비판했으며, "이를 문제삼지 않은 언론이 더 큰 문제다"며 사회적 감시자의 역할을 해야할 언론의 도덕성 상실을 지적했다.
김경숙 여성단체연합 정책부장은 "남성위주 문화가 뿌리깊은 우리사회에서 이 같은 일은 비일비재하다"고 전재한 뒤 "고위공직자로서의 기본자질을 의심케하는 이런 언행은 비판받아 마땅하며, 당사자는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3일 외교부 국정감사에서도 이 장관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았다.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은 이 장관에게 "국민을 향해 소명한다는 마음으로 오마이뉴스의 보도내용에 대해 답하라"고 물었다. 이에 이 장관은 "상당부분 왜곡되고 사실이 아닌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외교를 맡고 있는 사람으로서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었고, 내가 부도덕하고 변변치 못한 것에 연유합니다"고 사과했다.

술자리에서 고위공직자들의 실수나 추태가 사회문제화 된 경우가 많다. 99년 6월 진형구 당시 대건 공안부장은 폭탄주에 취해 "조폐공사 파업은 사실 우리 검찰이 유도한 거야"라고 말한 사실이 언론에 공개돼 정치쟁점화로 그는 결국 구속까지 되는 신세였다.
고위공직자의 성적 비하성 발언이 문제되기도 했다. 환경부 소속기관인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 김시평 위원장(1급)이 기자들과 폭탄주를 마시면서 김명자 환경부 장관을 가리켜 "우리 아키코상은 미인"이라고 하고, 여기자에게 " 여자가 안경을 쓰면 매력이 50%이상 떨어지니 벗고 다녀라"는 등의 발언으로 사회문제화 되었고 그는 사퇴하고 말았다.

하지만 오마이뉴스가 너무 나갔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특히 올브라니트 국무장관에 대한 발언은 외교문제화 될 수 있는 사안으로 국가적 이익을 생각한다면 공개하지 않는 것이 더 옳았다는 판단이다. 이 장관의 발언은 문제지만 더 큰 국익적 차원에서는 신중하게 처리했어야 한다는 비판이다. 한나라당 김원웅 의원은 외교부 국감에서 "직업외교관의 가장 큰 덕목은 세련된 매너와 격조있는 언어다. 그것이 외교부의 전통과 자랑이 될 수 있게끔 해달라"고 주문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찬반논쟁이 거셌다. 특히 "사석에서의 취중농담을 공개한다는 것은 사생활침해요. 이 문제에 대한 공익적 접근 또한 무리가 있다"는 반론도 많다.

아무튼 고위공직자들이 폭탄주를 즐기면서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여성 비하성 발언과 취중 진담으로 인해 사회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은 남성 우월의식이 만연한 사회에서 교육을 받았고, 변화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해석된다. 아직도 그들은 유교적 가치관 속에 시대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특히 고위공직자의 경우 국가정책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주요 인물들로서 이들이 사회적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적응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문제다. 이들의 머리에서 무슨 미래에 대한 비전이 나오고 국민을 위한 정책이 나올 수 있겠는가.

이 장관의 설화사건은 또다시 국민들에게 김대중 정부의 개혁정책을 추진하는 책임자들의 자질과 도덕성에 대한 회의감을 자아내고 있다. 금감원 비리, 여권실세의 정현준씨 사설펀드 가입 의혹 등 계속 터지는 정부관료와 여권인사들의 비도덕적 처사는 그렇지 않아도 집권후반기에 들어 힘겹게 추진하는 국정운영에 큰 타격을 주는 사건으로 작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