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농민은 영호남이 따로 없었다

2000-11-22     박혜경 기자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들은 21일 전국의 고속도로를 점거한채 정부의 '농정실패'를 비판하는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38조원에 이르는 '농가부채 경감을 위한 특별조치법' 제정을 요구하는 전국의 농민들은 영호남이 따로 없었다.

경부, 중부, 호남고속도로와 국도 등 정국의 주요 도로가 때아닌 극심한 교통대란이 일어났다. 전국 농민들이 정부의 '農政실패'에 따른 분노가 폭발하면서 전국의 도로를 점거하고 38조원에 이르는 '농가부채 상환유예'를 요구하는 격렬한 시위를 벌였기 때문. 한나라당도 농가부채경감법을 조속히 제정할 것을 촉구함에 따라 정부의 '농정실패'에 따른 농민들의 불만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 등 전국 21개 농민단체 회원 수만명이 21일 전국 172개 시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농가부채 특별법 제정을 위한 100만 농민 총궐기 대회'를 열고, 정부는 농가부채 상환을 유예하고 이자를 감면하는 내용의 '농가부채 경감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하고, '농축산물의 가격을 보장하라'고 주장했다.

집회에 이어서 농민들의 불만은 고속도로 점거로 이어졌는데, 경남북지역에서는 경부, 남해, 88고속도로를 트럭으로 점거, 충청지역은 경부, 중부고속도를 점거, 전남북지역에서는 트랙터와 트럭으로 국도를 점거하는 한편 민주당 지구당사 앞에서 시위하는 등 전국적으로 번져 곳곳에서 극심한 도로정체로 이어졌다.

농민단체는 이미 정부의 농가부채 경감 기본계획안은 "정부가 책임을 농민에게 전가하는 계획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17일부터 민주당 총재실 점거농성을 시작으로 농협중앙회에서는 단식농성을 벌여 왔었다.

농민들은 "농가부채는 농정실패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농가가 상환능력을 회복할 때까지 상황을 유예시킨 뒤 정책자금은 장기분할상환을, 상호금융은 정책자금 수준의 금리인하를 통해 부채를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오는 24일 서울에서 다시 전국 농민대회를 열 개획이어서 농민들의 움직임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한갑수 농림부장관은 "농민단체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서는 45조의 재정이 소요된다"고 "특별법 제정은 농가부채가 법의 문제가 아닌 재정·금융 체계상의 문제라는 점에서 반대한다"고 못박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민주당은 22일 농어가부채경감대책특위(위원장 김영진 의원)를 설치 농어가부채경감특별법 제정이나 별도의 정책수단을 검토키로 했다.

한편 한나라당도 농민들의 대규모 시위와 관련해 농가부채경감법 제정을 통해 사태를 진정시킬 것을 여당에 촉구하면서 "민주당이 적어도 법제정에 동의를 표시한다면 농민시위는 크게 진정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15일 농림부가 농가부채 경감대책안을 내놓았는데 이번이 '국민의 정부' 들어 다섯 번째 부채경감 조치임에도 농민들은 계속해서 부채에 시달려왔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서는 돼지고기 값 폭락, 무·배추 등 채소 값 폭락 등으로 농민들은 정부'農政'에 대해 극심한 불신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농가부채의 대부분이 부농의 시설 과잉에서 파생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계속된 농가부채경감 대책은 부농의 부채를 경감해주는 방향으로 추진돼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임재형 기자jhlim21@ewinc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