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비어 단속 방침', 유신시대 망령이 되살아 나는가

2000-11-30     박혜경 기자

최근 경찰청의 '악성 유언비어 단속 방침' 발표를 놓고 시대를 거꾸로 돌리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인권대통령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인권침해라는 목소리도 커지는데, 경찰청이 국민에게 사과하고 사태를 시급히 수습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경찰이 남북 화해 분위기, 경기침체 등과 관련된 각종 악성 유언비어에 대해 경찰력을 총동원,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겠다고 밝혔는데, 이에대해 시대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는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특히 인권 대통령으로서 노벨상까지 수상한 '국민의 정부'에서 인권유린의 대표적 사례로 기록될 상황에 처한 것이다.

경찰청은 지난 28일 "정치·사회에 불안감을 조성하고 경제질서를 교란시키는 등 시중에 악성 유언비어 유포행위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판단, 연말까지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단속활동을 펴겠다"고 밝혔다.

중점단속 대상은 공공부문 개혁에 따른 노사분규, 파업 등 조장행위, 금융가에 조직적으로 유언비어를 유포 시장경제를 어지럽히는 행위, 최근 벤처기업 등의 불법대출에 따른 정부 금융정책 비난행위 등이다.

덧붙여 경찰청은 이 기간 동안 전국의 수사·방범·정보·파출소 외근직원 등을 총동원, 유언비어 유포에 대한 다각적으로 첩보를 수집하는 한편, 역, 터미널, 공항, 시장 등에서 불특정 다수인을 상대로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행위를 엄중 단속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찰청의 발표를 보고 많은 사람들은 "마치 70-80년대로 뒤돌아간 느낌을 받는다"고 말한다. 군사독재 정권에서 국민의 눈과 귀를 막기 위해 걸핏하면 '유언비어 엄단' 운운하며 전가의 보도로 사용했던 것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경찰청의 '유언비어 단속방침'을 보고 유신시절 '막걸리 보안법'이 생각났다"면서 경찰의 발표에 거부감을 나타냈다. 언론들도 사설을 통해 '시대착오적 방침'이라 고 맹비난 했다.

그러나 민주당 한 관계자는 "지금 시대에 '유언비어 단속'이 말이나 되겠느냐"면서 "경찰의 발표는 조직적이고 의도적으로 사회불안을 조장하는 행위에 대한 단속이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일부 언론이 경찰의 발표를 확대 왜곡 보도하고 있는 경향이 강하다"며 언론의 비이성적 보도 행태에 대해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이 공공부문 노사분규, 파업 등의 조장행위를 엄단하겠다는 것은 이미 정부정책에 대한 찬반논란이 일고 있고, 실업대란에 대한 위기감 속에서 엄연히 파업권을 가지고 있는 노조를 탄압하려는 의도로 해석되는 무리한 발표라는 지적이다.

또 벤처기업 불법대출사건과 관련한 정부의 금융정책 비난행위도 단속대상에 포함시키겠다고 했다. 금융사건이 잇따라 터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관계 연루설이 국회에서까지 논란이 된 마당에 정부 금융정책에 대한 비난을 단속하겠다는 경찰의 발상 자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반정부적 발언을 공권력을 통해 막아보겠다는 충정(?)으로 밖에는 해석되기 어렵다. 특히 독재정권 시절에나 가능한 행위라 아니할 수 없다. 인터넷으로 하루에도 수많은 정보와 마타도어가 유포되고 있는데도 말이다. 아직도 경찰은 독재정권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것 같다는 해석이 많다.

정부에 대한 불만은 정치불안, 경제불안, 사회불안 등에 따른 민심의 현주소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민심을 공권력으로 막겠다니, 더욱이 불명확한 법적 조항을 근거로 단속하겠다고 나선 것은 "명백한 인권유린이다"는 목소리가 높다.

노벨상까지 수상하고 인권대통령으로써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이 경찰의 이러한 인권유린 행위를 허가했을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경찰의 발표 배경에는 집권여당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여권이 그동안 시중에 떠다니는 얘기나,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들을 모두 악의적 유언비어라고 몰아 붙이면서, 왜 그런 말들이 나오는지 원인을 찾아 문제를 풀려는 의지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집권여당의 자기중심적 사고에 매몰된 결과 경찰이 자기 손에 수갑을 채운 격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공권력을 동원해 강제적으로 사회불안 요인을 제거해보겠다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경찰은 즉각 '유언비어 단속' 방침을 철회하고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자칫하다가는 '인권대통령'으로 자부하고 있는 김대통령에게 화살이 돌아갈 처지에 놓였다.

국민의 마음을 얻으려면 유언비어 단속이라는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구시대적 방법이 아니라, 정부여당이 사회조정능력을 발휘해 막힌 언로를 풀고 국민의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할때, 시중에 떠도는 유언비어는 사라지고 여권에 대한 신뢰도 다시 회복될 것이다. 50년만의 정권교체요, 민주화의 완성이라는 국민의 정부에서 이에 대해 어떤 대책을 내놓을 지 두고볼일이다.

김영술 기자kimys67@ewinc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