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떨어져가는 남북관계

2000-12-15     박혜경 기자

북한 주적개념등의 문제로 제4차 장관급회담이 성과없이 끝날 것으로 보인다.또 부시행정부가 대북강경기조로 흐를 것으로 예상되어 향후 남북교류가 '저속기조'로 갈 것이라는데...

평양에서 열리고 있는 제4차 장관급회담이 15일 예정시간을 넘기면서 공동합의문 작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전망은 그리 밝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국방부의 2000 국방백서에 포함된 '주적' 표현을 문제삼고 있기 때문. 또한 북한이 남북교류의 속도조절에 들어갔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뿐만아니라 대북을 겨냥한 NMD에 적극적이고, 대북정책에 대해 당근보다 채찍정책을 쓸 것으로 보이는 부시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남북 화해분위기가 약화되어 갈 것으로 예상된다.

성과 없이 끝날 것으로 보이는 제4차 장관급회담

지금까지 합의사항없이 지지부진한 제4차 남북장관급회담이 성과없이 끝날 경우 올 남북교류는 일단 내년까지 휴지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이며, 당분간 남북은 내년 남북교류를 놓고 내부 논쟁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이번 장관급회담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은 이산가족 3차교환방문, 생사확인 및 서신교환, 3차 적십자회담, 북한 경제시찰단 방한, 경협추진위원회 구성, 서울·평양 축구경기 교환 등 일정을 결정하는 문제에 집중됐다.

그러나 북한은 원론적 입장에는 변함이 없으나 일정을 결정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장충식 대한적십자사총재에 대한 비난과 함께 국방부의 국방백서 '주적' 문제를 집중적으로 문제삼아 회담이 진척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의 소극적 태도로 남북교류 일정 계속 연기돼

또한 북한의 미온적 태도로 남북교류 일정이 계속 뒤로 미뤄지고 있다. 연내로 예상됐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방한도 이미 내년으로 미뤄졌고, 내년 봄 방한할 것으로 예상됐던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 역시 연기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히 북한이 남측의 대북정책에 대한 의구심도 완전히 씻어내지 못한 것도 큰 장애요인인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이산가족 문제 해결과 신뢰구축조치에 여전히 조심성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더불어 남북교류 추진 인력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이산가족 교환방문으로 북한 주민들의 사상적 기조가 흔들리고 있고, 보수세력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분석도 대두되고 있다.

남한도 남북교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르고 있다. 최근 경제불안이 가중되면서 여론이 급속하게 남북교류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고, 보수층의 지속적인 반대도 큰 부담이다. 남한에 경제지원을 바라는 북한에 대해 더 이상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다. 또 남한에서는 북한의 변화 여부에 대한 회의론도 확산되고 있다.

부시의 당선으로 남북 및 북미관계 개선, 미묘한 상황

더불어 북미관계 개선도 작업도 난항에 빠질 가능성도 보인다.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클린턴 정부에 비해 대북정책이 강경기조로 흐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 현재 부시의 외교정책이 전 정부에 비해 급속한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 평이지만, 부시가 '대북억제력 강화를 통한 포괄적 협상'을 주문한 '아미티지' 보고서에 기반해 대북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부시는 14일 발표한 당선 연설에서도 "우리와 우방의 가치에 충실한 초당적 대외정책을 만들 것이며, 우리는 모든 도전과 맞설 수 있고 모든 적보다 월등한 군대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힘의 우위를 통한 평화'라는 공화당의 정통적 외교관을 내비치기도 했다. 외교정책에서 클린턴 정부의 확연한 차이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특히 부시는 선거기간중 국가미사일방위(NMD)체제를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하였고, 미국 50개주는 물론 우방과 해외주둔 미군까지 보호할 광범위한 미사일방어망을 구축하겠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이 NMD체제는 중국, 북한등을 클린턴정부에서의 동반자관계를 완전히 부정하고 적대국으로까지 규정하는 군사대립적 개념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부시와의 합의 아래 내년 초에 클린턴이 평양을 방문할 일말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10월 급진전됐던 북·미관계 개선 작업에 약간의 조정기 도는 경색국면으로 들어갈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렇듯 급속한 진전을 보여왔던 남북 및 북미관계가 당분간은 속도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신지호 수석연구원은 "미국 새 정부의 대북정책이 어떻게 윤곽을 잡아나갈지가 현단계의 남북관계의 진전속도를 규정할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으로부터 안전보장을 받은 뒤에는 북한이 군사적 긴장완화 문제에 본격 호응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남북교류, 속도는 줄었지만 끊기있게 추진

남북 및 미국의 상황에서 급속한 남북관계 개선을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속도가 상당히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고 남북관계가 후퇴할 가능성도 적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북한도 따라서 그동안의 이벤트성 행사를 지양하고 내년 상반기까지는 현재의 교류·협력 기조를 유지하는데 주력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부도 미국 대통령에 부시의 당선이 확정되면서 새로운 미국 행정부와 한미관계 및 대북정책 등의 조율을 시급히 마무리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이를 철저히 대비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더불어 차제에 정부는 일부에서 지적한 졸속한 대북정책으로 인한 국론분열 현상, 대북저자세 등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국민적 합의에 의한 대북정책 수립을 위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다.

임재형 기자 jhlim21@ewinc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