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수상한 국가에서 인권 단식농성?
2001-01-09 박혜경 기자
인권단체가 혹한과 폭설에도 불구하고 국보법 폐지 및 국가인권위원회법.부패방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13일간의 단식농성을 벌였다. 그러나 인권의식이 무지에 가까운 정치권은 정쟁에만 파묻혀 있다. 이에 인권단체는 정치권을 향한 투쟁을 선언했는데...(인권단체 기자회견 및 박래군 농성단 단장 동영상 인터뷰)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혹한과 20년만의 폭설에도 불구하고 20여명이 반인권의 대표적 법률인 국가보안법 폐지와 국가인권위원회법 제정 등 3대 개혁법안 처리를 촉구하며 13일간의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목숨을 건 인권단체들의 끊질긴 단식농성, 그러나 인권에 무지한 얼음장같은 정치권은 아직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3대 개혁입법을 위한 인권단체의 목숨을 건 극한 단식농성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많은 국민들은 국가보안법 등 반인권적인 악법과 인권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폐지와 국가인권위원회법·부패방지법 제정은 3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고, 김대중 정부의 공약임에도 불구하고 여당인 민주당조차 당론을 결정하지 못하고 이번 정기국회에서도 흐지부지 넘어가고 말았다.
이에 인권단체들은 3대 개혁입법이 정치권의 무능과 무관심으로 소리없이 사라지는 것을 더 이상 두고볼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 속에서 지난해 12월 28일부터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노상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이들의 농성은 처절했다. 인권운동 사랑방 박래군 정책기획실장은 농성 4일째 고혈압과 심장통증으로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으나 곧바로 퇴원, 다시 농성단에 합류했다. 또 60세의 고령인 오영자씨도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다음날 다시 농성단에 합류하기도 했다. 이렇게 쓰러졌다가도 기력이 회복되면 또 다시 농성을 시작한 사람만도 5명에 이르렀다.

이들의 이러한 처절함은 국제기준에 조차 못 미치는 인권수준과 정치권의 무지에 가까운 인권의식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고, 또 이번에도 3대 개혁입법이 정치권의 무관심으로 사라져서는 안된다는 절박함에서 나왔다.
그러나 악조건을 견디고 벌이는 이들의 단식농성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와 정치권은 외면하고 정쟁에만 몰입했다. 인권운동사랑방 등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13개 인권단체는 지난 4일 청와대에 김대중 대통령 면담신청을 했지만 응답이 없었다. 또 민주당은 인권단체의 면담요구에 불응하다가 8일 오후에야 몇몇 민주당 의원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도 현실적인 어려움만 토로하는 의원들의 자기 변명만 들어야 했다.
단식농성을 벌인 최재훈 국제민주연대 간사는 "인권단체이 왜 극한 투쟁에 나섰는지, 왜 김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의 기쁨을 함께 나누지 못하는지를 살피려는 노력조차 이젠 정치권에서 사라진 것 같다"며 참담해 했다.
정치권은 이젠 투쟁의 대상일 뿐

민주당 이종걸 인권위원장과 장영달 의원, 한나라당 김원웅, 서상섭 의원 등이 명동성당에 찾아갔지만 분노한 농성단에게 박대만 당했다. 특히 한나라당 서상섭, 김원웅 의원은 8일 밤 명동성당에 찾아갔지만 농성자들로부터 눈덩이로 얻어맞는 사태까지 연출되기도 했다. 정치권에 대한 극도의 불신감을 엿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인권단체들은 9일 10시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13일째로 단식농성을 마쳤다. 이 자리에서 인권단체들은 "시민사회단체가 힘을 모아 3대 개혁입법이 성취될 때까지 투쟁할 것"임을 다짐하는 한편, "여야 정치권은 소모적인 정쟁을 중지하고 3대 개혁입법 제정에 즉각 나서라"고 촉구했다.
이번 극한 단식농성을 이끌고 있는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정책기획실장은 "이번 단식농성으로 시민사회단체들이 3대 개혁입법 제정을 위해 다시 뭉쳤다"면서 "지금부터 더 강도높은 투쟁을 벌여나갈 계획이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정치권이 얼마나 인권에 대해 무지한지 국제적 인권기준조차 부정하고 있다"면서 "민주당 등 정치권은 이제 투쟁대상으로 설정할 수밖에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여야 개혁세력, 3대 개혁입법 적극 추진해야

한편, 9일인 오늘 민주당 개혁세력과 한나라당 개혁세력 등 여야 소장파 의원들이 함께 모임을 갖고 '국가보안법 개폐 및 국가인권위원회법 제정에 대해 공동 노력할 것'임을 밝힐 예정인데, 인권단체들의 13일간의 단식농성이 이들을 움직이도록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보안법 개폐 및 국가인권위원회법·부패방지법 제정은 김대중 대통령이 오랫동안 강조해온 공약사안이다. 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야당에서도 선거 때마다 제기했던 부분이다. 또한 현실적으로 우리나라 인권의식은 국제적 인권기준에 매우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권은 정쟁을 중단하고, 국민의 인권을 지키고 국제사회에서의 경쟁을 위해 시급히 반인권 법률에 대한 개폐 및 인권보호를 위한 실질적인 법률제정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지금의 김대중대통령은 인권대통령으로 세계에 알려졌다. 그때문에 노벨평화상도 받았고 선거때도 인권을 위한 노력을 적극하겠다는 국민적 약속을 거듭밝혔다. 이제 그 '인권대통령'이란 명예가 부끄럽지 않게세계와 한 약속, 국민과 한 약속을 지켜야 할 때이다.
인권단체 기자회견 및 박래군 농성단 단장 동영상 인터뷰
홍준철 기자jchong2000@ewinc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