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갑 국회대표연설, '강한 힘'으로 '협력'을?

2001-02-08     박혜경 기자

민주당 한화갑 최고위원이 국회 대표연설에서 '정쟁중단을 통한 협력과 경제살리기'를 강조하면서 '강한여당'의 메시지를 강력히 밝혔다. 강한 여당과 정쟁중단을 통한 협력의 정치가 상호 모순된다는 지적인데...

여당인 민주당 대표연설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으나 이렇다할 내용이 없이 "전부터 주장했던 내용의 반복"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연설자는 최고위원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한 한화갑 최고위원. 처음 국회 대표연설을 맡은 만큼 "의욕을 가지고 준비했다"는 민주당 내 당직자들의 말과는 달리 특별한 내용이 없어 이후 여야관계에서도 별다른 진전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강한여당'에 대한 메시지가 강하여 '정쟁중단과 협력'과 상호 배치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정쟁중단과 협력, 경제살리기 전념' 제기

원외인 김중권 대표를 대신한 한화갑 최고위원의 국회 대표연설의 초점은 '정쟁중단-경제살리기'에 모아졌다.

한 최고위원은 이날 "야당 총재가 경제와 민생문제에 관해서 여야가 없다고 한 말씀을 환영한다"면서 "여야가 올 한 해동안만이라도 정쟁중단을 선언하고 경제살리기에 전념하자"고 제의했다.

여야 정쟁으로 민심이 정치권에 등을 돌리고 있고, 경제불안으로 인한 국민들의 대정부 불만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또 이러한 정쟁중단의 아이디어로 이총재의 김정일 위원장과의 만남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이는 그 전날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대표연설에서 강조한 '정치대혁신-국민우선 정치'와 외견상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이총재도 정치권에 민심이 등을 돌리고 있다는 점을 우려해 '국민우선 정치'를 주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정치권이 외견상 서로 웃고 있지만 등에 칼을 숨기고 있다는 점에서 언제 그 칼을 다시 뽑아들지 모르는 일이다.

'안기부자금' 사건에 대해서는 "예산을 회령한 사람이 자백했는데도 이것이 정치자금 수사냐"며 "불법행위는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야당은 관계자들을 검찰에 출두시켜 진상규명에 협조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여야 관계에서도 "야당도 개혁과 구조조정에 대한 구체적인 아이디어와 대안을 갖고 선의의 경쟁을 펼쳐줄 것으로 당부 드린다"며 야당의 협력을 요구하였고, 경제불안에 따른 중산층, 서민의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노력할 것임을 밝혔다.

강한여당의 강한 메시지, 선언적 정쟁중단

한 최고위원은 '강한 여당론'에 대한 '강성정치' '신권위주의'라는 비판을 염두에 둔 듯 이를 해명하는 데 역점을 뒀다. 그는 "국민과 야당을 압도하겠다는 뜻이 결코 아니며 정책과 비전을 가지고 국민의 신망을 받는 여당이 우리가 지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한나라당 이회창총재는 6일 국회 대표연설에서 '이 정권은 느닷없이 `강한 정부, 강한 여당'을 표방하고 나섰다'며 ' `강한 정부'란 국민에게, 야당에게, 그리고 언론에게 `강한 권력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여당은 또 다시 '정쟁중단 선언'을 정말 선언적으로 제기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현 정국이 여야의 소모적인 정쟁으로 비춰지고 있는 것은 '안기부자금' 사건이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고 정쟁으로 흐지부지되었고, 또한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한 야당의 의혹, 강한 여당의 힘으로 개헌등 정계개편을 밀어부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때문이다.

이는 한 최고위원이 '강한 여당론'을 해명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지만 '강한 여당'과 '정쟁중단 선언', '상생의 정치'와는 서로 합치되지 못하고 엇나가는 이미지로 표현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결국 '협력의 정치' 제기가 아주 형식적인 말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것이 정치권 주변의 말이다.

여권이 정쟁을 중단을 현실화시키기 위해서는 대야 화해 제스처와 구체적인 화해 방법이 제기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방법이 제시되지 못했고, 그렇지 않으면 국민을 보고 정치를 하겠다는 것을 분명히 각인시킬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함에도 이 또한 결여됐다는 평이다.

뿐만아니라 '경제살리기'를 최우선의 과제로 주장하였으면서도 "개혁과 구조조정 과정에서 나타나는 고통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 구조조정과정에서 생긴 실업자, 서민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하기 보다는 합리화하기에 급급한 모습이었다.

또한 현대그룹 특혜시비로 정부의 구조조정에 대해 또 다시 불신이 커지고 있고, 국가보안법 개정을 연기하면서 빚어지는 불신감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DJ 목소리 전달에 불과'라며 평가절하

한 최고위원의 국회 대표연설에 한나라당은 일부 내용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김대중 대통령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데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했다. 또 이총재의 방북 권유에 대해서는 '정치적 제스처'라며 별다른 무게를 두지 않았고, '안기부자금' 사건을 '예산횡령'으로 규정한데 대해선 발끈하며 공세를 폈다.

권철현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정쟁중단과 경제 살리기 주장은 이총재의 주장과 동일한 것으로 지당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창화 총무는 "정쟁중단은 환영할만하지만, 강행 및 단독처리 포기, 야당 파괴음모 및 공작중단 선언, 부도덕한 정치공세 중단 등 전제조건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반박했다.

사실 한 최고위원의 대표연설은 '강한 정부, 강한 여당'의 현 정국기조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뜻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쟁중단 선언' 제기는 이미 김중권 대표가 제기했던 것으로 이번 대표연설에서는 이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구체적인 방법론이 제기될 것으로 예상했었다.

여당이 책임지고 '정쟁중단, 경제살리기' 추진해야

이렇듯 한 최고위원 대표연설의 초점인 '정쟁중단 선언' 제기는 구체적인 방법이나 실천내용이 빠진 선언적 의미에서 머물렀다는 것이 대체적인 판단이다. 그리고 개혁완수의 방향과 비전이 불명확함으로써 고통을 분담하고 있는 국민들을 설득하기에 부족했다는 평이다.

때문에 여야가 당분간은 민생·경제살리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겠지만 여야의 대립국면을 해소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안이나 계기가 마련되지 않은 이상 여야의 정쟁과 대립은 지속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김영술 기자newflag@ewinc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