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도 잘 모르면서 발목을 잡다니..."
2001-02-20 박혜경 기자
민주당 소속 국회 교육위원들이 교육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해왔던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법안심사위를 거쳐 의원총회까지 통과했으나 19일 DJ정부 개혁 야전사령부격인 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서 제동이 걸렸다
민주당 소속 국회 교육위원들이 사학 현장의 민주성과 투명성 제고를 명분으로 추진해온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법안심사위를 거쳐 당론을 결정하는 의원총회까지 통과했으나 1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제동이 걸린 것이다.
개정안 내용중 '교원의 임명권을 재단에서 학교장에게 주고, 비리·분규에 관련된 재단 임원들의 학교 복귀를 제한'하는 내용이 문제가 됐다.
최고위원회, 15대대선 공약인 개혁입법에 반대하는 개혁의 걸림돌인가
이러한 최고위원회의 '사립학교법 개정유보' 결정은 민주당의 개혁후퇴일 뿐만아니라 이 법이 김대중 대통령의 지난 15대 대선공약이었다는 점에서 대통령이 추진하겠다고 한 국민과의 약속도 최고위원회에서 뒤엎은 결과가 된 것이다.
15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는 '『사립학교법』을 전향적으로 개정하고, 사학의 교원 선발·임용의 합리성, 공정성 제고를 위해 사학연합기구에 의한 엄정한 전형 및 학교장의 교원임용권을 보장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었다.
'사립학교법 개정'은 대선공약이었기 때문에 민주당에서는 교육계의 숱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집권이후 부터 지속적으로 개정을 추진해왔다. 이 법안은 김대중정부의 교육개혁의 일환인 것이다.
따라서 15대 국회에서는 보수적인 교육계의 반발로 국회통과가 되지 못하였고 16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하였던 법안이었다.
대통령과 당에서 합의했던 개혁법안이 몇몇 최고위원의 반대로 무산된 것이다. 이에 당 의결기구도 아닌 최고위원회의 반대로 법개정안이 무산되자 당내에서는 '최고위원회의 역할'이 무엇이냐는 반발이 일고 있다.
민주당 최고위원, 『사립학교법 개정안』 아직은...
이날 정대철 최고위원은 "2백90여 사립대학 재단 중 말썽을 일으킨 곳은 20여개에 불과한데 사학재단 전체를 홀대하고 있다"고 반대의사를 표명했으며, 김기재 최고위원도 "어제 부산지역 국·공립대 및 사립대 총장들과 대화를 했는데 사학에 비리가 있다면 사법기관이 단속하면 되지 학교법으로 규율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였다"고 전했다.
한화갑 최고위원도 "사립학교법 자체보다 운영의 묘가 중요하다"며 개정반대 입장을 보였다. 이날 아침 민주당에서는 연세대·고려대·성균관대 등 사립대 총장들이 김중권 대표를 방문, 법개정 철회를 요청하기도 했다.
결국 이날 김중권 대표 역시 "유수 사립대 총장들도 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며 "공청회와 의원총회 등을 열어 의견을 모으고 사학재단 연합회의 견해도 들을 필요가 있다"고 해 사실상 법개정을 유보태도를 보였다.
"내용도 잘 모르면서 발목을 잡다니....", 반개혁적 결정에 분노
이에 대해 국회 교육위 소속 임종석 의원은 개정유보 방침 확정 뒤 보도자료를 통해 '최고회의는 개혁입법 처리를 가로막지 말라'면서 '몇 명의 최고위원들의 반대로 의원총회까지 통과한 개정안을 무산시킨 것은 월권적 오류이며 당의 민주적 의사결정을 가로막는 시스템의 문제'라고 비난했다.
그는 또 '사립학교법에 대한 당론 유보는 민주당의 정체성을 의심케 하는 반개혁적 결정으로 교육의 백년대계를 외면한 처사'라면서 '최고회의는 개혁만이 집권정당이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직시하라'고 촉구했다.
개정안을 주도한 설훈의원 역시 "교육위원들이 몇 달동안 뼈빠지게 개정안을 마련했는데 (최고위원들이) 내용도 잘 모르면서 발목을 잡다니 그게 최고위원들이 할 일이냐"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설 의원은 "분규사학에 파견하는 임시이사 임기제 폐지도 철회하고 이사들에게 봉급을 줄 수 있도록 한 조항도 현행대로 두는 등 최고위원들의 요구를 많이 들어줬는데도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계속 개정안에 반대하는 것은 개정을 하지 말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정치개혁을 위한 의원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성공회대 총장출신 이재정 의원도 "일부 최고위원들이 법안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고, 사립학교측의 로비도 작용한 것 같다"고 불만을 피력하면서, "최고위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사실 그 동안 민주당이 마련한 사립학교법 등 교육관계법 개정안은 사학비리 근절 등 교육개혁을 향한 김대중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반영돼 있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초기 사립학교법 개정 법안은 그 동안 전교조 등을 중심으로 지난해 10월 출범한 '사립학교법 개정과 부패사학 척결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가 요구해온 사항들을 대부분 수용한게 특징이다. 그래서 그 내용이 파격적인 만큼 법개정안을 만들면서 사학재단 등의 반발과 정치권 로비도 만만찮아 원안처리 여부는 미지수라고 예견이 된 상태였다.
그 법개정 내용으로도 ▲현재 이사장이 주도하는 이사회 의결 사항인 교원 임명권을 학교장에게 환원하고 ▲비리 분규 당사자의 학교 복귀를 금지하며 ▲회계전문가 선임을 의무화 ▲교수-학생회 공식기구 인정 등 사학 운영의 투명성과 자율성을 높이는 파격적인 내용을 담았다.
DJ정권, 개혁의 한계를 또 다시 드러내다!
그러나 개정안이 제 모습을 갖추면서 비리 분규의 당사자로 임원 취임, 승인이 취소된 사람이 다시 이사로 복귀 금지 조항이 경과 기간을 2년에서 5년으로 연장하고 재적 이사 3분의 2 이상의 찬성과 관할 당국의 승인을 얻어 복귀하도록 제한하는 등 법개정이 완화되었다.
전교조의 경우 지난 12일 사립학교법 개정을 위한 국민운동본부 기자회견에서 '만일 임시 국회에서도 양당 총재 및 대표에 의해서 사립학교법 개정이 좌초된다면, 국민운동본부는 즉각 사립학교법이 민주적으로 개정되는 그날까지 투쟁할 것이며, 사립학교법 개정을 가로막은 정치인들이 다시 국회의원이 될 수 없도록 할 것이며, 어떤 정치인도 대선 출마를 꿈꿀 수 없도록 사전 낙선 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경고한 상태이다.
현재 김대중 정부의 3대 개혁입법안이 흐지부지 넘어가고 또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이번 임시국회에서 통과되기 힘든 사항에서 개혁을 표방한 김대중 정부는 다시 한번 개혁의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최고위원회의 '막강한 힘'으로 개혁을 후퇴시키는 이유가 일부 보수적인 교육계의 반발을 무마시켜 보수층으로 부터의 지지를 얻으려는 '당 보수화'의 일환이기 때문에 개혁진영에서는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홍준철기자(jchong2000@ewinc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