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조롭던 집권여당이 밟은 황태연 지뢰
2001-02-28 박혜경 기자
안정적 국정운영과 조심스럽게 햇볕정책을 추진하던 정부여당에 난데 없이 황태연 지뢰가 나타났다. 보수진영의 반발로 색깔논쟁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 여권의 대응책이 주목된다.
김대중 정부의 정책 브레인이자 민주당 국가경영전략연구소 부소장인 황태연 동국대 교수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겐 한국전쟁의 책임이 없자"는 주장을 해 한나라당 및 자민련이 크게 반발하면서 색깔논쟁으로까지 확대될 기미를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김정일, 한국전쟁 책임 없다" -한나라당 등 보수진영 일제히 반발
황태연 교수는 지난 27일 '국회 21세기 동북아평화포럼' 토론회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유아 시절에 터진 한국전쟁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고, 또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에 대한 김 국방위원장의 지휘 증거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여객기 테러 같은 국제범죄는 사과와 용서가 아니라 소정의 법적 절차를 통해 기계적으로 소추하게될 국제법적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황 교수의 주장에 불똥이 튈까 긴장한 민주당은 즉각 "정권과 무관하다"는 성명서를 내며 사태수습에 신속하게 나섰다. 자칫 이념논쟁으로 비화될 경우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박상규 사무총장도 "필요 없는 말로 국민에게 혼란만 주고있다"며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게 현명하다"고 말했고, 이어서 황교수는 28일 오전에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비상근 부소장직을 사퇴했다.
그러면서도 황교수는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소신을 거듭 강조했고, 발언 진의를 왜곡한 일부 언론과 자민련에 대한 법적 대응을 취할 계획임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자민련은 황교수의 발언을 '망언'이라고 규탄하면서 연일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한나라당은 정부와 민주당의 사과와 해명을 요구하고 나섰는데, 권철현 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황 교수의 시각으로 볼 때 현 정권의 굴욕적 대북자세와 이념적 혼란상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며 "북한에 나라를 바칠 자세 아닌가"라고 공격했다.
자민련도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유운영 부대변인은 성명에서 "황교수는 본인이 김일성대학 교수인지, 북한의 대변인인지 그 정체와 망언의 저의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중·동-이념논쟁 붙일 듯
주요 언론들도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비판적인 보도 자세를 취했다. 동아는 27일자 톱기사로 황교수의 발언을 다뤘고 조선, 중앙도 정치면 등 주요지면을 모두 할애해 비판적 보도와 함께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비난을 소개했다.
특히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황교수가 김정일 방한을 추진하는 세력의 논리제공 역할을 한 셈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면서 "북한의 침략과 테러는 국제법적 사안 일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문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황교수 발언이 김 국방위원장 방한을 추진하고 있는 정부여당에 논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 이후 색깔논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제기하고 나서 주목된다. 문화일보도 사설에서 "황교수의 생각에 정부여당 의사의 일면이 들어있지 않을까"하는 의혹을 던지고 있다.
반면, 한겨레는 2면 하단에 황교수 발언파문을 소개하고 있어 다른 신문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순탄했던 민주당에 난데없는 색깔론 파장
황교수 발언 파장이 확대되자 여권이 긴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집권여당은 DJP 공조 및 3당 정책연합으로 정국운영의 안정화를 꾀하는 한편, 보수적인 부시행정부 출범 이후 조심스런 햇볕정책 추진으로 미국을 설득, 김정일 답방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실질적으로 정착시키겠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감정일 답방을 둘러싸고 이념논쟁이 촉발될 경우 여권은 햇볕정책 추진에 많은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지도부는 보수진영을 끌어안기 위해 공을 들이기도 했다.
그런데 난데없는 황교수 발언으로 색깔논쟁까지 비화될 조짐을 보이자 여권이 난감해 하고 있다. 민주당은 또다시 색깔논쟁에 휩싸일 경우 그동안 안정적 정국운영이 일거에 뒤흔들릴 수 있는 사안이며, 또한 사회가 더욱 보수화 되고 있고 부시행정부의 눈치를 봐야하는 시점에서 햇볕정책을 후퇴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으로 몰릴 가능성도 있다는 판단으로 잔뜩 긴장하고 있다.
더욱이 이 문제가 보혁논쟁으로 확대될 경우 국론분열 현상으로까지 이어져 정국은 혼란의 도가니로 빠질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서 여권은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다.
또 이번 파문으로 혹시라도 DJP공조나 3당연합에 악영향이 미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특히,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한 도중 색깔논쟁이 일고 있어 여권으로서는 더욱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집권여당은 황태연 지뢰가 터지지 않도록 황교수의 당직사퇴를 하도록하며 발빠르고 조심스럽게 지뢰제거 작업에 나섰다.
그러나 '강한 정부여당론'에 밀리고 있는 야당이나 일부 보수진영은 이 사건을 확전시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여당이 황교수 발언 파장을 어떻게 무마시켜 나갈지 두고 볼 일이다.
김영술 기자newflag@ewinc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