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ly Regretted ?

2001-03-10     박혜경 기자

한러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ABM 준수'가 미국의 NMD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며 김대통령과 외교당국자는 미국에서 '사과'를 했다. 외교적 저자세와 무원칙한 외교정책에 비판이 일고 있는데...[한-미 공동선언문 원문]

한국의 대통령이 미국의 대통령앞에서 '사과'를 했다. 그것이 '사과'를 할 정도의 외교적 실책인지에 대해 아직 국내에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4번씩이나 사과표명을 하였다.

미국의 외교적 압력이 엄청났을 것이고 그들의 고압적 분위기가 언론을 통해 전해지지만, 우리정부의 당당하지 못한 외교자세에 대해 참으로 씁쓸한 심정만은 금할 길이 없다.

4번의 really regretted

한미회담에서 문제가 되었던 사안은 한·러정상회담 당시 미·러간 합의하였던 '탄도탄요격미사일 제한 협정(ABM)'을 준수할 것을 합의해 준 것이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NMD)' 구상에 대한 반대가 아니냐는 점에 대해 김대통령과 우리정부 당국자는 '그것이 아니라'며 4번의 사과(유감)표명을 하며 미국 강경파들의 달래기에 부심하였다.

김대통령과 외교당국자는 우리의 외교정책에 대해 미국 당국자 앞에서 당당히 설명하기 보다는 그들의 '화'를 삭히기에만 부심하며 쩔쩔매는 모습이 엿보였다.

김대통령은 부시 미대통령과의 회담뒤 기자회견에서 "이러한 오해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really regretted)"라고 언급하였고, 또 9일(현지시각) 미국기업연구소(AEI)와 외교협회(CFR) 공동주최의 오찬 간담회에서도 “한·러 정상회담 이후 NMD 체제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하여 사실상 '공개사과'를 하였다.

또한 지난 2월 27에는 이정빈 외교통상부 장관이 “한국 입장은 NMD 반대가 아니다”라고 표명한 데 이어 6일 김하중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외교안보보좌관을 만나 2차 해명 및 유감표명을 하여 모두 이와관련 4번의 '유감표명' 사실상 '사과'를 한 것이다.

'regret'란 표현은 클린턴 대통령이 1월 11일 노근리 사건에 대해 사과성명에 썼던 표현이다. 당시 클린턴 성명은 'deeply regret' 라고 명시하였고 국내언론에서는 이를 '사과'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분명한 사과가 아니라는 국내여론의 항의에 대해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은 유감(regret) 성명과 관련, “개인적으로 유감과 사과(apology)라는 두 단어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경우를 보았을 때, regret 더나아가 'really regretted'라는 표현은 외교상 '사과(apology)'또는 그에 준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은 분명하고 이는 외교상 '잘못'이 인정되었을 때나 국가적 책임을 걸고 쓸 수있는 최후의 외교적 발언이다.

그렇다면 이번 방미에서 보인 김대통령과 외교당국자의 'really regret'는 러시아 푸틴대통령과 맺었던 'ABM 준수합의'는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한 '사과'이고, 나아가 이 합의를 파기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김대통령은 미국의 기업연구소(AEI)와 외교협회(CFR) 공동 주최 오찬에서 “탄도탄요격미사일(ABM)제한 조약 문구는 (한―러공동성명에) 안 들어가는 것이 좋았다”고 단도직입적으로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발언을 하여 'really regret'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다 명확히 밝혔다.

이것은 지난달 27일 한―러공동성명에서‘ABM조약이 전략적 안정의 초석이며 보존 강화돼야 한다’고 합의했던 내용을 불과 10일만에 손바닥뒤집듯이 번복한 것이 되고 만다.
만약 ABM의 준수합의에 대해 김대통령이 '잘못'이라고 판단한다면 우리에게는 또 한-러간의 외교적 마찰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안이다.

그동안 정부는 국내외 일부 언론이 ABM조약 내용을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에 반대하는 의미로 풀이하자 “미국도 여러 차례 인정한 ‘표준’조항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라고 누차 설명해 왔다.

사실이 이러하다면, 이번에 보인 우리의 외교적 태도는 나라 망신시킨 '외교적 저자세'이며 오락가락하는 '무원칙한 외교'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국가간 외교적 마찰은 늘 있는 것이고 그 상대가 미국이라 하여서 '저자세 외교'로 일관한다면 세계에서 한국의 위상은 갈수록 떨어질 것이라는 비판이 일고있다.

민주당, ABM 준수합의 옳았다

또한 국내에서는 아직 ABM 준수합의와 NMD에 대한 입장이 아직 하나로 통일되지 못하고 의견이 분분한 상태여서 이번에 보인 외교자세가 더욱 문제되고 있다.

특히 김대통령이 ABM합의문에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조약의 유지 강화’란 표현이 “안들어간 것이 나았다”며 강한 유감을 표명했지만, 민주당에서는 “외교부가 잘한 일”이란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김근태 최고위원은 “ABM 관련 부분은 외교부가 잘한 일”이라면서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앞으로도 이 문제에 대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천용택 국방위원장도 “중국은 NMD에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다”면서 사견임을 전제로 “우리는 중국 입장을 고려해가면서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위원인 문희상 의원도 “한·러 정상회담 합의문 내용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면서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외교·안보팀을 바꿔줄 필요가 있을지는 몰라도 문책성 경질은 전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반면 한나라당 권철현 대변인은 이에대한 입장표명은 유보한 채“나라가 망신당하는 심각할 정도의 외교적 실책들이 드러났다”면서 “정상회담을 준비한 외교팀, 밀실 대북정책을 주도해온 국정원장 등 안보팀의 교체가 불가피하다”고 외교팀 인책을 주장했다.

국익과 국가 자존심이 있는 외교자세를...

미국 워싱턴 소재 윌슨연구소의 셀리그 해리슨 선임연구원은 이번 한미정상회담에 대해 '부시대통령이 면전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뺨을 때린 격"이라고 하며 미국의 고압적 태도와 한국의 저자세 외교의 모습을 단적으로 표현했다.

또 그는 "미국은 NMD를 정당화하기 위해 북한을 위협으로 간주하려고 한다. 공화당 정권은 군산복합체에 큰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미국은 자신들의 이익 앞에서 한국을 배려하지 않는다."고 하여 미국의 NMD가 세계평화나 동북아 안정이 아니라 철저히 자신의 국익을 위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이번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은 한마디로 '북한을 못믿겠고 힘으로 북한의 위협을 제거하겠다는 미국의 경고장'을 받은 것과 진배없어 미 강경파들의 고압적인 태도에 불안감을 느꼈을 수도 있음을 충분히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국익과 한반도 평화를 지키기위한 우리 외교의 원칙에 더욱 충실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정운영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그의 글에서 "'반민주' 도 살고 '반민족' 도 살지만 '반미국' 은 살지 못하는 것이 이 나라의 역사였다. 여기 화두는 단연 민족의 이익이다. 세계화 시대의 민족은 박물관이나 고문서 창고에 밀봉됐기 십상이나 우리한테 민족은 여전히 서러운 생존 조건이다. 당장 NMD 논란만 해도 남북 대립의 틈새에 외세가 매설한 덫에 걸린 것이다. 실로 민족의 이익과 배치되는 남한의 이익 따위는 달리 없으므로 눈앞의 계산으로 민족의 백년 대계에 죄를 짓지 않는 지혜가 요청된다."고 하였다.

또 송두율 독일 뮌스턴대 교수는 "현재 미국에 대해서 `아니오'를 이야기하고 있는 일본의 `우익'이나 중국의 `비판적 지식인'의 담론에 비하면 우리의 미국에 대한 태도는 여전히 너무나 무비판적이다. 그러나 미국의 옳지 않은 정책에 대해서는 분명히 `아니오'를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러한 국민과 정부가 되지 않고서는 반세기에 걸쳐 우리를 옥죈 민족분단과 갈등도 넘어설 수 없다."고 하였다.

이번 외교문제는 단지 몇몇 외교당국자의 인책으로 끝날 사안이 아니다. 우리 외교정책과 외교적 자세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때이다. 우리 외교의 정체성을 찾을때 '유감(또는 사과)'표명과 함께 부시가 했다는 'this man'문제에 대해서도 정부차원에서 당당한 대응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4대강국의 치열한 생존게임의 한가운데 놓인 우리는 지금 다차원 외교시대로 접어들었다. 때문에 '국익과 한반도 평화'라는 외교적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 4대강국에 끌려다니는 모양새가 되고 말 것이다.

한-미 공동선언문(원문수록)

박혜경기자polyad@ewinc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