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영수회담, 필요하긴 한데...
2001-03-13 박혜경 기자
한미정상회담이후 여야 영수회담이 열릴까? 여야는 그 필요성은 모두 인정하면서도 회담내용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여야간 대북정책에 대한 시각차가 워낙 크기때문이다.
지난 1월 4일 '고성이 오간 험악한 회담' 이후 여야간의 대화는 단절되었다. 그 이후 안기부자금 사건 공방, 강한 여당과 반昌 정계개편등으로 여야는 국정운영의 동반자라기 보다는 대선을 앞둔 경쟁, 대립관계로서만 서로를 대해왔었다.
이에 견제와 협력의 여야 파트너쉽은 기대할 수 없었고 지금까지 여권의 일방적인 독주로 국정이 운영되어 왔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한미정상회담 이후 남-북-미의 외교관계에 변화시점에서 서있는 지금, '여야가 없는' 외교, 통일문제에 여야 영수가 한자리에 앉아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가고 있다.
또 여야 영수의 공방으로 끝나지 않을까 우려
영수회담에 대해 여야는 그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회담 내용과 성과'에 대해서는 모두 회의하는 분위기다. 잘못하다간 지난 1·4 영수회담 '꼴'이 나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한자락 깔려있는 듯하다.
청와대관계자는 12일"회담 방식과 시기를 한나라당 측과 조만간 협의할 것"이라며 "김대통령의 방미성과에 대한 이총재의 평가를 주목하고 있다."고 말해 영수회담에 의사가 있다는 뜻을 비췄다.
한나라당 관계자 역시 "귀국 보고회 형식으로 여야 영수간의 단독 면담제의가 올 경우 그때가서 검토하겠다."고 밝혀 회담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회담자체가 아니라 회담의 내용이 될 '한미정상회담 평가 및 대북정책' 대한 여야간의 시각차가 현저하기 때문에 '국정협의'의 자리가 아니라 '영수간 공방'의 자리가 될까 우려하고 있다.
여야, 한미정상회담 이후 팽팽한 의견대립만 재확인
사실 여야는 한미정상회담 평가와 대북정책에 대해 의견 일치를 보는 것이 거의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대북정책에서 보였던 여야 대립점이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더욱 확연해졌다는 것이 정가의 분석이다.
민주당 김영환 대변인은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미국의 동의를 확인한 것이 성과"라며 김대통령이 제안한 "포괄적 상호주의"에 대해 상당히 매우 높이 평가하며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북 포용정책' 기조가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반면 한나라당 이총재는 "우리의 대북정책을 미국측이 이해하는 계기가 돼 다행"이라고 하면서도 "북한을 보는 양국정상의 시각차이에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대북정책 전반을 재점검하기 바란다."고 하여 '대북정책의 전반적 수정'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또 이총재는 김대통령의 '포괄적 상호주의'에 대해서도 "'무력도발 포기'는 북한이 말로 '약속'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대북지원이 군사적 용도로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이 입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부시가 말한 '북한 검증'에 비중을 두었다.
한나라당 권철현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정상회담이 잘됐다고 평가한 것은 절대 아니다. 90%이상은 부정적"이라고 주장하며, 특히 NMD문제에 혼선을 불러일으킨 '외교안보팀에 대한 전면적 교체'를 주장했다.
그러나 여권은 "한미간의 대북관 차이는 인정하지만 전면적인 정책전환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특히 NMD체제 추진 당사국인 미국조차 최종결정을 내리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가 왜 서둘러 '전략적 모호성'을 폐기해야 했는지 모르겠다."며 이와 관련한 외교팀의 교체에 매우 불쾌한 입장이다.
또 지난 9일 한나라당 이회창총재와 민주당 김근태 최고위원간에 '포용정책'에 대한 전화토론을 벌였다. 이총재는 '자신이 포용정책을 반대한 것이 아니다'고 하였고 김최고는 '말보다는 실제에서 반대한 것'이라고 설전을 벌였다.
국회 통외통위 위원인 민주당 문희상 의원도 “한·러 정상회담 합의문 내용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면서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외교·안보팀을 바꿔줄 필요가 있을지는 몰라도 문책성 경질은 전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반면 국회 통외통위 한나라당 박명환위원장은 "투명성부재의 대북정책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고 김덕룡의원도 "1대1식은 아니라도 전략적 개념의 상호주의를 도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나라당, 영수회담 입장정리에 고심
이렇듯 여야는 한미정상회담과 대북정책에 대한 팽팽한 이견만 보이고 있어 정상회담의 실효성에는 부정적이다.
이 때문에 현재 한나라당내에선 영수회담에 대해 '수용론'과 '무용론'이 혼재해있는 상황이다. "외교문제엔 여야가 따로 없다."면서 "이총재도 외교문제에 대해선 초당적으로 협력"할 뜻을 밝힌 마당에 영수회담은 당연히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과 안기부사건, 여권의 야당파괴 공작등의 상황에서는 회담을 '거부'해야 한다는 이견이 맞서고 있다.
그러나 한미정상회담은 한반도 정세에 큰 변화가 올 것임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부시는 북한에 대한 '의구심'을 감추지 않았고, 김대통령이 추진했던 '남북 평화선언'에 대해서도 거부했다. 또 '제네바 합의도 수정'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을 받아들인 남한에 대해 북한은 '미국에 예속'되었다며 강력히 비방하면서 예정되었던 남북장관급회담도 돌연 취소하였다.
한미정상회담이후 북미관계는 물론 남북관계까지 얼어붙고 있는 듯 하다. 만약 지금의 이 외교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더욱 큰 '위기'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
때문에 꼬여있는 정치적 공방은 잠시 미뤄두고, 정치지도자들의 지혜를 모아 변화된 한반도 상황을 헤쳐나갈 혜안을 내놓을 수 있기를 여야 지도자들에게 기대해본다.
박혜경기자 polyad@ewinc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