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위기 원인, 제도문제인가 관리실책인가

2001-03-22     박혜경 기자

국정파탄의 위기까기 비화되고 있는 건강보험 재정파탄이지만 아직 그 원인 규명에 대한 일치된 견해는 없다. 원인과 해결방안에 대해 여야는 물론 각계의 입장차이가 현격하다.

적자액이 5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건강보험 재정파탄 위기에 따라 원인 규명과 그 해결 방안을 둘러 싼 문제들이 정치쟁점으로 급부상했다.

건강보험 재정파탄은 'DJ정권의 실정''국가파탄의 위기'등으로 비화되었지만 아직 그 원인에 대해 이렇다할 진단이 내려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야와 복지분야 전문가, 시민단체들의 이견이 엇갈리고 있다.

일단 의료보험통합과 의약분업실시가 보험재정을 부실하게 만들었음에는 틀림없지만, 그 본질적 원인을 의보통합과 의약분업이라는 「제도 자체」에 두느냐와 제도는 옳으나 「시행과정상의 관리 실책」에 두느냐로 크게 견해차를 드러내고 있다.

1조 9천억원의 국고보조금으론 5조원의 재정파탄 해결불능 상태

현재 5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재정보험 적자는 1조9천억원의 올해 국고보조금을 모두 쏟아부어도 직장의보는 오는 5월, 지역의보는 7월 정도에 지급불능사태를 맞이하게 되어 사실상 해결불능 상태이다. 1995년만 해도 3817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던 의보재정은 96년 877억원의 적자를 시작으로 매년 적자 폭이 늘기 시작해 지난해에는 1조원을 넘어섰고, 올 1-2월에는 적자 3조9714억원으로 증가하였고 3월 전반기 추세까지 감안하면 1조원의 적자규모가 더 증가되어 현재 무려 5조원이상의 천문학적인 적자가 예고되고 있다.

보험재정이 이처럼 부실해진 것은 근본적으로 수입에 비해 지출을 지나치게 늘렸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 보험료 수입은 연평균 15% 증가한 데 비해 진료비 지출은 18%씩 가파르게 늘어났다. 특히 보건복지부는 수가인상으로 인해 올해만 2조5000억원의 추가부담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의약분업을 전후해 의료계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99년 11월 12.8%에 이어 작년 4월 6.0%, 7월 9.2%, 9월 6.5%, 올 1월 7.1% 인상하는 등 5차례에 걸쳐 복리로는 무려 48.8%나 수가를 올려주었다.



수가인상을 주도했던 최선정 전 복지부 장관의 '퍼주기식' 정책이 건강보험 재정난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때문에 의약분업으로 약물남용을 억제해 연간 2조원 가까운 약제비를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의약분업이 의료기관과 약국의 주머니만 잔뜩 부풀려 준 결과를 낳았다. 의약분업이라는 명분을 좇다 분업의 근간이 되는 보험재정을 허물어뜨린 셈이다.

또한 보험재정이 이토록 부실해진 것은 의보통합에 따른 직장의보의 부실 영향도 크다. 96년 말 2조6000여억원에 이르던 직장의보의 적립급은 통합논의가 진행되면서 씀씀이가 헤퍼지면서 해마다 적자가 늘어나 급기야 작년말에는 8400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이렇듯 현상적으론 의보수가의 무리한 인상과 의료보험 통합으로 인해 나타난 적자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나 다 인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그 본질적 원인진단에서는 여야의 시각차가 크다.

한나라당, 의보통합·의약분업 제도 자체의 문제로 인식

일단 한나라당은 건강보험 재정파탄의 원인이 현정권의 실정(失政)은 물론 '의약분업과 의료보험 통합제도 자체'에 있다고 가닥을 잡고 있다. 이에 따라 통합된 건강보험을 직장 및 지역보험으로 다시 분리하고 의약분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한나라당은 올 1-2월까지의 적자규모 4조원 가운데 3조7천억여원이 의약분업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있는 추가지출이라는 자체적으로 분석을 내린 상태다.

한나라당은 건강보험 재정난을 호기로 잡아, 공교육·신공항문제 등과 아울러 현정권의 국정 운영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이회창 총재는 건강보험 재정문제에 대해 "의약분업 실시 전부터 연기하자고 했었는데 대통령은 철벽이었다"며 "이제 부분적인 손질로는 한계가 있으니 의료체계 전반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나라당내에서도 김홍신 의원은 건강보험 재정파탄은 의약분업 자체의 제도적 결핍에서 기인하는 문제가 아니라, 과도한 건강보험수가 인상, 약품 실거래가제도로 인한 고가약 처방 증가의 부작용 등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또한 한나라당은 △건강보험 재정파탄 진상규명 위한 국정조사 △정부의 대국민 사과 △재정위기 현황 공개와 국가채무 감축 장치 조속 마련 △연·기금 주식투자 선진화 등을 촉구하면서 내각 총사퇴를 주장하고 있다.

의보통합, 의약분업 반대하면 '반개혁론자'

한편 대표적인 의보통합 반대론자로서 지난 99년 6월 의보통합에 반대하다 직권면직된 김종대(54) 전 보건복지부 기획관리실장(대구 경산대 객원교수)은 한나라당의 입장과 유사한 제도자체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김종대 교수는 "현행 건강보험 재정 부실은 정부의 무리한 의료보험 통합정책 때문"이라고 비판하며 정책결정자들의 판단력 부족을 강조하고 있다. 김 교수는 청와대, 보건복지부, 학계의 일부 인사가 김대중 대통령에게 의약분업에 대한 환상을 주입한 뒤 시민단체를 동원해 반대론자를 '반개혁세력'으로 몰아 의약분업을 강행함으로써, 의약분업 실패와 의료보험 재정파탄을 낳았다는 주장한다.

김 교수는 특히 "차흥봉 전 장관은 장관이 된 후 보건복지부 내 공무원들의 반대를 억누르고 의약분업을 강행했다"며 "차 전 장관이 의보통합을 시행하려다, 의보통합이 보험재정 부실을 낳을 수 있다는 비판을 받자 일단 이를 연기한 뒤 의료기관에 지불하는 약제 비용 절감을 위해 의약분업을 강행한 뒤 의보통합을 재시도하려 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의료조합론자인 김 교수는 "금번 건강보험 재정 파탄 사태는 사회보험 방식의 의료보험제도의 기본원리와 근본정신에 배치된 의료보험 시스템에서 오는 당연한 결과"라고 판단하고 있다. 또한 그는 "중앙집중 통제방식의 의료보험 통합은 사회보험의 기본정신인 보험가입자에 의한 보험운영을 원천적으로 봉쇄해 자치운영의 효율과 창의를 없애고 획일적인 운영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건강보험 재정난을 시스템적인 위기로 몰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당 자체내에서 뚜렷한 해결책의 마련 없이 정치적 공세 방식으로 정국을 이끌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여당, 의보 재정난을 시행과정의 관리 실책 차원으로 인식

정부와 여당도 "의보재정 이슈는 국민의 정부 초기 국민연금 시행과 같이 현 정권의 악재로 작용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금번 문제로 의약분업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한나라당측 주장을 일축했다. 이는 야당도 여야합의로 의약분업 관련법안을 통과시키고 그동안 서로 많이 논의해온 만큼 원점회귀 주장을 하거나 여당에 책임을 전가하는 정치 공세적 태도를 버리자는 의미로 해석된다. 특히 의보수가 인상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한나라당이었다는 것이다.

여권은 의보통합이나 의약분업의 제도자체는 복지개혁 차원에서 반드시 했어야 했고 때문에 그 '시행과정상에서 나타난 관리의 문제'가 이번 위기의 주요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때문에 책임론의 주요 표적이 되고 있는 보건복지부는 의약분업을 실시하는데만 초점을 맞춰 의보수가 인상 등 의료계와 약계의 불만을 무마시키기에 급급해 예상 문제점에 대한 대책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난해 의약분업 실시를 앞두고 차흥봉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분업으로 인한 추가부담은 없다"고 단언했을 정도로 정책 예측력이 부족했다.

분업 실시에 따른 의료계 반발에 대한 정부의 '달래기식' 대응이 결국 수가 인상으로 귀결됐다. 8월 7일 개각으로 들어온 최선정 전 장관은 의료계 달래기의 주역이었고, 김유배·최규학 복지노동수석도 이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복지부 내부에서는 의보통합과 의약분업은 정치권에서 시행키로 결정한 것이고 실무 집행만 했던 자신들에게 모든 책임이 돌아오는 것은 부당하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현재 의보재정 위기에 대한 여권의 원인 분석은 '관리 부실'을 근간으로 크게 세가지로 판단되고 있다. 첫째는 의료계 폐업에 대한 미온적 대처이고, 둘째는 무리한 수가 인상, 셋째는 직장·지역의보 통합의 시기 부적절 등 '3대 실책론'이 제기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지난해 의약분업을 앞두고 폐업으로 맞선 의료계에 정부가 무기력하게 굴복했던 점을 가장 뼈아픈 실책으로 지적하고 있다. 또한 수가인상 과정 자체도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아서 국민건강보험법을 위반했다고 헌법소원(위헌 의견 5, 합헌 의견 4로 기각 결정)이 제기됐었던 만큼 수가인상 재조정이 추진될 가능성도 있다.

현재 정부와 여당은 사태 해결을 위해 건강보험료를 10∼15% 인상하고, 부족분은 금융기관으로부터 단기차입이나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의 방식으로 국고에서 지원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나가고 있다. 또한 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기능 조정과 강화를 통해 의보급여의 지출구조를 개선하고 낭비요소를 제거해 나가기로 했다. 지출구조 개선 방안으로는 △약품의 실거래가 상한제 등으로 약가 '거품' 제거 △하루 환자수 제한 △허위·부당청구 철저 방지 △고가약품이나 항생제 남용 병·의원의 명단공개와 행정제재 △건강보험공단 관리운영비 절감 등 30여가지의 방안이 검토되고 있으나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

그러나 현재 당·정이 집중 검토중인 방안들과 관련, 정부 당국자들도 현재 4조원 규모로 예상하는 적자폭이 더욱 확대될 수 있으며, 지출 절감 효과도 예상만큼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DJ의 인사스타일도 또 하나의 원인

또한 일각에서는 금번 건강보험 재정 위기의 원인으로 DJ정권의 인사 실책을 들기도 한다. 차흥봉 전 장관과 최선정 전 장관 모두 관료 출신으로 의약분업이라는 중대한 일을 추진하기에는 미흡한 인사였다는 지적이다. 또한 김유배 복지노동수석은 하의도 출신이고, 최선정 전 장관은 강원도 출신이라는 이유로 능력이나 전문성을 무시한 지역 안배 차원에서 기용됐다는 시각도 있다.

특히 고도의 전문성을 갖춰야 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에 DJ의 동서이자 민주당 김홍일 의원의 이모부인 서재희 원장을 앉혔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DJ식 '정실인사'로 평가원의 원활한 역할 수행을 이끌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와 민주당에서는 빠른 대책 마련과 함께 중폭 이상의 내각 개편 등을 통해 사태를 조속히 마무리하려는 분위기다. 어차피 정책의 최종 선택은 대통령의 몫이니만큼, 책임론이 확산되면 될 수록 부담은 국정 최고 책임자인 김 대통령에게 돌아온다는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 21일 새로운 보건복지부장관으로 임명된 김원길 의원이 다양한 경력과 조정력, 정치력을 바탕으로 과연 어떻게 의보재정 파탄을 비롯한 제반 문제들을 처리해 나갈지도 지켜 볼 일이다.

시민단체, 국민적 저항으로 확대

시민단체들의 주장도 정부와 여당의 안이한 상황인식에 따른 무능한 정책 관리 능력에 원인을 돌리고 있다. 20일 서울 정동 경실련 강당에서는 참여연대·경실련·민주노총·건강연대 등 3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부당한 보험료인상 반대와 건강보험 개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를 발족했다.

공대위는 현 건강보험 파산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현 장관이 사퇴할 것을 촉구하는 한편 의료정책의 재검토 촉구를 위한 본격적인 국민운동에 돌입했다.
또한 만약 보험료를 인상할 경우 '보험료 납부 거부운동'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실사과정 때 의사, 약사와 함께 의약분업에 문제가 없다는 합의를 도출시켰고, '국민건강권 확보를 위한 범국민연대(건강연대)'를 위시한 시민단체들이 의보통합과 의약분업을 관철시키기 위한 여론 조성에 큰 역할을 했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의약분업 제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실행과정에서 무분별한 수가인상 등 운영상의 문제에서 발생한 것으로 제도 자체가 완전 철회돼서는 안된다"고 조심스럽게 지적하고 있다.

DJ정부, 생산적 복지 시스템의 전반적 위기로 비화

여하튼 의약분업이나 의료보험 통합은 그 시행 여부를 두고 오랜 시간 지루한 논쟁 끝에 사회적 합의를 한 사안이다. 국민회의(현 민주당)는 1997년 대선 당시 이 두 과제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국정 1백대 과제로 삼았다. 공약에 매달리고 개혁이라는 대의명분에 집착하다 보니 실패한 정책이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는 의보통합으로 재정 악화가 심각해지자 의료기관에 지급하는 약제비를 절감하는 것밖에는 재정 악화 타개책이 없자 제대로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의약분업을 앞당겨 실시했다는 점에서 그 책임 여부를 몇몇 개개인에게만 추궁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된다.

DJ정부가 추진했던 생산적 복지 시스템의 전반적 위기를 불러온 이번 건강보험 재정위기는 정부와 여권내에서도 자인하는 심각한 문제이다. 최근 한미 관계의 갈등 노출, 남북관계의 난조, 장기 경제침체, 교육위기 등의 문제점들이 건강보험 재정위기를 계기로 총체적으로 터져나올 가능성도 있다. 이는 한 두명의 정책결정, 집행자의 잘못을 넘어서 국정 전체 시스템의 문제로 확대될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바다.

장진수기자(jjs@ewinc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