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교육부장관으로 본 DJ의 교육정책
2001-03-26 박혜경 기자
3·26 개각 직전, 초대 교육부장관이었던 '이해찬' 최고위원이 민주당 정책위의장으로 전격 재기용되었다. 의보개혁은 물론 '교육개혁'까지도 강력히 추진하겠다는 김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당시 이해찬 교육부 장관은 교육자치, 교원정년 단축, 사립학교법 개정 등 '교육개혁 전쟁'을 선포하며 교육개혁을 힘으로 밀어부쳤고 이에 거세게 반발했던 한국교총은 '이해찬 장관 퇴진운동'까지 전개하였다. 교사들의 집단적 저항으로 이장관은 1년여만에 퇴임하고 말았다.
이러한 이해찬 전 장관을 정책위의장으로 재기용한 것은 김대통령이 의보개혁은 물론 교육개혁까지도 다시 강력히 추진하겠다는 의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민주당 김영환 대변인은 "의료.교육개혁에 대한 결자해지(結者解之) 측면에서 이의장을 다시 기용한 것" 이라고 설명하여 이 정책위의장이 의료와 교육개혁에 전면 나설것임을 시사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사에서도 밝혔듯이 '만난을 무릅쓰고라도 교육개혁을 성취하겠다'고 천명하며 '교육 대통령'임을 자임했었다. 그러나 DJ정부 들어 벌써 6번째 교육부 장관을 맞는 등 교육개혁은 계속 표류하고 있다. 최근 점점 더 심각해지는 '공교육 위기'로 '교육이민'이 증가하고 있는 교육현실은 DJ정부에 의약분업, 의보통합 이외에 '교육개혁 실패'라는 또다른 치명타를 안겨줄 위기요인으로 잠복해 있다.
이해찬 정책위의장의 기용을 계기로 각 교육부장관들이 추진하였던 교육정책과 그에 따른 문제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DJ 교육개혁의 첫 전도사, 38대 이해찬(98.3.3~99.5.24) 장관
이해찬 장관은 '개혁성향이 강한 대통령의 측근 실세', '대학교수나 관료 출신이 아닌 첫 교육부 장관' , '운동권 출신 장관' 이라는 점에서, 교육정책의 획기적인 개선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시작되었다.
당시 이 장관은 취임사에서 학부모와 학생 등 "교육정책은 수요자의 자율성을 최대한 높이는 방향으로 추진하고, 단기적으로 교육비 절감과 입시고통 완화에 주력하겠다"고 밝힘으로써, 과열 입시경쟁, 엄청난 사교육비 등 우리 교육의 고질적 '병폐'를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해찬 장관의 주요 교육정책을 보면,
「대입제도」는 ▶ 2002학년도 대입부터 수능 비중을 대폭 축소하고 학교생활기록부를 핵심 전형자료로 삼고, '수능은 쉽게 출제'한다.
▶ 수능성적 통지서에 영역별 표준점수와 등급만 표기하고 '등급에 의한 지원자격 시험'으로 활용한다.
▶ '2002년도부터 대학입시제도 완전자율화'를 실시한다.
「사학법」과 관련하여 ▶사립대학의 운영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대학의 중요사항을 심의하고 총·학장 추천권을 갖는 '대학평의회'를 설치
▶ '교원 임면권을 이사장 대신 총·학장'에게 주고 학사업무의 중요사항을 심의하는 교무위원회 설치
▶사립초. 중등학교의 교육자치를 실현하기 위해 '학교운영위원회' 설치
「교원정책 및 기타 교육정책」은 ▶교원노조 합법화 ▶촌지근절 ▶초. 중. 고교 교원의 정년단축(99년 62살, 2000년 61살, 2001년 60살로) ▶21세기 지식기반사회를 맞아 대학 경 쟁력을 높이기 위한 '두뇌한국(BK21)사업 ▶사교육비 절감을 위한 불법과외 단속 등이 있다.
김대중 정부 초대 교육부 장관이었던 이해찬 장관이 바로 DJ정권의 교육개혁 정책의 기본틀을 마련하였고 이때 추진된 교육개혁 제도의 '결자해지(結者解之)'를 위해 정책위의장으로 재임용된 것이다.
한계에 부딪친 교육개혁, 이후 4명의 교육부 장관들...
이해찬 초대 교육부 장관은 개혁성향의 교육부 장관답게 수많은 교육 개정안을 내놓고 개혁의 칼날을 세웠지만, 교원정년 단축문제 등으로 교사들에게 오히려 '反이해찬' 정서를 만들었고 1년 2개월만에 장관직을 물러나게 되었다.
이후 김덕중, 문용린, 송자, 이돈희로 이어지는 단명의 교육부장관이 탄생하게 된다.
김덕중(99.5.24~00.1.14) 장관은 취임사에서 '대학개혁, 교원정책 등 주요 사안은 기본틀을 유지하면서 개혁을 마무리짓는데 주력하겠다'고 밝히고, '사회수요에 맞는 교육'을 강조했다.
그러나 사립초.중등학교에 설치하기로 했던 '학교운영위원회는 단순 자문기구로 전락'하고, 대학운영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설치하기로 했던 '교무위원회 규정은 삭제'해 버렸다. 또한 재단의 전횡과 부정을 방지하기 위해 이사의 3분의 1이상을 '공익이사로 선임하기로 했던 규정을 백지화'시키는 등 교육개혁이 아닌 '교육개악'을 하였다.
또한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BK21사업'은 서울대 등 소수 대학과 과학기술분야에 집중됨으로써 본래 취지와 다른 정책으로 변질되어, 오히려 대학별 역차별을 발생시켰다.
BK21의 파문등이 불고 교육개혁이 후퇴한다는 비판을 받으며 김덕중 장관이 7개월여만에 물러나고 대학자율성을 강조한 문용린(00.1.14~00.8.7)장관이 취임하였다.
취임사에서 문장관은 '교육은 teaching(가르치기)에서 learning(배우기)이 되어야 한다'고 밝히면서 전달강습식 교육이 아닌 자율성에 입각한 교육를 강조하기도 하였다. 또한 '대학의 100% 자율성'에 주안점을 두기로 하고 교원정년처럼 교육현장에 충격을 주는 정책은 신중히 추진할 것이라 밝혔다. 문장관은 교육개혁이 필요하나 그 방법이 정부가 아닌 '교육계의 자율성'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연대 총장시절 대학에 '마케팅전략'으로 연대의 재정을 튼튼하게 하여 그의 대학경영자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았던 송자(00.8.7~00.8.31) 장관은 교육부 장관으로는 완전 실패하였다. 장관으로 물망에 올랐을 때부터 자신과 부인등 가족의 '이중국적 문제'가 구설에 올랐고 취임 이후 송장관의 이중국적 문제는 사그러들지 않고 계속 불거졌다. 게다가 삼성의 사외이사, 저서 표절시비까지 드러나면서 여론의 집중적 비판을 받으며 정책다운 정책 하나 펴지 못하고 23일 최단명 장관이라는 오명만을 남긴채 장관직을 물러나야 했다. 송장관의 인사로 DJ의 인사정책이 또다른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하였다.
송장관의 파문을 가라앉히면서 임명된 이돈희(00.8.31~01.1.29) 교육부장관은 교육의 획일성을 지양하고 교육의 선택권을 확대하는 차원에서 신자유주의적인 교육정책을 추진하였다. 고교평준화의 획일적 틀을 수정하고 '우열학교, 우열학급'적 '차등교육'의 사고가 그의 교육정책의 핵심이었다. ▶ 자립형 사립고교를 2002년부터 시범적으로 시행, 외국인학교 개방 ▶수준별 이동수업, 심화 및 보충학습, 고교 선택과목을 확대시킨다.
이에 전교조는 이러한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해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학생. 교사들은 무한경쟁에 시달리고 사교육비는 더욱 증가하는 폐해가 나타나고 있다" 고 비난하였다.
공교육 위기와 6번째 교육부 장관, 한완상(01.1.29 ~ )
과외열풍을 불러올 수 있는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에 대한 교사, 학부모의 반발로 5개월만에 이돈희 장관은 물러나고 YS정권시절 통일부장관을 지냈던 한완상 명지대총장이 1월 29일 DJ정부 6번째 교육부장관이 되었다.
김대통령은 지난 17일 '사교육비가 연간 7조1천억원이나 들고, 중.고생의 70.8%가 과외를 받고 있다'는 통계를 인용하면서 공교육 위기에 대해 통렬히 반성하고 나섰다.
이러한 대통령의 교육 위기의식, 학교폭력 문제, 사교육비의 증가, 교육이민의 증가, 교권실추 등으로 '무너지는 공교육'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하는 한 장관의 어깨가 무겁다.
한 장관은 취임후 "21세기가 요구하는 창발력 즉 창조적 능력을 가진 인재를 키우는 교육이 되도록 힘쓸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획일적인 공교육 시스템을 전환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한완상 장관은 공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대안으로 '이상적 학교' 모형을 제시했고, 학교폭력과 관련해 올해를 '학교폭력 대폭 경감의 해'로 정하고 가해학생 및 학부모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을 추진중이다.
특히 교육부에서 '교육인적자원부'로 부서명을 바꾸고, '인적자원개발특별법 제정'을 통해 흩어진 인적자원 관련정책을 교육인적자원부가 조정하기로 했다.
또한 교원의 사기를 높이고 교육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교원의 잡무를 감축, ▶ 초.중등 교사 50명을 뽑아 2년간 해외유학, ▶ 2004년까지 10조원을 투자해 1,099개교 신설, ▶학급당 학생 수를 초. 중학교 35명, 고교 40명 이하로 줄임, ▶2004년까지 2만2천명의 교원 증가 등의 교육정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최근 한 장관은 실책을 하고있다. 의보파탄으로 국정이 심각한 위기에 빠져있었던 지난 22일 한국교육과정평가은 느닷없이 2002학년도 대입 수학능력시험의 '난이도를 높이겠다'고 발표함에 따라, 일선 학교와 수험생들이 극심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쉽게 출제하겠다던 수능 출제방향을 전면 바꾸어 버린 것이다.
학교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 '쉬운 수능' 고수 입장을 천명해왔던 평가원측의 갑작스런 수능 난이도 조절은 일관성없는 정책추진과 사전 설명없는 정책발표라는 점에서 교육계와 학부모, 학생 모두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어려운 수능'이 된다면 '과외비 급증'과 '공교육 실종'은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교육개혁이 공교육 위기의 근원
질퍽거리고 있는 한완상 교육부장관의 교육정책 실책이 이해찬 정책위의장의 재기용을 하게한 하나의 동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해찬식 '밀어부치기 교육개혁'이 진정 실효성있는 교육개혁이 될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집권후반기 또다른 악재가 될 수도 있다는 비관적 전망마저도 나오고 있다.
미국 클린턴은 재임 8년 동안 라일리 교육장관과 운명을 같이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국정 4기를 맞는 현재 6번의 교육부 장관이 교체되는 등 교육정책이 오락가락하고 있다.
교육은 백년대계이다. 따라서 교육개혁 정책의 방향이 아무리 옳다하더라도 그 진행과정이 '정권의 업적'을 위한 정책이라면 그것은 누가 하더라도 실패하게 된다.
교육개혁이 성공하려면 '정권'의 시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이다. 지금의 공교육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DJ정부 뿐만아니라 역대 정부가 '정치적 업적'으로 교육정책을 추진하였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교육정책은 백년대계가 아닌 '몇개월짜리 실험도구'로 전락하였다.
그 교육용 실험도구가 정치적으로 성공하지 못할때는 언제든지 폐기처분하고 또다른 '도구'를 찾게되는 교육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김준숙기자(js21fly@ewinc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