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여야 합의법안이「돈세탁'방치'법」?

2001-04-24     박혜경 기자

여야가 유일하게 합의한 돈세탁방지법이 도입 취지와는 반대로 불법 정치자금은 물론 '마약·범죄조직 자금'까지 보호하는 돈세탁'방치' 수준으로 '개악'됐다는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천정배 의원은 "재수정을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천명했는데...

지난 23일 4월 국회 법안중 유일하게 여야가 합의한 돈세탁방지법안이 도입취지와는 반대로 '여야 담합'에 의한 '개악'이라는 비판 여론이 커지고 있다.
돈세탁방지법에 '정치자금'을 포함시켜야 한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민주당 천정배, 조순형 의원은 3당 합의내용에 대해 '사상 최악의 개악'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고, 시민단체들도 '당리당략에 밀려 빈 껍데기 법'을 마련했다고 비난하고 나섰기 때문.

계좌추적권을 제외시킨 돈세탁방지법 합의안으로 불법 정치자금은 물론 '마약,범죄조직 자금'까지 '법'으로 보호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시민단체는 정치권이 돈세탁을 방지하는 것이 아니라 '돈세탁'방치'법'을 만들고 있고, 부패를 방지하는 것이 아니라 '부패'방조'법'을 만들고 있다며 개혁입법을 거부하고 있는 여야 정치권에 거센 비난을 퍼붓고 있다.

이렇듯 정치권 '담합'에 의한 돈세탁방지법 개악에 대한 여론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민주당이 야당과 협상을 재개하기로 하고 새로운 협상안 마련에 들어가 정치권에 파장이 커지고 있다.

아무튼 그동안 정치공방으로 뭐하나 제대로 합의를 이글어내지 못했던 여야 3당이 모처럼 합의한 '돈세탁방지법'은 정치권의 자기 이기주의의 표본으로 국민들에게 인식되면서 정치권의 도덕불감증에 대해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게됐다.

FIU 계좌추적권 제외-'마약·범죄조직 자금' 보호막 의혹을 사는 정치권

여야가 지난 23일 합의한 돈세탁방지법안은 '정치인들의 불법 정치자금을 보호하기 위해 마약·조직범죄 등의 자금까지 보호해준 상식 밖의 법안'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우선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연결계좌 추적권을 주지 않기로 한 것은 '검은 돈에 대한 추적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것'으로 돈세탁방지법 자체가 유명무실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천정배 의원은 "FIU는 혐의거래 보고를 받는 것만으로는 돈세탁 여부나 돈세탁 방지대상 범죄와의 관련성을 판단하기 어려울 것이므로 돈세탁방지법은 결정적으로 무력화 될 것이다"며 "불법 정치자금은 물론 마약 및 조직범죄 관련 자금도 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도 "FIU가 불법자금은 추적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연결계좌를 발견하더라도 금융기관이 FIU에 신고한 계좌 리스트에 포함돼 있지 않으면 추적을 할 수 없게 돼 불법자금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불법 및 범죄자금이 발을 못 붙이도록 함으로써 투명한 금융거래 질서를 확립하자는 돈세탁방지법의 근본 취지를 살리기 위해 도입된 FIU의 고유 기능을 차단하고 검은돈 추적을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실권없는 기구'로 전락시키겠다는 일부 정치권의 계획된 의도라는 것이다.

'불법 정치자금 조성'-목숨걸고 지키는 정치권

또한 FIU가 정치자금법 위반 협의거래를 검찰이 아닌 선관위에만 제공토록 여야가 합의한 것과 관련해 천 의원은 "시급히 불법 정치자금 혐의 정보를 수사기관에 전달하고 보안이 지켜져야 한다"면서 "수사권은 물로 계좌추적권 등 조사권도 없는 선관위에 통보될 경우 돈세탁 혐의가 사장되거나 관련 범죄 혐의자에게 누설될 우려가 커진다"고 반발했다.

그동안 불법 정치자금 조사 사실을 FIU가 해당 정치인에게 '사전 통보'할 것인지의 여부를 놓고 민주당은 '통보불가'를 주장해 왔고, 한나라당은 '사전통보'를 주장했는데, 이를 선관위에 통보함으로써 '사전 통보'를 허용한 것을 풀이 됐다. 선거법은 선관위가 정치자금을 조사할 경우 해당 정치인에게 소명기회를 주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여야 정치인들은 여론에 밀려 정치자금을 규제대상에 포함시키긴 했으나, 교묘하게 정치인들에게 유리한 법안을 마련하려 하다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마약·범죄조직 등의 자금'까지 보호하게되는 최악의 법안을 마련하게 됐고 여론의 지탄 대상이 됐다.

민주당 재수정안 마련-한나라당 "글쎄요"

이렇듯 여론의 비난이 커지자 민주당은 일단 △FIU의 계좨추적권을 원안대로 부여하되, 영장주의 원칙에 따라 검찰을 통해 계좌추적 영장을 발부 받도록 하고 △ 정치자금 조항을 삭제하며 △FIU가 선관위 이외 기관에 정치자금 정보를 제공할 경우에 대한 처벌규정 완화 등의 수정안을 마련, 대야 협상에 나서기로 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정창화 총무는 "아직 수정할 생각은 없지만 여당이 납득할만한 제안을 해오면 검토하겠다고 말하고 있어, 민주당의 수정안이 합의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돈세탁방지법이 재수정 되지 않을 경우 비난 여론이 한나라당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돼 한나라당도 마냥 버티기만 할 상황이 아니라는 게 정치권의 판단이다.

돈세탁방지법 개악 저지를 위해 시민단체, 개혁적 의원들 나서

더욱 '개악' 되다시피 한 여야의 합의안에 대한 반발 여론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38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부패방지입법시민연대'는 "당리당략에 밀려 빈 껍데기로 전락한 돈세탁방지법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정치권에 경고했다.

돈세탁방지법에 정치자금법을 포함시키려 백방으로 모력했던 천정배 의원은 "이럴 바에는 차라리 정치자금 포함을 주장하지 말았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며 착찹해 했다.

천 의원은 "여야가 합의한 돈세탁방지법은 아예 없는게 더 낫다"면서 "계속해서 수정을 요구할 것"임을 강조했다.

더불어 정치권 내부의 개혁 성향의 의원들도 전면 재수정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설 채비를 하고 있어 돈세탁방지법 개악 논란은 정치권뿐만 아니라 전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관측된다.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는 정치권이 일부 정치인들의 불법 정치자금을 보호하기 위해 '마약·범죄조직의 자금'까지 보호해주는 어처구니없는 돈세탁방지법안을 마련함으로써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원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국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국가의 안위와 미래를 고민해야할 국회가 국회의원 자신의 사리(私利)만 보호하려는 이기주의와 당리당략적 모습만을 보인다면 어느 국민이 정치권에 기대감을 보일 수 있을까?

김영술 기자newflag@ewinc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