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부총장 같은 원내총무-이재오 신임총무

2001-05-15     박혜경 기자

개혁파의원들의 몰표를 얻어 4수만에 당선된 한나라당 신임 원내총무 이재오의원. 그러나 그는 원내총무의 역할을 '의회정치' 실현이 아니라 '당총재의 심부름꾼'이라고 하여 마치 사무부총장같은 자세인데...

14일 재야출신 이재오의원이 한나라당 신임총무로 당선되었다. 이총재의 정치노선이 보수적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는 가운데, 개혁성향의 재야운동권 출신이 원내총무에 당선돼 국회운영을 어떻게 풀어 나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고, 이총무가 선수가 낮은 재선으로 원내 운영에서 이총재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되고 있다.

특히 그는 이총재의 최측근이며 당총재의 명령에 따라 당 실무를 관리하던 사무부총장 출신이라는 특성상 이총재의 뜻을 최우선으로 하는 총무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의 정견발표에서도 밝혔듯이 "원내협상은 총재의 뜻을 따라야 하며 총무는 심부름꾼"이라고 말하여 국회를 운영하는 원내총무의 위상이 '이총재의 심부름꾼'으로 전락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낳고 있다.

또한 그동안 이 신임총무가 대여관계에서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여 여야관계에서도 특별한 돌파구가 마련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여야 총무가 재야의 동지-여야 협상에 도움될까?

이 신임총무는 당선 소감에서 "우리 당과 여당의 입장을 잘 살펴 무리한 투쟁도 비굴한 협상자세를 취하지도 않겠다"며, "국민우선의 정치를 펴는 수권정당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줄 것이며, 여당에도 민주화운동의 동지가 많이 있으니 초심으로 돌아가 신뢰받는 정치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그의 재야경력을 강조하는 포부를 밝혔다.

민주당 이상수 총무와 한나라당 이재오 신임총무는 지난 87년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에서 각각 민권위원장과 상임집행위원으로 함께 일하며 직선제 개헌투쟁을 이끈 재야 경력이 있어 주목받고 있다. 또한 이 신임총무는 10년 옥고를 치룬 민주투사이다. 그의 이러한 '개혁성'으로 한나라당 개혁적 소장파의 몰표를 받은 것이 당선에 큰 힘이 되었다.

두 여야 총무가 이례적으로 재야에서 함께 일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이 신임총무가 대여 '강경노선'을 취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이상수 총무는 "이재오 신임 총무는 나름대로 원칙을 갖고 있는 사람이며, 유연성도 있다."면서 "특히 과거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에서 같이 일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협상이 잘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기대감을 피력했다.

그러나 이러한 재야시절의 경험이 원내총무의 협상력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듯 하다. 당내에서는 이 신임총무가 원내총무로서는 선수가 낮아 과연 소신껏 원내 운영을 추진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 반응이 많다. 한나라당 중진들은 "총무경선 전부터 원내총무 후보들이 재선이라는 점 때문에 국회운영의 권위와 위상이 상실되지는 않을까" 우려했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재선이라는 약점이 이총재의 입김이 세질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총무는 총재의 최종결심에 따르는 심부름꾼"-이 총무, 사무부총장인가 원내총무인가?

이러한 전망을 뒷받침이나 하듯이, 이 신임총무는 경선 정견발표에서 "원내협상은 총무가 다 하는 게 아니라 원내대책회의, 총재단 회의를 거쳐 총재의 최종 결심에 따라 이뤄지는 것으로, 총무는 심부름꾼"이라고 강조하였다.

또 당선 직후 기자회견에서도 "총무 경선 4수만에 결선투표까지 거쳐 당선된 것을 '경고성 신임'으로 받아들인다"며 "무리하게 투쟁하지도 않고 비굴하게 협상하지도 않겠다."고 하였다.

국회 본연의 운영을 책임맡고 있는 원내총무의 역할이 당의 '입김' 특히 '이총재의 뜻'에 따라 좌우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는 발언들이다. 결국 그의 대여관계 풀이는 이총재의 신임을 얻기 위한 계산이 될 것이라는 관측을 가능케 한다.

그의 발언에서는 '의회민주정치'를 바로 세우겠다는 의지의 한자락도 읽을 수가 없다. 이재오 신임총무는 아직도 자신이 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운영하는 원내총무가 아니라 당을 관리하는 사무부총장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그는 국회의 기능을 당의 종속으로부터 독립시키는 '크로스보팅'(자유투표제)을 도입하겠다는 그의 의지와 '당이 시키는대로' 하겠다는 그의 발언에 앞뒤가 맞지 않는다.

16대 국회 들어 한나라당에서도 원내총무 역할 강화론을 주장하기도 했고, 그동안 국회가 당론에 귀속되면서 파행으로 치닫자 여야 소장파들은 국회중심의 의회정치를 바로세우기 위해 크로스보팅 도입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이들 개혁 소장파의 몰표로 당선된 '개혁성'을 앞세운 원내총무가 일성부터 "원내총무의 총재 심부름꾼론"을 주창하고 나서니 아연실색할 따름이다.

여야가 국리민복을 우선하는 협상의 파트너가 되려면 국회를 책임진 원내총무가 '당권'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이 신임총무 체제에서는 국리민복의 여야 협상보다는 권력게임의 여야 대치로 치달아 국회가 또다시 파행의 늪으로 빠져들 것이라는 우려섞인 전망뿐이다.

김영술 기자newflag@ewinc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