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대화는 난항, 남북대화는 순항할 듯
2001-06-08 박혜경 기자
6.15 1주년을 앞두고 부시 미대통령이 '북미대화 재개'를 전격 발표했고, 이어서 7일 한미 외무장관회담에서 파월장관이 '남북정상회담을 적극 지지'한다고 발언함으로써 남북관계는 오랜만에 해빙무드를 맞고 있다. 그러나 북미대화는 난항이 예상된다.
그동안 2차례에 걸친 '답방일정을 밝히라'는 대통령의 요구에도 북한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였고 최근 북한상선의 제주해협 및 NLL침범으로 정치적으로 압박을 받았던 정부여당은 부시의 북미대화 재개 발표로 숨통이 틔었다.
오는 13일 6.15 1주년 관련 김대통령 기자회견이 "알맹이 있는 내용이 될 것"이라고 청와대 관계자가 밝혀 북미대화 재개가 남북대화 재개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특히 7일 열린 한미 외무장관 회담을 마친 한승수 외무장관은 "파월 장관은 제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전망 등 현 남북대화 현황 및 전망 등에 관해 관심을 표명했다"며 "미국은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조속한 개최를 적극 지지한다는 견해를 표명했다"고 전하여 부시의 발표이후 남북관계가 급속도로 진전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정가에서는 이번 북미대화 재개가 '파월장관의 대북포용론'의 승리로 보고 있다. AP통신등 미언론들은 "파월 국무장관을 필두로 한 국무부의 온건론이 백안관과 국방부의 강경론을 물리친데는 미 상원이 여소야대로 바뀐 것이 한몫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비록 온건파의 부분적 승리이기는 하나 부시의 대화재개 전제조건이 부시의 대북 강경노선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고 있어 부시가 제시한 대화조건을 뜯어보면 북한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어서 북-미대화가 순항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3개의 가시박힌 북미대화 - "부시, 변한게 없다"
부시는 북미대화의 의제로 3가지를 제시하였다. 첫째, 미북 제네바합의 개선, 둘째, 북한 미사일의 개발, 생산, 배치, 수출의 4단계 검증, 셋째, 재래식 감축의 미북 직접 논의이다.
그러나 부시의 이번 북미협상 의제에는 북한이 요구하는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북미대화를 한다는 미국이 북한을 적성국으로 규정한 '테러국'을 고수하려는 것은 미국의 MD추진의 전제조건인 '테러국 북한'의 필요성때문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우선 부시가 제시한 '제네바 합의 개선'은 '개선'(improvement)가 아니라 '이행의 개선'(improved implementation)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2003년까지 북한에 경수로를 지어주기로 한 제네바 합의안에 대해 기본적으로 불신하고 있다. 경수로에서 풀루토늄이 추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제시한 '개선(이행의 개선)'의 핵심은 '경수로 완공전 북한 핵의 조기 사찰'이 실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2003년 완공 예정이던 것이 2008년에나 1호기가 완공될 예정이어서 북한은 제네바 합의의 성실한 이행을 계속 주장하며 이에 대한 손실분의 보상을 요구했었다. 따라서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이 제네바 합의이행을 불성실하게 하고 있는 상황에서 합의안에 없었던 조기사찰이라는 개선안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여 협상 전망이 불투명하다.
둘째, 부시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개발사업에 대한 검증가능한 규제'와 '미사일 수출금지'를 제시하여 미사일의 개발, 생산, 배치, 수출의 4단계를 철저히 검증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 미사일 협상은 클린턴 시절 타결직전까지 갔었다. 북한이 미사일을 전량폐기하겠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부시는 클린턴 행정부와 북한간의 협상을 어디까지 인정할 지에 대한 언급이 없고 미사일 문제해결에 대한 구체적 방안제시가 없어 이후 협상의 전개상황도 불투명하다.
또한 미국의 MD구상이 '불량국가' 북한등의 미사일 테러가 주원인으로 들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미사일 협상문제는 불량국가 해제와도 맞물려 있는 사안이다. 즉 미국입장에서는 북한의 미사일을 폐기시키는 노력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불량국가' 북한의 미사일 존재가 MD의 전제조건으로 필요하다는 자기모순에 빠져있는 것이다.
셋째, 북한의 '재래식 군비감축'문제에 대해서는 한-미간에 갈등 사안이기도 하다. 정부는 그동안 재래식 군비 통제는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른 불가침조약을 통해 남북이 해결할 문제라는 일관된 입장을 가졌다.
지난 3월 한미정상회담에서 김대통령은 미국은 '핵과 미사일'문제를 담당하고 한국은 '재래식 무기 군축'문제를 담당하는 '한-미 역할분담론'을 제시하였고, 지난달 열린 한미일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회의에서도 미측에 이런 입장을 전달하였다. 또한 정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때 남북간의 군사적 신뢰 구축조치 문제가 중점 논의될 것"이라는 입장을 미측에 전달했다.
그러나 부시가 이번에 제의한 것은 재래식 무기 위협이 주한미군 3만7000명의 안전과도 직결된다는 이유를 들어 남북간의 해결이 아닌 '북-미간의 직접 논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만약 미국이 북한에 대한 재래식 군비통제 문제를 제기할 경우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라는 카드를 들고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 북미관계가 더욱 꼬일 가능성도 예견하고 있다.
북미대화는 우려, 남북대화는 실현
이렇듯 부시가 북미대화의 안건으로 제의한 3가지 내용을 보면 북미협상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부시는 "북한이 긍정적으로 응해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면 북한 인민을 돕고 대북제재를 완화하는 한편 기타 정치적인 조치를 치하기 위한 노력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부시대통령이 테러지원국 해제나 관계개선이라는 직접적인 용어를 쓰지 않고 포괄적인 용어를 쓴 데 대해 아직 대북 불신이 짙게 깔려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부시 행정부가 미·북협상 의제에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 감축과 핵시설에 대한 국제사찰 강화등을 포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븍한이 이런 새 조건에서 미국이나 남한과 대화를 재개하려 할지 의문스럽다."고 밝혔다.
한편 8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민주당의원들은 부시대통령의 '핵사찰등 일부분의 이견으로 인해 전체협상이 경색될 가능성도 있다'며 '포괄적 접근자세'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고 한나라당 의원들은 "상호주의와 검증이라는 미국의 대북정책은 전혀 변한게 없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우려와 회의가 있지만 북한이 부시행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미사일 개발유보, 제네바 합의 준수요구, 북미대화 의사표명 등 지속적으로 북미대화의 신호를 보내왔었기 때문에 미국과 북한간의 대화는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한미 외무장관회담에서 파월 장관이 밝힌 '2차 남북정상회담' 적극 지지를 함으로써 그동안 막혔던 남북대화가 다시 시작되게 되어 오래간만에 남북관계에 해빙무드가 일고 있다.
박혜경기자(polyad@ewinc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