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 칼럼] ‘전광훈’ 아니라 ‘홍준표’를 징벌한 김기현 대표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최근 자신에 대한 비판을 계속해온 홍준표 대구시장을 당 상임고문 자리에서 해촉했다. 김 대표는 “상임고문의 경우 현직 정치인이나 지자체장으로 활동하는 분은 안 계셨던 게 관례”라며 “그에 맞춰 정상화시킨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그동안 홍 시장이 전광훈 목사와 당의 관계 등 여러 현안에 대해 김 대표를 비판하는 의견을 내놓았던데 대한 대응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홍 시장은 최근 김재원 최고위원의 ‘5·18 헌법 수록 반대’ ‘전광훈 우파 천하통일’ 등 거듭되는 설화를 놓고 전광훈 목사와의 관계 단절과 김 최고위원의 강력한 징계를 요구했다. 단지 그들을 비판하는데 그치지 않고 김 대표의 미온적인 대처를 비판하며 비상대책위원회 출범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지방자치행정을 맡은 분은 그 일에만 전념했으면 좋겠다"고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당장 홍 시장은 반발하고 나섰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엉뚱한데 화풀이를 한다"며 "그렇다고 해서 내가 잘못돼가는 당을 방치하고 그냥 두고 가만히 보고만 있겠느냐"고 항변했다. 홍 시장은 그러면서 "입당 30여년 만에 상임고문 면직은 처음 들어본다"며 "참 어이없는 당이 돼가고 있다"고 이번 조치를 비판했다. “이 참에 욕설 목사를 상임고문으로 위촉하라”는 야유성 비판까지 했다.
이준석 전 대표도 비판에 가세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상임고문 면직이라는 건 처음 들어본다"면서 "정당에서 당내 구성원이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이 있으면 윤리위로 몽둥이 찜질하는 걸 넘어서 이제 상임고문 면직까지 나온다"고 이번 결정을 비판했다. 김웅 의원도 "차라리 막말을 하라는 건가"라고 비판했고, 천하람 국민의힘 순천갑 당협위원장도 "쓴소리하는 사람은 다 쳐내고 아부하는 사람들과만 연대하겠다는 것이냐"며 ""김기현 대표의 '연포탕'은 '연대 포기탕'이냐"라고 따져 물었다. ‘친윤’ 지도부와 거리를 두고 있는 당내 비주류 정치인들은 이번 조치를 어이없게 받아들이는 모습들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김 대표가 갑작스럽게 상임고문 해촉 조치를 취한 배경으로 ‘윤심’을 의식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특히 최근 홍 시장이 방송에 출연해서 윤 대통령의 정치력까지 직설적으로 비판한 일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얘기이다. 그런데 이같은 국민의힘 내부의 반발들이 아니더라도 김 대표의 이번 조치는 득보다 실이 크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이번 조치는 대단히 감정적인 것으로 비쳐진다. 당의 상임고문은 어떤 실질적인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닌 명예직이다. 그런데 굳이 그런 자리에 대해 전례없는 해촉 조치를 취한 것은 ‘괘씸죄’에 따른 분풀이라는 시선을 낳게 된다. 공연히 이를 둘러싼 당내 이견과 갈등만 부각될 것이고, 국민의 눈에는 여당 내부의 분열이 심화되는 것으로 비쳐지게 되어 있다. 전혀 정치적이지 못한 조급한 결정이었다.
더구나 쓴 소리를 한 홍 시장은 벌을 받는데, 정작 국민의힘을 ‘극우’로 비쳐지게 만든 문제의 근원인 전광훈 목사 세력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응이 없다. 물론 김 대표는 "특정 목회자가 국민의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당 지도부가 그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이 말이나 될 법한 일인가"라며 전 목사 쪽과 선을 긋는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전 목사가 국민의힘에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음이 김재원 최고위원의 발언 등에서 드러났는데도, 그의 영향력을 당에서 거세하기 위한 조치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이미 하태경 의원은 전 목사의 추천으로 입당한 당원들에 대한 조치가 필요함을 요구한 바 있다.
이대로 가면 내년 총선에서 여당인 국민의힘이 과반 의석을 얻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근래 들어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동반하락을 계속하고 있다. 김기현 대표가 들어선 이후 국민의힘은 ‘친윤’ 정당으로만 인식되며 당의 존재감을 잃었다는 지적이 무성하다. 김기현 지도부로부터는 어떤 담대한 혁신방안도 나온 적이 없다. 국민의힘은 전광훈 목사 같은 사람들에게 휘둘리며 과거회귀적인 정치를 하는 당이라는 여론의 시선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21대 총선에서 혁신하지 못하고 막말정치의 모습만 보이다가 참패했던 교훈을 어느새 망각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김기현 지도부는 부인하겠지만, 전광훈 목사와의 관계를 단절하라는 쓴 소리를 했다가 홍 시장이 벌을 받는 것으로 비쳐지게 되었다. 이런 여당을 국민의 어떻게 볼지 깊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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