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 칼럼] 솥뚜껑 보고 놀란 서울시의 경계경보 발령

2023-05-31     유창선 정치평론가

북한은 5월 31일부터 6월 11일 사이에 인공위성을 발사하겠다고 일본 해상보안청과 국제해사기구에 통보한 바 있다. 북한의 통보 내용은 인공위성 발사에 따라 잔해가 떨어질 수 있어 해상에 위험 구역을 설치하겠다는 것이었다. 북한은 지난 2016년 2월 광명성을 발사할 때도 사전에 국제기구에 통지한 적이 있었다.

물론 우리 정부는 성명을 내고 북한에 대해 “끝내 발사를 강행한다면 그에 대한 응분의 대가와 고통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의 군사정찰위성은 북한의 핵 미사일 능력 고도화의 일환이라는 것이 한국과 미국 정부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이 이 기간에 자신들이 말하는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것은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실제로 해양수산부는 일본 해상보안청이 북한의 통보에 따라 내린 항행경보를 확인하고 국립해양조사원에 이 사실을 알렸고, 해양조사원은 이미 항행경보를 내린 상황이었다.
 

31일 아침 서울시가 보낸 위급재난 문자. [사진=연합뉴스]

이런 상황을 돌아보면 31일 아침 서울시가 경계경보를 발령하고 시민들에게 대피 준비를 하라는 위급재난 문자를 보낸 것은 소동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일이었다. 이미 예고된 발사였고 발사체가 서해 먼바다 해상을 향했으니 수도권과 직접 관련이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상식적으로 공격용 미사일 발사를 했거나 서울 상공에서 발사체의 일부가 떨어질 위험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공연한 경계경보를 발령했던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안전에는 타협이 있을 수 없고 과잉으로 대응하는게 원칙이라 생각한다"고 설명했지만, 갑작스러운 ‘대피 준비’ 문자에 ‘전쟁이 난 줄 알았다’며 불안에 떨어야 했던 시민들의 입장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생각이다. 전쟁이나 군사적 공격에 대한 대응은 소홀해서도 안되지만 불필요하게 국민들에게 공포심을 안겨주는 과잉대응을 해서도 안된다. 그것이 서울시 뿐 아니라 정부의 책임이다.

과잉대응의 문제 이외에도 이번 일은 여러 문제를 드러냈다. 수도 서울에 경계경보를 발령하는 중대한 일에 대해 행정안전부와 서울시의 손발이 맞지 않아 혼란은 가중되었다. 행안부는 “서울시에서 발령한 경계경보는 오발령 사항임을 알려드림”이라고 정정 재난문자를 보냈다. 서울시의 실수였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서울시는 “행정안전부 중앙통제소에서 북한 위성 발사체 관련 지령방송이 수신됐다”며 “이에 따라 서울시가 경계경보를 발령했다”고 책임을 행안부에 떠넘겼다. 대체로 서울시의 과잉대응으로 판단되지만, 경계경보를 발령 경위를 놓고 관련 기관들끼리 굳이 공개적으로 책임 떠넘기기를 하는 모습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른 아침 시간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 것인가를 걱정해야 했던 시민들에게 함께 책임을 통감해야 할 주체들이다.

서울시가 시민들에게 대피 준비를 하라며 보낸 위급재난 문자도 부실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대피 준비를 하라는 것인지 최소한의 설명은 있어야 시민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저 경계경보를 발령하고 대피 준비를 하라는 문자는 평소 비상 상황에 대한 준비가 얼마나 허술했을까를 생각하게 만든다. 오늘 아침의 발사체는 북한에 의해 이미 예고되었던 것 아닌가. 기간과 경로까지 예고한 발사체에 대해서도 이렇게 허둥대는 모습을 보여 아침 시간에 국민들을 대혼란 속에 빠뜨렸으니, 혹여 예고되지 않은 실제 상황이 발생한다면 얼마나 우왕좌왕할까 걱정부터 든다.

여권 일각에서는 안보에 관해서는 과잉대응이 낫다거나, 경계경보 발령은 적절했다는 말도 나오고 있지만 이는 진영 논리에 갇힌 궤변이다. 국민들이 겪어야 했던 불안과 공포를 생각한다면 정부와 서울시는 대단히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자라는 없는데도 솥뚜껑만 보고도 놀라는 이런 식이라면, 혹여 잘못된 상황 판단으로 한반도 정세를 우발적으로 악화시키는 실수가 없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정부와 서울시는 오늘 있었던 상황을 어물쩡 넘기지 말고 차제에 위기 대응에 대한 시스템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제대로 점검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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