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러, 루마니아 인근까지 폭격하며 우크라 곡물 수출 루트 차단 "식량위기 심화"

흑해곡물협정 파기 후 우크라이나 오데사항 5일간 폭격.. 흑해 수출 전면 중단 루마니아 인근 다뉴브강 항구에도 드론 공격 감행.. 나토 확전 우려도 EU, 우크라 곡물 회원국 육로로 우회 수출 방안 모색 우크라 "곡물 수출 안전 위해 F-16 전투기 필요"

2023-07-26     김승훈 기자
루마니아 인근 다뉴브강 항구에도 드론 공격 감행.. 나토 확전 우려도 [사진=AP=연합뉴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흑해곡물협정을 파기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주요 곡물 수출항인 오데사에 이어 루마니아와 인접한 다뉴브강 하류 일대 항구까지 공격하면서 우크라 곡물 수출에 차질이 커지고 있다. 특히, 루마니아는 나토 동맹국인 만큼 경우에 따라 나토가 전면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세계 옥수수 수출 4위, 밀 수출 5위 국가인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 차질로 국제 곡물가격도 다시 크게 오르고 있어 식량위기도 심화될 전망이다. 

러시아가 식량 무기화로 국면 전환을 꾀하는 모습이다. 흑해곡물협정 종료 이후 이달 18일부터 우크라의 흑해 수출항이었던 오데사주 오데사를 거의 매일 폭격하며 곡물 수출을 방해하고 있다. 

또, 지난 24일에는 루마니아와 가까운 오데사주 레니 등 다뉴브강 항구에 드론 공격을 감행했다. 이번 공격은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 접경지역인 다뉴브강 삼각주 지역에 대한 첫 공격이다.

美 뉴욕타임스(NYT)는 24일(현지 시간) 루마니아에서 불과 수백m 떨어진 강 건너편 지역에 대한 공격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인 루마니아를 위험에 빠트리는 한편 우크라이나의 흑해를 통한 곡물 수출의 우회로마저 차단해 우크라이나 경제를 고사시키려는 시도라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몰도바의 국경이 교차하는 다뉴브강 삼각주 지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까지 곡물 수출항으로 거의 활용되지 않았으나 최근에는 필수 수출로가 되고 있다. 전쟁 발발 후 우크라이나는 다뉴브강 항구들을 통해 매달 200만t의 곡물을 수출해왔다.

그간 러시아군은 나토 회원국인 루마니아와의 확전 및 나토군과의 전면전 우려로 이 지역 인프라에 대한 공습을 주저해왔다.

하지만, 우크라 곡물 수출을 차단하는 것이 당면 과제가 되면서 러시아가 확전의 위험도 감수했다는 분석이다. 

당장 루마니아는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루마니아 국방부는 성명을 통해 "아직 루마니아 영해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나 피해는 없다"면서 "동맹국들과 함께 강화된 경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우크라의 곡물 수출이 차단되면 전세계 식량 가격 급등이 불가피해진다는 점이다. 

우크라는 러시아 침공 전인 2020년 기준으로 세계 옥수수 수출 4위, 밀 수출 5위 국가였고 수출량의 95%를 흑해 해운으로 처리했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침공 직후 흑해 연안의 우크라 항구가 봉쇄되면서 아프리카와 중동으로 가던 밀이 끊겨 곡물가격이 급등한 바 있다. 

이번 러시아의 폭격으로 곡물가격은 다시 치솟고 있다. 24일(현지시간)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거래된 미국 소맥 선물 가격은 전장대비 8.60% 치솟은 부셸당 757.50센트를 기록했다.

EU, 우크라 곡물 회원국 육로로 우회 수출 방안 모색

이에 유럽연합(EU)은 우크라이나산 곡물 전량을 EU 회원국 육로를 활용해 우회 수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야누시 보이치에호프스키 EU 농업담당 집행위원은 25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27개국 농업장관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우크라이나 수출 물량 거의 전부를 '연대 회랑'을 통해 수출할 준비가 돼 있다"라고 밝혔다.

EU 연대 회랑(Solidarity Lanes)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우크라이나산 곡물 일부를 흑해 대신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동유럽 EU 회원국의 육로를 거쳐 발트해 항구를 통해 수출될 수 있도록 한 우회로다.

최근 러시아가 흑해곡물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면서 흑해로의 안정적 수출이 불가능해진 만큼, 이 육로 우회로를 통한 수출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뜻이다.

집행위는 또 우크라이나산 곡물을 연대 회랑으로 우회 수출할 때 발생하는 추가 운송비를 EU 예산으로 지원하는 방안도 논의할 방침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도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동유럽 5개국의 협조가 필요하다. 해당 5개국은 지난해 연대 회랑이 본격 가동된 이후 우크라이나산 농산물 유입 급증으로 현지 농산물 가격이 폭락했다며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결국, EU 집행위가 이들 5개국의 농업계 보호를 위한 사전 대책을 마련해야 육로를 통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확대도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우크라 "곡물 수출 안전 위해 F-16 전투기 필요"

전 세계를 대상으로 식량을 인질로 삼은 러시아의 행태도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이 기회에 더 많은 무기 지원을 요구하는 우크라이나의 모습도 빈축을 사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미국산 F-16 전투기를 제공받으면 국제시장으로의 곡물 수출 안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조속한 전투기 지원을 거듭 촉구했다.

리아노보스티통신에 따르면,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25일(현지 시각) 프랑스 공영방송 프랑스24와의 인터뷰에서 "F-16이 도입되면 우리는 우크라이나 곡물의 국제시장 수출에서 러시아로부터 위협을 당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쿨레바 장관은 "전투기를 더 빨리 받으면 받을수록 그만큼 더 빨리 효율적이고 보호받는 새로운 수출로를 가동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전투기 제공이 더 빨리 이루어질수록 수백만t의 곡물이 더 빨리 세계 시장에 공급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는 그동안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크게 밀리는 공군 전력 보강을 위해 F-16 전투기를 지원해 달라고 서방에 요청해 왔다. 그러나 미국은 확전을 우려해 F-16 직접 수출은 물론 동맹국들이 재수출 형태로 이 전투기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데도 반대해 왔다.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조종사들을 위한 F-16 훈련을 승인하면서 전투기 지원이 이뤄질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으나 이후로도 실제 전투기 제공 일정은 여전히 공표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