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광복회장 "대한민국 원년은 1919년, 건국 아닌 민주공화정 시작"... 尹면전에서 건국절 반박

尹, 최근 연이어 "독립운동은 건국운동" 언급.. 뉴라이트 '건국절'과 같은 주장 이종찬, 건국절 일축 "민족의 역사는 끊기지 않았다...1919년 임시정부, 민주공화정 시작" "한국, 기원전 2333년 이미 건국...1948년 이승만 건국론 용납 못해" 이승만기념관 건립 두고도 현 정부와 대립각.. 보수 진영 내에서 역사논쟁?

2023-08-15     김승훈 기자
윤 대통령 정치적 멘토로 알려진 이종찬 광복회장이 "1919년을 대한민국 원년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이종찬 광복회장이 보수 진영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건국절' 논란 종식을 주도하고 있다. '건국절' 논란은 대한민국 정체성 뿐만아니라 한민족 역사 정체성과도 직결되는 엄중한 문제다. 

뉴라이트를 중심으로 이승만 정부가 출범한 1948년을 대한민국 건국 원년으로 삼으려는 이른바 '건국절' 주장에 대해 이 광복회장은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을 대한민국의 원년으로 삼자"면서 "1919년 왕정을 종식하고 민주공화정을 선포했음을 기념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 회장은 "우리는 이미 기원전 2333년에 건국을 했으며, 건국이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이었다"고 강조했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 멘토로 알려져 있다. 윤 대통령이 정치 입문을 할 당시 이 회장에게 가장 먼저 논의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또, 윤 대통령은 이 회장의 아들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절친이다. 대광초등학교, 서울대 법대 동기로 오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그런면에서 이 광복회장의 주장은 윤 대통령의 거듭되는 '건국론'과 다른 '역사관'을 분명히 해 눈길을 끈다.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윤 대통령이 '독립운동은 건국운동'이라고 '건국론'을 강조했지만, 이 광복회장은 윤 대통령이 자리한 광복절 경축식에서 '건국론'을 정면 반대했다. 이 광복회장은 광복절 기념사에서 "우리 광복의 과정에서 흥망은 있었어도 민족의 역사는 끊기지 않았다"며 "1919년 고종이 승하하자 '더 이상 왕정은 없다'며 일제히 민주공화정으로 체제를 바꿔 독립운동을 새로이 시작한 것"이라고 '정부체제 변화일뿐 건국은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다. 

尹, 최근 연이어 "독립운동은 건국운동" 언급.. 뉴라이트 '건국절'과 같은 주장

윤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독립운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 운동"이라고 규정했다. 이같은 발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독립유공자 및 유족 158명과 오찬을 하는 자리에서도 "우리의 독립운동은 국민이 주인인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운동이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광복절을 앞두고 건국절 논쟁을 다시 꺼내들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건국절은 보수진영 가운데 뉴라이트를 중심으로 주창되는 개념이다. 이들은 1948년을 대한민국 건국 원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1945년 8월 15일 광복 전 독립운동 시기는 대한민국 건국 이전 상태로 규정한다.

반면,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상해 임시정부를 시작으로 대한민국이 건국됐으며, 국권을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을 이어갔다고 보고 있다.

'건국절' 논란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때 정부에서 "2008년이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이 되는 해"라며 건국6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조직하면서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

당시 위원회는 "광복절은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식민지 지배로부터 벗어난 광복만을 기념하는 것이므로 광복절보다 건국을 더 중요시해야 한다"며 "대한민국이 건국된 1948년 8월 15일을 기념해야 하고, 이를 위해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의 이번 "독립운동은 건국 운동" 발언도 뉴라이트의 주장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종찬 광복회장, "이승만 건국론 반대한다" "1919년 임시정부, 건국아닌 민주공화정 시작...기원전 2333년 이미 건국"

반면, 윤 대통령의 정치 멘토인 이종찬 광복회장은 '건국절'에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 광복회장은 15일 윤 대통령과 한자리에 참석한 광복절 78주년 기념식 기념사에서도 "우리 광복의 과정에서 흥망은 있었어도 민족의 역사는 끊기지 않았다"며 윤 대통령과 다른 주장을 일관되게 폈다.

이 광복회장은 "광복이란 일제의 군홧발로 더럽혀진 나라에서 주권을 다시 찾아 새롭게 빛을 밝히는 과정이었다"며, "1910년 일제는 대한제국을 병탄하여 주권을 앗아가려 시도했다. 그러나 우리 선열은 주권이 일본에 빼앗긴 것이 아니라 군주가 독점했던 주권을 국민에게 넘겨준 것이라 해석했다"고 강조했다.

이 광복회장은 "보라, 우리말도 그대로, 태극기도 그대로 아니냐"며 "그러므로 오늘 광복절은 우리가 다시 나라의 주인이 되는 날이고, 나라를 새롭게 발전시키는 계기를 이룬 날"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혹자는 조국의 광복은 연합군의 승리로 도둑처럼 찾아온 것이라 쉽게 말하는데, 선열들의 피나는 투쟁을 은연중 폄훼하고 있어 개탄을 금치 못한다"며 "선열들은 나라의 자주독립을 찾고자 목숨을 걸었다. 그 용기와 결단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앞서 이 광복회장은 윤 대통령과의 오찬 다음 날인 10일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기념 대한민국의 정체성 대토론회에서도 "대한민국의 원년은 1919년"이라며 "1948년 건국론은 이런 역사의 지속성을 토막 내고 오만하게 '이승만 건국론'으로 대체한 것이고 우리는 이에 반대한다"고 분명히 건국절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어 "1948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됐다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결과가 된다"며 "대한민국의 발전이 일본 식민통치로 공짜로 얻어진 것처럼 해석하게 되는데 이런 식의 억지 역사는 항일 독립운동을 의도적으로 부정, 폄훼하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뒤흔들려는 저의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사실 이 광복회장은 지난 6월 취임 이후 "대한민국의 원년은 1919년"이라고 꾸준히 목소리를 높여왔다.

이 회장은 6월 2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강포럼 강연에서는 "우리나라는 기원전 2333년에 이미 건국했다. 우리는 정부의 형태만 변화했을 뿐 나라는 계속돼 왔다"며 "그래서 1919년 임시정부도 건국이 아니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도 건국이 아니다. 정부를 '수립'한 것"이란 의견을 밝혔다.

최근 주요 언론과 인터뷰, 기고문을 통해서도 "1919년 상해 임시정부는 왕정에서 민주공화정으로 체제가 바뀐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을 대한민국의 원년으로 삼자"고 제안했다.

그는 "이를 부정하는 세력은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는 북한을 옹호하는 집단, 또는 독립운동을 고의로 폄하·왜곡하는 극우세력"이라며, 1948년이 대한민국 원년이라는 주장에 대해선 "일본의 주장, 이설(異說)"이라고 평가했다.

이 광복회장은 15일 보도된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도 1948년 건국절 주장과 관련 "1948년을 나라가 생긴 날로 잡는다면 1945년의 광복과 이날을 위해 피땀 흘린 선조들의 노력은 무엇이란 말인가"라며 "광복회의 수장으로서도 용납할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건국절을 인정하는 것은 그간 나라가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같다"며 "이는 일제 치하 아래 자행된 범죄에 대해서 한국이 목소리를 낼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같다. 건국절 주장론자의 논리대로라면 일본 정부가 식민지 자국민들을 상대로 범죄를 일으킨 꼴인데 한국 정부가 나설 틈이 있겠는가"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또한 이 광복회장의 아들이자 윤 대통령의 절친인 이철우 교수도 "일제강점을 정당화하는 논리"라며 ‘1948년 건국론’에 반대하고 있다.

이 교수는 "1948년 이전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일제에 의한 대한제국의 병합이 합법적이고 유효했음을 바탕에 깔고 있다"며 "이는 일제강점이 불법·무효였다는 역대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적 관점에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이승만기념관 건립 두고도 현 정부와 대립각.. 보수진영 내에서 역사논쟁 본격화

이 광복회장의 이같은 발언은 '건국절' 논란을 종식시키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 보수인사이자 윤 대통령의 정치멘토인 이 광복회장의 주장에 건국절을 주장하는 세력들이 쉽게 반기를 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 광복회장은 이승만기념관 건립에 대해서도 현 정부와 각을 세우고 있어 보수 진영 내에서 역사 논쟁이 본격화 될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는 박민식 보훈부 장관을 중심으로 이승만기념관 건립을 통해 '이승만 영웅 만들기'에 주력하고 있다. 윤 대통령도 지난 9일 오찬에서 이 회장에게 이승만기념관 건립을 도와 달라고 청하자 이 회장은 "팔을 걷어붙이고 돕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바로 다음날인 10일 "(기본적으로는 건립에 찬성하지만) 이 전 대통령을 신격화하는 '괴물 기념관'엔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회장은 "이승만 대통령 자신이 부정하는 식민사관을 왜 굳이 그분에게 덧칠하는가"라며 "왜 독립운동가이고 대일항쟁과 민주공화정에 앞장섰던 이승만 대통령을 다시 4·19 직전 정권욕을 탐한 대통령으로 끌어내리려 하는가"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이런 괴물기념관이 건립된다면 우리 광복회는 반대할 것임을 분명하게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