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결정.. 與 "판단 존중" 野 "역사 쿠데타"
홍범도 장군 외 독립운동가 4인 흉상도 "치운다" 김진태 "홍범도, 자유시참변 당시 독립군 공격" 주장 한덕수 "홍범도함, 주적과 전투를 해야 하는 군함" 명칭변경 필요성 언급 민주당 "독립투사 색깔론으로 들어내고 친일 극우 이데올로기 심겠다는 것" 광복회·기념사업회 "홍범도장군 흉상이전 반헌법·반민족적 행위"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육군사관학교가 교내에 설치된 독립운동가 5인의 흉상 가운데 홍범도 장군의 흉상만 독립기념관으로 이전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부는 독립지사를 독립기념관으로 모시는 것이라고 확대 해석을 차단하고 있으나 한덕수 총리는 홍범도함의 명칭도 변경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 파장이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육사와 국방부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유지한 반면, 민주당은 '역사 쿠데타'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현재 육사 내 생도 교육시설인 충무관 입구엔 홍범도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독립군 장군과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 등 5인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육사는 31일 입장문을 내고 "홍 장군의 흉상은 육사의 정체성과 독립투사로서의 예우를 동시에 고려해 육사 외 독립운동 업적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적절한 장소로 이전하기로 했다"면서 "각계각층의 의견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육사는 홍 장군과 함께 충무관 앞에 나란히 설치돼 있는 지청천, 이범석, 김좌진 장군과 이회영 선생 흉상도 육사 교정 내 적절한 장소로 옮긴다는 방침이다.
이번 흉상 이전은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지난 29일 국무회의에서 홍범도 장군의 공산주의 활동 이력을 지적하면서 "명확한 대적관을 가지고 군 간부를 양성하는 곳(육사)이 아닌 독립기념관 등 다른 적재적소에 이전하는 게 왜 잘못됐냐"면서 "한번 국무위원들도 생각해보자, 무엇이 옳은 것이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들도 같은 논리로 이전 결정에 지지를 표하고 있다.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1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홍범도 장군은 1962년 건국훈장을 받은 분, 독립유공자인 건 명명백백한 팩트"라며, "육사는 생도를 위한 폐쇄된 공간이지만 독립기념관은 모든 국민들이 다 가볼 수 있는 공간이기에 독립기념관에 모시면 홍범도 장군의 독립지사로서의 업적을 더 많은 국민들이 보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진태 "홍범도, 자유시참변 당시 독립군 공격" 주장
하지만, 여권 내에서는 '홍범도=공산주의자'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이 예비역-안보 단체와 함께 진행한 '대한민국 정통성 부정 육사 공산주의자 흉상 존치 규탄대회' 기자회견 후 백브리핑에서 김영교 제대군인자유노동조합 공동대표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은) 독립기념관도 (이전이) 절대 안 된다"며 "왜냐면 홍범도는 파묘해서 북한으로 보내야 돼. 북한으로 보내려고 하고. 김정은이한테 우리는 보내려고 하는 거다"라고 말했다.
함께 있던 김일권 국가원로회의 사무총장도 "대한민국 헌법이 그거는 절대로 용납 못 해요. 공산주의 용납을 못 해요"라고 말했다.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31일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철거가 맞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지사는 31일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1921년 소련 적군(赤軍)에 의해 우리 독립군 수백 수천 명이 몰살당한 자유시 참변으로 우리 무장독립군은 사실상 궤멸됐다. 사료에 의해 홍범도 장군이 이 사건에서 소련 편에 가담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자유시 참변 이후 홍범도는 레닌에게 권총을 하사받고 평생 차고 다녔다고 한다. 그럼 우리 독립군을 살육했다는 사람을 다른 데도 아닌 육사에 모셔놓고 생도들에게 뭘 배우라는 것인가"라며 "천보만보를 양보해도 동지를 학살한 사건의 유력 용의자"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1962년 건국훈장을 추서했으니 더 따지지 말라고? 그땐 자료가 미흡하고 몰라서 그랬을 수 있지만 지금은 다르다"며 "새로 드러난 사실을 알고도 홍범도 동상에 굳이 예를 표하고 싶다면 그대들의 조국은 어디인가"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참변에 가담했다는 역사적 근거는 현재까지 없으며, 역사학계에서도 그가 참변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설이 주류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과거 회귀' 우려 목소리.. 당 지도부 "신중"
여권 내에서는 자칫 역사 논쟁으로 빠질 경우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천하람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지난 31일 전남 순천에서 열린 최고위 회의에서 김기현 대표에게 "홍범도 장군과 관련한 논의를 두고 국민의힘이 과거로 돌아가려는 것 아니냐 하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에 당 지도부는 논란에서 한발 물러서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31일 "정부 입장을 존중하면서 국민 여론을 챙겨보겠다"고 말했다.
강민국 국민의힘 수석대변인도 같은 날 기자들과 만나 "당 공식 입장이라기보다는, 국방부와 육사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홍 장군님 문제는 왜 이전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왜 문재인 정권 때 대한민국의 육군을 키우는 육사에 설치했느냐가 문제"라고 덧붙였다.
민주당 "독립투사 색깔론으로 들어내고 친일 극우 이데올로기 심겠다는 것"
반면 민주당은 "독립영웅을 이렇게 모욕하고 부관참시한 정권은 일찍이 없었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강선우 민주당 대변인은 31일 브리핑을 통해 "육군의 미래를 이끌 동량들에게 독립혼을 일깨우던 독립투사들의 흉상을 이렇게 밀어내겠다니 억장이 무너진다"며, "항일독립운동의 역사를 지우려는 윤석열 정권의 역사 쿠데타"라고 날을 세웠다.
그는 "전향할 조국조차 없이 싸우던 독립투사들을 색깔론으로 들어내고, 그 자리에 친일 극우 이데올로기를 심겠다는 속셈"이라며 "오늘 흉상 철거 결정으로 윤석열 정권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반국가세력이 됐다"고 비판했다.
이어 "역사를 잊은 정권에게 미래는 없음을 경고한다"며 "민주당은 윤석열 정권이 '역사 쿠데타'로 대한민국의 뿌리를 흔들도록 수수방관하지 않겠다. 국민과 함께 육군사관학교의 흉상 철거를 막기 위해 함께 싸우겠다"고 경고했다.
광복회·기념사업회 "홍범도장군 흉상이전 반헌법·반민족적 행위"
홍범도장군 기념사업회와 광복회 대전지부는 경술국치일인 지난달 29일 홍범도 장군의 묘소가 있는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육사와 국방부의 홍 장군 흉상철거 계획을 맹비난했다.
이들은 "독립전쟁영웅에 대한 흉상철거 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고 반헌법적 역사왜곡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대한민국 헌법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어 임정의 군사제도가 바로 국군의 역사임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며 "흉상 철거는 국군의 역사적 정통성을 부정하고 헌법정신을 훼손하는 반민족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특히 "홍 장군은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37회 전투를 벌였고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승리를 일궈낸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이라며 "연해주에서 오직 독립을 위해 헌신한 장군의 공산당 입당은 이념보다 중요한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독립전쟁에서 가족을 모두 잃고 이역만리 카자흐스탄에서 조국의 광복을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신 장군의 삶을 이념의 잣대로 짓밟지 말라"고 경고했다.
홍 장군 흉상과 함께 놓여 있는 이회영 선생과 지청천, 김좌진, 이범석 장군 등도 거론하면서 "독립군과 광복군이 우리 국군의 뿌리임을 확인하고 그 정신을 계승해 육군사관학교의 정통성을 세우기 위함이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는 역사를 왜곡·부정해 정치적 이익을 챙기려는 시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며 "국방부장관은 철거계획 백지화를 국민들에게 밝히고 사과해야하고 책임자를 엄중 문책해야한다"고 촉구했다.
한덕수 "홍범도함, 주적과 전투를 해야 하는 군함" 명칭변경 필요성 언급
이런 가운데 정부는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뿐만 아니라 해군 잠수함 '홍범도함'의 명칭도 변경하려는 의지를 내비쳤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31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정부 입장에서 홍범도함 개명 문제를 검토하나' 질의에 "국방부에서 검토를 하리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한 총리는 "군함에다가 소련 공산당 자격을 가졌던 사람 (명명은) 수정을 검토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우리의 주적과 전투를 해야 하는 군함"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으로 논란이 일자 국방부는 1일 "해군에서 검토하는 것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진화에 나섰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총리께서 의원 질문에 답한 것인데 그럴(개명) 필요성을 얘기하신 것 같다"며 "해군에서 함명을 바꾸거나 하는 검토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