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정부,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전면 부인.. 대통령실·정부여당 전면 '무반응'

일본 관방장관 "정부 내에서 사실 관계 파악할 수 있는 기록 없다" 공식입장 윤미향 조총련 행사 참석 때리던 대통령실·정부·여당 '침묵’ 박지원 "윤 대통령, 역사 포기해 버려" 윤미향 "간토학살 침묵하는 태도 씁쓸" 일본 현지 시민단체, 조선인 학살 사실 담긴 지방정부 보고서 공개

2023-09-06     김승훈 기자
일본 정부가 최근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사실을 부인한 것에 대해 대통령실과 정부, 여당이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무소속 윤미향 의원이 지난 1일 친북 단체인 조총련이 공동주최한 '관동 대지진 100주년 행사'에 참석한 것을 두고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반국가 행위"라고 융단 폭격을 퍼붓고 있다. 하지만, '관동 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사실이 없었다'는 일본 정부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있어 '친일 행태'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당시 조선인 학살 정황이 담긴 일본 지방정부 문서가 공개돼 진상 규명에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윤미향 의원은 이나영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과 함께 지난 1일 일본 도쿄에서 조총련을 비롯한 여러 시민단체가 공동주최한 관동(關東·간토)대지진 100주년 행사에 참석했다.

이를 두고 윤석열 대통령은 4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자유민주주의 국체를 흔들고 파괴하려는 반국가행위"라고 말했으며, 대통령실도 "국민의 세금을 받는 국회의원이 반국가단체 행사에 참석, 남조선 괴뢰도당이라는 말까지 들으며 끝까지 앉아 있는 행태를 우리 국민이 어떻게 이해하겠나"라고 비판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윤 의원에 대한 비판을 쏟아 내며 의원직 제명안까지 제출했다.

김기현 대표는 지난 4일 "북한 김정은을 추종하는 집단이 주최하는 행사에 참석해 동조한 윤 의원은 국회의원은 물론 대한민국의 국민자격조차 없다"며, "윤 의원은 북한의 조선노동당 간부에나 더 적합한 인물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 정부와 여당이 일본 정부의 입장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어 '친일 행태'라는 비판이 나온다.

간토대지진 조선학살은 지난 1923년 9월 1일 당시 지진 발생 후 "재일조선인(또는 중국인)이 폭도로 돌변해 우물에 독을 풀고 방화·약탈을 하며 일본인을 습격하고 있다"라는 유언비어가 나돌면서 일본 민간인들이 자경단을 조직해 6000여명에 이르는 재일조선인을 무차별적으로 죽인 사건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지난 1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과 관련 사실 관계를 정부로서 조사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정부 내에서 사실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내각을 대표하는 관방장관의 발언임을 고려하면 일본 정부가 전면 부인한 셈이나 마찬가지이다. 이에 대해 용산 대통령실이나 우리 정부의 반응은 아직까지 없다.

박지원 "윤 대통령, 역사 포기해 버려" 윤미향 "간토학살 침묵하는 태도 씁쓸"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일본의 관동대학살 부정에 대해 대통령이나 총리가 한마디 말도 못 하는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이다"라고 개탄했다.

박 전 원장은 4일 KBC '여의도초대석'에 출연해 "우리는 진상 규명을 하고 일본이 역사적으로 반성을 하고 피해자들한테 배상을 하도록 해야 하는데 강제징용도, 위안부도 윤석열 대통령은 한일 정상회담을 한다는 미명 하에 역사를 포기해 버렸다"고 비판했다.

이어 "관동대학살 사건에 대해서 대통령이, 그 말 잘하는 총리가 한마디 말도 못 하는 것이 오늘의 한일관계이고 우리 대한민국 역사관이다. 대통령의 생각이다"라며 "이걸 보더라도 얼마나 우리가 잘못하고 있는가, 윤석열 대통령이 잘못하고 있는가 웅변으로 증명되지 않습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미향 의원도 정부를 향해 "간토대지진에 침묵하는 태도가 씁쓸하다"고 역공했다.

윤 의원은 5일 오전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한국 정부가 간토대지진 100주년인데도 무관심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저는 30년간 이 운동을 해오면서 행사를 주최한 단체들을 만났고 연대했다"며 "재일동포 사회는 간토학살 기념일이 되면 모두가 제사를 지내고 통곡하는데, 정치권은 왜 침묵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윤미향을 통해 간토학살 100주년 조선인 희생자 추도사업이 국내에 알려진 적 있었나 생각이 들어 씁쓸하기도 하고 참담하다"고 말했다.

윤 의원은 같은날 입장문을 통해서도 "한일 문제는 굴욕외교로 일관하고, 독립운동가를 깎아내려 이념 공세에 불을 지피고, 민족의 크나큰 비극인 간토 학살을 총선을 앞두고 이념 장사로 써먹고 있는 국민의힘을 윤리위에 제소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의원은 "일본 시민사회에서는 지금 한국의 보수언론과 국민의힘이 벌이고 있는 간토 학살 행사를 둘러싼 색깔론 갈라치기를 두고 코미디 같은 상황으로 평가한다"며 "일본 시민사회는 100년 전 조선인에 대해 자행된 제노사이드 범죄에 대해서 대대적으로 추모행사를 준비했고, 그 과정에는 지역과 세대, 이념의 차이를 넘어 많은 사람이 함께했다. 다만 한국의 보수언론과 국민의힘만이 이념 몰이로 간토 학살 희생자분들에게 또다시 상처를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들도 정부의 '종북몰이'에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간토학살100주기추도사업추진위원회(추진위)는 6일 오후 1시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색깔론, 이념놀이를 당장 중단하라"며 윤석열 정부를 규탄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간토학살 100주기 추도행사 참여를 반국가적 행위로 모는 색깔론을 중단하고, 간토학살에 대한 진상규명에 당장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자리에서 민족문제연구소 김영환 대외협력실장은 "학살을 당한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비석이 세워진 요코아미초 공원에서 헌화하고 기도한 것이 무엇이 문제냐"며 "식민지 역사를 분단의 굴레로 취급하는 극우 언론과 윤석열 정부는 반성해야 마땅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대한민국 정부는 지금이라도 부끄러운 줄 알고 종북몰이를 중단하고 당장 간토학살 진상규명에 나서야한다"며 "이런 뒤떨어진 시대착오적인 종북몰이가 언제까지 가능하다고 생각하느냐"고 일갈했다.

김 위원장은 "간토학살 100년이 된 지금 너무도 늦었지만, 한국 정부의 진상조사와 일본의 국가책임을 추궁하고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은 더는 늦출 수 없는 과제"라며 "중국의 피해자 유족과 관련된 조사나 배보상의 진척이 있었던 것에 비해, 한국에서는 피해자 유족의 인권회복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일본 현지 시민단체, 조선인 학살 기록 담긴 지방정부 문서 공개

이런 가운데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에 대해 일본 지방의 지사가 정부에 보고한 것으로 보이는 문서가 발견됐다고 현지 시민단체가 발표했다.

5일 도쿄신문에 따르면 일본 시민단체인 '간토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 사실을 알고 추도하는 가나가와 실행위원회(이하 위원회)'는 1923년 11월 21일자 작성된 문서를 공개했다.

해당 문서의 작성자는 당시 가나가와현 지사 야스코치 아사키치다. 문서에는 "지진 재해에 따른 조선인, 중국인에 관한 범죄 및 보호 상황 기타 조사의 건"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받는 사람은 일본 내무성 경보국장이다.

문서의 "내지인이 조선인에 대한 살상사건조" 항목에는 57건, 총 145명이 살해된 사례가 실렸다. 발생 일시, 범죄 사실, 피해자의 직업과 연령 등이 기재됐으며 14명의 피해자의 이름도 있다.

특히 '범죄 사실' 항목에는 방화 등 유언비어를 믿은 민중이 "범행을 저지른 조선인이라고 생각해 불안과 혼란을 느낀 나머지 살해" 등이 명기됐다.

위원회에 따르면 문서는 조선인 학살을 연구한 재일 역사학자 고(故) 강덕상 씨가 약 10년 전 고서점에서 발견했다.

위원회 대표인 야마모토 스미코는 기자회견에서 문서가 "(일본) 정부가 학살을 은폐해 온 증거"라며 지금까지 얻은 민간 증언 등이 문서와 일치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