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의대정원 1000명 늘린다? 정부 "사실무근 → 윤 대통령 오랜 소신".. '패닉' 의협, 17일 긴급 회의 소집
15일 고위당정회의서 의대 입학 정원 확대 논의 文 정부, 2020년 의대 정원 확대 추진.. 의사단체, 코로나 시국서 파업하며 반발 대통령실 "의대 정원은 국정과제".. 정부, 의료수가 확대 등으로 '의료계 달래기' 시도 의협, 총력대응 입장.. "의사와 의대생, 전공의 반발 2020년보다 더 심해" 정부·여당, 내년 총선 앞두고 민심잡기용으로 활용.. 민주당 "드디어 좋은 일 하나?"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정부와 여당이 의대 입학 정원을 1000명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의료계가 패닉에 빠졌다. 오전만 해도 "사실무근"이라던 대통령실은 오후 들어 "윤석열 대통령의 오랜 소신"이라며 의료 붕괴 상황을 막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의사 단체의 반발은 불가피해 보인다. 내년 총선을 의식한 정부와 여당의 고육책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야당인 민주당도 "국민적 지지가 있을 것"이라며 응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여당은 전날인 15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비공개 고위당정회의를 열고 의대 입학 정원 수 확대 등과 관련된 사안을 논의했다.
이후 일부 언론들이 내년 의대 정원을 100명 이상 확대하기로 결정됐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의료계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국내 의대 입학 정원은 2006년부터 17년째 3058명을 유지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6명으로 OECD 회원국 평균 3.7명에 못 미친다. 의대 정원 규모도 인구 10만 명당 우리나라는 7.26명으로 OECD 평균 13.5명보다 적다.
그간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됐으나 의사 단체들의 강한 반대로 번번이 무산돼 왔다. 지난 2020년 문재인 정부 당시 코로나 펜데믹으로 필수 의료 인력 확대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의대 정원 확대를 시도했으나 펜데믹 상황에서도 의사 단체들이 파업에 나서며 결국 무산됐다.
의사 단체는 의대 입학 정원 확대 보도가 이어지자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은 16일 "다음 달 2일 의료현안협의체에서 필수 의료 살리기 등을 충분히 논의를 하기로 돼 있었는데 이렇게 일방적으로 발표한 건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밝혔다.
그러자 16일 오전에는 대통령실과 보건복지부에서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1천명 증원 지시를 내렸다거나 오는 19일 의대 정원 확대 방안을 직접 발표할 것이라는 관측을 담은 보도는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보건복지부도 16일 오전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의대 정원 확대 규모는 아직 확정된 바 없다"며, 언론 보도에 대해 "상기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대통령실 "의대 정원은 국정과제".. 정부, 의료수가 확대하며 '의료계 달래기' 시도
하지만, 오후 들어 다시 의대 정원 확대가 공식화됐다. 정부 관계자는 16일 오후 "의대 입학정원을 최소 1000명 이상 확대한다. 한 번만이 아니라 정부 임기 내 계속 늘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확대 시기를 2025학년도 대학입시로 보고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도 여러 공개석상에서 "2025학년도부터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말해왔고 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는 의료현안 협의체에서 2025학년도 입시 때부터의 확대 원칙을 합의한 바 있다.
이렇게 되면 윤석열 정부 임기 내 의대 입학 정원은 3000명 이상 늘어나게 된다. '매년 최소 1000명 이상 확대하는 안'은 순차적인 증원을 의미한다.
이는 애초 복지부가 검토하던 증원 규모보다 많이 늘어난 숫자다. 복지부는 2025학년도 정원을 3058명에서 3570명으로 512명 늘리고 일정기간 정원 확대를 유지하는 방침을 지난 5월 마련한 바 있다.
그러나 소아청소년·산부인과 같은 필수의료 붕괴 우려가 커지고 고령화로 인해 의료 수요에 비해 의사 수가 크게 부족할 것이라는 국책연구기관 전망 등이 나오면서 증원 규모가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의대 정원은 국정과제였다"며 "지역의료, 소아과, 외과, 응급의학 등 필수 의료 공백으로 인한 국민 고충을 줄이는 것은 대통령의 오랜 소신"이라고 말했다.
증원은 의사 부족이 심각한 지방 국립대 의대와 현재 입학정원이 60명 이하인 소규모 의대 중심으로 이뤄질 방침이다. 정부 관계자는 "증원 원칙은 '미니의대' 육성과 지방 국립대에 우선한다는 것이고, 신설은 제외됐다"고 설명했다.
의사 단체 반발을 고려한 듯 지역 의료 강화와 국립대 병원의 의사 인력·임금 규제를 풀어주는 방안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또, 의사단체가 주장해온 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실 등 필수의료 분야 수가(酬價·건강보험 재정에서 병의원에 지급하는 의료행위 대가)를 올려줘 '의료계 달래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지난 12일 국감에서 "지역 간 의료 불균형에는 의료 수가, 인프라, 정주 여건 등이 문제"라며 "복지부가 제일 먼저 할 수 있는 의료 수가부터 손보도록 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정부는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공공정책수가'와 손실에 대한 사후보상 제도 확대 등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정책수가는 필수의료 분야에 대해 지역 특성이나 수요·공급을 반영해 보상하는 체계다. 의사단체들은 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실 등 필수의료 분야의 수가를 인상해야만 이들 분야로 우수한 의사 인력을 유치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의협, 총력대응 입장.. "의사와 의대생, 전공의 반발 2020년보다 더 심해"
정부의 '의대정원 증원' 발표가 임박한 가운데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언론 보도대로 금주 내 관련 정책이 발표될 경우 총력대응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의협 관계자는 "17일 의사 대표자 회의를 거쳐 공식 입장 채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사단체는 필수 의료 붕괴는 의사 부족이 아닌 특정 지역, 특정 과목으로 쏠림 현상이 문제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가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전향적인 대책은 빠진 채 포퓰리즘식 의대정원 증원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일방적으로 발표한다면 신뢰를 깨뜨리는 일"이라며 "의사와 의대생, 전공의 반발이 2020년보다 더 심하다"라고 밝혔다.
의사단체는 의대정원 증원 등 주요 의료 현안은 의협과 정부로 구성된 의료현안합의체에서 논의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울시의사회도 최근 성명서를 통해 "의대 신설이나 정원 확대는 9.4 의정합의의 정신에 위배될뿐더러, 의료인력 공급은 정확한 추계에 따라 실시돼야 할 것"이라며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 의료체제를 후속세대에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보다 근본적인 의료 개혁을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노력 없이 무책임하게 밀어붙인다면, 강력한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음을 경고한다"고 덧붙였다.
정부·여당, 내년 총선 앞두고 민심잡기용으로 활용.. 민주당 "정권이 드디어 좋은 일 하나"
이번 의대 정원 확대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정부·여당이 민심을 잡기 위한 회심의 카드라는 분석이다. 전통적인 보수 지지층인 의사단체의 반발이 예상되지만 필수 의료 붕괴나 지방 의료 인력 부족 문제 해결이라는 대의를 내세워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 내고, 의사단체의 숙원도 일부 해결해 주는 쪽으로 타협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의사단체도 현 정부와 여당에 가까운 만큼 끝까지 저항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지지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친명계 좌장인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16일 페이스북에 "의대 정원 확충, 말이나 검토가 아니라 진짜 실행한다면 역대 정권이 눈치나 보다가 겁먹고 손도 못 댔던 엄청난 일을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무능·무책임·무대책의 3무(無) 정권이 드디어 좋은 일 하나 하려는가 보다"라며 "공공의료 확대 방안 등을 보완해 분명하게 추진해서 성과를 내길 바란다. 국민들도 지지할 것"이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