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尹대통령, '노란봉투법·방송3법' 거부권 행사할까
재계·국민의힘 "노란봉투법, 방송3법 대통령 재의요구권 행사해야" 시민사회·민주 "대통령 거부권 후진국 자인...법안 받아들여야" 한덕수 "거부권 행사 시사" 김대기 "각계 의견들어 검토할 것" 거부권 행사하면 법안 폐기...양대 노총 법 시행 촉구 집회
[폴리뉴스 정민우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9일 국회본회의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 개정안, 일명 '노란봉투법'과 함께 '방송3법'을 여당이 전원 퇴장한 가운데 정의당 등과 야당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법안의 핵심은 노동 쟁의 과정에서 노동조합과 근로자가 회사에 질 수 있는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하는 것이다.
'노란봉투법'의 단독 통과로 정치권과 재계, 노동계가 입장차가 첨예하게 부딪히며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노란봉투법을 전면 반대하고 있는 국민의힘과 경제계는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강력 주장하고 있다.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에 대한 사회적 파장은 이제 윤 대통령 거부권 여부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민의힘과 재계는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윤재옥 "노란봉투법 ·방송3법, 정당이 이념 집단과 선거 거래, 총선용 거래일 뿐...대통령 재의요구권 행사해달라"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대통령께 재의요구권 행사를 건의드려야 하는 무거운 심정에서 어제 야당이 일방 처리한 노란봉투법, 방송3법 개정안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서 말씀드리겠다"고 서두를 꺼냈다.
윤 원내대표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 제3조 개정안은 우리 경제의 추락을 불러올 망국적 악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노골적으로 정당과 이념집단 간 선거 거래를 법률화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그는 "개정안(노란봉투법)은 근로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사용자로 봄으로써 근로계약 관계가 없는 원청사업주에게 사용자로서의 모든 의무를 부과하도록 되어있다"면서 "결국 기업들은 1년 내내 노사분규에 시달리게 되고 사실상 정상적인 기업 운영이 불가능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결국 이런 문제 많은 법안을 민주당이 지난 정부 내내 미루었던 건 경제에 미칠 심각한 악영향을 알았기 때문이고 인제 와 통과시킨 것은 총선을 앞두고 노조와 손을 잡기 위해서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방송3법'에 대해서도 "결국 방송3법 개정안은 민주당의 좌파 성향의 직능단체, 학술단체, 심의단체 등에 공영방송 이사추천권을 제공함으로써 선거 때 보도와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도움을 받겠다는 총선용 거래법안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당초 여당은 본회의에서 해당 법안 통과를 막는 필리버스터, 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진행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실행하지 않았다. 윤 원내대표는 이에 대해 "우리당은 다수당에 대항할 수 있도록 법률에서 보장하는 유일한 수단인 필리버스터를 포기했다"며 "정쟁에 눈 먼 민주당이 정국 혼란을 초래하고 국가 업무를 마비시키는 것을 묵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윤 원내대표는 "헌정사를 아무리 뒤져봐도 이처럼 노골적으로 정당과 이념집단 간의 선거 거래를 법률화한 사례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고 주장하며 "대통령께서 재의요구권을 행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정치적 결단임에 틀림없으나, 많은 국민들께서 이 법안들만큼은 반드시 폐기되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해 주시리라 믿는다"고 '대통령 법률안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를 요구했다.
한덕수 "경제 영향 심대...국익 검토해야" 김대기 "각계 의견 들어보고 검토하겠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같은 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방송3법과 노란봉투법 개정안 야당 단독 처리에 대해 "안타깝고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 총리는 "어제 국회에서 야당은 여당과 충분한 협의 없이 우리의 경제와 국민생활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법안을 강행 처리했다"고 지적하고 "정부로서는 민생과 거리가 있는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키는 안건들이 충분한 숙의 없이 처리되는 상황이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깝다. 그리고 유감스럽다"고 했다.
이어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해서도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해야만 가능한 탄핵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익을 위한 방향이 무엇인지 심도 있게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한 총리는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깝고 유감스럽다"면서 "우리 헌법은 국회의원에게 국익을 우선할 책무를 부여하고 있다"고도 했다. 한 총리는 "정부가 국민들께서 걱정하시는 민생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국회의 지원과 협조를 간절히 호소드린다"고 덧붙였다.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도 9일 브리핑을 열고 "전체 국민과 노동자의 권익 향상을 저해할 것이 자명한 개정안을 외면할 수 없다"면서 "법률안이 정부로 이송되면 대한민국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장관은 "이 법이 시행되면 (노조가) 무분별하게 교섭을 요구하고 폭력적인 파업이 공공연해지며 불법행위는 그 책임을 면제받게 될 것"이라며 "그 결과 산업현장이 초토화되고 일자리는 사라지며 국가 경쟁력은 추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그동안 노조법 개정은 노사정의 심도 있는 논의와 합의를 통해 이뤄져 왔다"며 "역사적 경험에 비춰봤을 때 일방의 입장만 반영한 노조법 개정은 엄청난 후폭풍만을 불러올 수 있다"고도 했다.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10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 감사에 출석해 거부권 행사와 관련해 "아직 정부로 이송되지 않은 것 같다"면서 "대통령실에서는 이송돼 오면 각계 의견을 듣고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대통령, 이번 법안 거부하면 3번째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 2건에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노란봉투법에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3번째 거부권 행사가 된다.
올해 4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거부한 것이 처음이다. 당시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열고 "시장의 쌀 소비량과 관계없이 남는 쌀을 정부가 막대한 혈세를 들여 모두 사들여야 한다는 ‘남는 쌀 강제 매수법"이라며 반대 이유를 밝혔다.
지난 5월에는 '간호법 제정안'도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유관 직역간의 과도한 갈등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며 "국민 건강은 다양한 의료 직역의 협업에 의해 지켜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은 정부에 이송된 법안에 대해 15일 이내에 국무회의 결정으로 재의결을 요구해 국회로 되돌려보낼 수 있다. 그 경우 국회가 본회의를 열고 재적 의원 중 3분의 2(200석) 이상이 다시 동의하면, 대통령을 거치지 않고 법안이 공포된다. 하지만 여당 의석으로 이를 막아낼 수 있어 사실상 법안이 폐기되는 셈이다. 앞서 2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도 모두 폐기됐다.
민주당 홍익표 "습관성 거부 안 돼...농민, 간호사 거부에 이어 또 거부하면 국민들이 尹 거부할 것"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1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윤 대통령을 향해 "'습관성 거부권 행사'를 업적으로 삼으려는 것이 아니라면 국회 입법권을 존중해 법을 공포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 원내대표는 "정부·여당은 법안 논의 과정에서 반대만 일삼다 법이 통과되니 거부권 행사를 예고하고 있다"며 "윤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명분도, 이유도 없다"고도 못박았다.
홍 원내대표는 "어제 국회는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을 통과시켰다"며 "정부여당은 법안 논의 과정에서 반대만 일삼는 무능과 무책임으로 일관하다가 법이 통과되니 거부권 행사를 예고하고 있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법의 내용과 절차가 정당하고 이 법들이 통과되면 큰 일이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떤 여당도 필리버스터를 철회했기 때문"이라면서 "농민을 거부하고 간호사도 거부한 데 이어 이제는 대다수 일하는 국민과 민주주의까지 거부한다면 국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거부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도 이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여당이) 필리버스터도 안 하고 통과시켜준 법을 대통령이 갑자기 거부권을 행사한다는 게 참 이해가 안 된다"면서 "법원행정처도 '그동안 생성되고 축적돼 왔던 판례를 반영한 정도의 법'이라는 그런 견해와 입장을 국회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늦게 만들어지고 늦게 통과돼서 죄송할 뿐인 법인데 그런 것들을 거부하는 건 맞지 않다"고도 했다.
시민사회 '노란봉투법 국회 의결 환영' 법 시행 요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10일 "'노란봉투법' 국회 통과를 환영한다"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곧 노동 후진국을 자인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실련은 "현행법은 근로자성 판단에 있어 고전적인 계약관계에 따른 사용자와 노동자만을 고려,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들을 노동 관련 법령에서 제외시키는 문제가 있었다"면서 "또한 노조의 쟁위행위 등에 따른 손해 발생에 대한 사용자 측의 배상 청구가 적정성을 일탈,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3권 등을 형해화 시킬 정도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같은 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북본부도 성명을 내고 "이번 법 통과는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 삼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의 결과이자 국제 사회의 오랜 주문이었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ILO 탈퇴마저 운운하는 대통령이 이에 거부권을 행사하면 투쟁으로 맞서겠다"면서 "'노란봉투법'을 곧바로 공포하라"고 주장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각각 조합원 3만 5000명과 2만명이 참석하는 노란봉투법 시행을 요구하는 도심 집회를 11일 벌일 예정이다.
한편, 노동계는 노란봉투법 즉각 시행을 촉구하는 집회를 연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양대 노총은 오는 11일 서울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고 지난 9일 국회를 통과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 개정안)의 즉각 공포·시행 등을 촉구하기 위해 노동계가 거리에 집결한다.
재계는 강력 반발 "노란봉투법 통과 매우 유감... 전면적 재검토 해야"
대기업을 대표하는 한국경제인협회는 10일 "경제계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회 본회의에서 노조법 개정안이 통과된 데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로 기업 경영의 어려움이 매우 가중되는 상황에서 노사갈등과 파업을 조장해 기업의 경쟁력을 크게 후퇴시킬 수 있는 노조법 개정안에 대해 전면적인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논평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우리가 수 십년간 쌓아온 법체계의 근간이 흔들리고 이 나라의 기업과 경제가 무너질 것임을 수차례 호소했음에도 법안 처리를 강행한 야당은 반드시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산업현장의 혼란과 경제적 파국을 막을 유일한 방법은 대통령 거부권밖에 없다"고 했다.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보내던 성금 봉투서 유래
법안은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해 하도급 등 간접고용 노동자와 배달기사 등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사용자의 법적 책임을 강화하고,노동쟁의 행위의 범위를 확대해 사용자에 의한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았다.
노란봉투법의 이름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평택 공장을 점거하는 과정에서 회사에 입힌 손해를 배상하라는 민사상 배상 책임을 지게 되면서 지어졌다. 당시 시민사회단체 등이 쌍용차 노동자를 지지하는 의미에서 모금 운동에 나섰고, 성금을 노란색 봉투에 담아서 지원했다.
이후 노조가 노동 쟁의 과정에서 지는 책임을 제한하자는 내용을 담은 법 제정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2015년 19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됐으나 처리되지 못했고, 8년 뒤인 올해 처음으로 국회 본회의 안건으로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