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尹정부, MZ 겨냥 "현행 주52시간제 유지" 발표.. 업종별 '최대 주60시간' 추진

3월 주69시간제 도입 시도.. 반발 거세자 尹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 재검토 지시 고용부, 8개월 만에 개편 방안 발표.. "노사 단체 사회적 대화 참여해 달라" 민주노총 "노동시간 개악 포기 않겠다는 선언".. 한국노총은 사회적 대화 참여 결정 與 "노사정 대화로 대안 마련" "노동개혁 후퇴 아니다" 野 "저녁이 있는 삶 뺏으려 하는 것" "구시대적 노동 개악" 국민 60% "주 52시간 이상 연장근로 부정적" OECD "장시간 노동, 저출산 원인"

2023-11-14     김승훈 기자
정부가 일부 업종·직종에 대해서는 최대 주 60시간 근무가 가능한 연장근로 유연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올해 초 윤석열 정부가 '주69시간제 도입'을 언급하며 사회적 반발이 커지자 뒤늦게 "현행 주52시간제를 유지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MZ세대와 노동자를 달래기 위한 대책이라는 평가다. 다만, 일부 업종·직종에 대해서는 최대 주 60시간 근무가 가능한 연장근로 유연화를 추진하기로 하면서 야당과 민주노총은 "꼼수 개악"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노총이 정부의 사회적 대화 복귀 요청을 전격 수용하면서 얼어붙어 있던 노정관계도 새 국면을 맞게 됐다.

고용노동부는 13일 근로시간 제도 개편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일부 업종과 직종을 대상으로 노사가 원하는 경우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보완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향'은 현행 주52시간제의 큰 틀은 유지하면서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는 일부 업종과 직종에 한해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난 3월 윤석열 대통령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근로시간 개편을 두고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큰 혼란을 야기한 바 있다. 특히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주69시간 도입'은 거센 사회적 반발을 불러 왔다. 그러자 윤 대통령은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며 근로시간 개편안 재검토를 지시했다.

이후 8개월 만에 이번 개편 방향이 발표된 것이다. 이번 개편 방향은 정부가 노사 및 국민 603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도 하다. 국민의 의견을 폭넓게 반영해 합리적인 근로시간 제도 개편을 추진하겠다는 취지다.

고용부, 8개월 만에 개편 방안 발표.. "노사 단체 사회적 대화 참여해 달라"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의 절반 가까이는 주52시간제로 장시간 근로가 감소했다고 평가하는 등 현행 근로시간 제도가 현장에 상당 부분 안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제조업 등 일부 업종과 직종의 경우 업무량 증가에 따른 대응 등 업종별·직종별 다양한 수요가 반영되지 못하면서 현행 근로시간 제도 하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정부는 현행 주52시간제의 틀은 유지하면서 필요한 업종과 직종에 한해 노사가 원하는 경우 연장근로 관리 단위에 선택권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그러나 어떤 업종과 직종에 한해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확대할 것인지 등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발표하지 않았다. 이번 발표는 개편 '방향'만 우선 설정한 것일 뿐 세부 방안은 노사정 대화를 통해 구체화하겠다는 것이다.

이성희 고용부 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근로시간 유연화가) 필요한 업종과 직종에 대해서는 이번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통해 구체적인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근로시간 제도는 2천만명 넘는 국민이 관계되는 법률 조항을 바꾸는 것이기에 노사의 수용성이 가장 중요하다"라며 "이번 기회에 사회적 대화에 노사 단체가 참여해 달라고 정중히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실도 고용노동부 발표와 관련해 입장문을 내고 "근로시간 개편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할 수 없다"며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등을 향해 "조속히 대화에 복귀해 근로시간 등 여러 현안을 함께 논의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노동현장의 실태를 보다 면밀하게 살펴보면서 노사 양측과 충분한 대화를 거쳐 많은 국민이 공감할 수있는 개선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성명을 내고 "'답정너' 설문조사로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노동시간 개악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했다. 한국노총도 "연장근로 단위기간 확대가 집중적인 장시간 노동에 악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숨겼다"고 지적했다.

다만, 한국노총은 이날 사회적 대화에 복귀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입장문을 내고 "지난 11일 열린 노동자대회에서 김동명 위원장이 정부는 지난 30년간 사회적 대화를 이끌어 온 한국노총의 노동자 대표성을 인정하고, 노동정책의 주체로서 한국노총의 존재를 인정하라고 요구했다"며 "대통령실 메시지는 김 위원장 요구에 대한 답변으로 풀이된다"고 밝혔다.

이로써 지난 6월 사회적 대화 전면 중단을 선언했던 한국노총은 5개월여 만에 대화 테이블로 나오게 됐다.

與 "노사정 대화로 대안 마련" "노동개혁 후퇴 아니다"

이에 국민의힘은 한국노총의 결정에 환영 메시지를 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13일 성명을 통해 "노사정 대화와 공감대를 통해 합리적인 개혁 대안을 마련하고 추진하도록 최선의 노력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 우리 노동시장은 노와 사, 정부와 정치권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사회적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야 할 산적한 과제를 안고 있다"며 "청년층과 중장년 등 일자리를 찾는 분들을 위해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미래 세대를 위해 지속적인 개혁과 혁신을 도모하려면 사회적 대화와 공감대 형성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은 한국노총이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기로 한만큼 내년 총선 전까지 근로시간 개편을 마무리 짓겠다는 방침이다. 이번 정부 발표에 대한 비판에 대해 "어떤 개혁도 현장을 벗어날 수 없고 현장을 존중하지 않는 계획은 성공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14일 국민의힘 원내대책회의 후 기자들을 만나 주52시간제 개편에 대한 노동개혁 후퇴라는 비판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윤 원내대표는 근로시간 개편에 대해 "근로시간 문제는 정부에서 유연하게 하려고 했지만 현장에서 다른 의견들이 많이 있어 현장 의견 수렴 과정을 오랫동안 거쳤다"며 "현장의 의견을 수렴해 정책에 반영하는 것은 포퓰리즘이라고 하면 모든 게 포퓰리즘이 될 수 있다. 정부에서는 현장 여론을 정확하게 정책화하는 과정이라고 이해해달라"고 당부했다.

野 "저녁이 있는 삶 뺏으려 하는 것" "구시대적 노동 개악"

반면,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은 이번 개편안에 대해 "국민과 노동자의 안녕을 위해 근로시간제 개편을 포기하라"고 촉구했다.

윤영덕 민주당 원내 대변인은 13일 브리핑에서 "주 52시간제는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 중 가장 공감도 높은 정책으로 손꼽혔다"면서 "국민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돌려줬는데 윤석열 정부는 기어코 다시 빼앗으려 하는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이어 "주 52시간제를 주 69시간제로 늘리려는 윤석열 정부의 시도는 다시 국민적 저항을 부를 것임을 경고한다"고 말했다.

이어 고용노동부를 향해 "윤 대통령에게 휘둘려 국민이 사랑하는 근로시간 단축제를 무력화하려니 망설여지느냐"며 "윤석열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에 대한 11개월 동안의 추진 실적이 설문조사 용역이 전부라니 의아스럽다"고 비판했다.

이재랑 정의당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주 52시간제 무력화에 혈안이 된 정부가 국민의 저항에 그 폭주가 막히자 꼼수를 꺼내 들었다"며 "국민의 눈총 소나기만 피하고 어떻게든 연장근로시간을 늘릴 수 있는 근거를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이어 "노동자들의 삶을 갈아 넣는 방식으로 이윤을 더 짜내겠다는 구시대적 노동 개악은 전면 중단이 답"이라며 "노동시간 연장의 미망을 끊지 못하면 정권의 생명이 끊길 수도 있음을 명심하라"고 덧붙였다.

국민 60% "주 52시간 이상 연장근로 부정적" OECD "장시간 노동, 저출산 원인"

국민 10명 중 6명은 주 최대 52시간이 넘는 근로시간 확대에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노총은 지난 달 30∼31일 여론조사기관 에스티아이에 의뢰해 전국 18∼59세 남녀 1000 명을 대상으로 윤석열 정부 노동정책에 대한 여론조사(95%신뢰수준에서 표본오차 ±3.1%포인트)를 실시한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에 따르면 "주 최대 근로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할 수 있도록 연장 근로시간을 확대하는 것이 노동자의 일과 생활의 균형을 실현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엔 ‘부정적’(‘매우’ 47.4%·‘약간’ 13.1%)일 것이라는 응답이 60% 이상이었다.

OECD는 장시간 노동 문화가 저출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 연구 결과도 발표했다.

OECD에서 30년간 가족 정책을 연구해온 윌렘 아데마 수석연구원이 최근 한국의 저출산을 주제로 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아데마 연구원은 △한국 근로자가 대부분의 다른 OECD 회원국 근로자보다 출퇴근에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점 △많은(주로 정규직) 근로자들이 퇴근 후 일주일에 몇 번씩 저녁에 동료들과 사교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점에 주목했다.

장시간 근로에 이런 요인들 더해져 출산율 저하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아데마 연구원은 모든 OECD 국가에서 임시 고용 비율이 증가하는 국가에서 출산율이 감소하는 현상을 목격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