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면희 칼럼] 공화주의로 본 김포시 서울 편입과 메가시티

2023-11-16     한면희 (성균관대 초빙교수, 공화21 상임대표)
국민의힘이 당론으로 경기도 김포시를 서울특별시로 편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1일 오후 경기도 김포시 거리에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연합뉴스]

1. 김포시 서울 편입 논란과 지역균형발전의 허실

추석을 목전에 둔 9월 말 내년도 총선 출마를 계획한 국민의 힘 당협위원장이 “김포시→경기북도? 나빠요, 서울특별시! 좋아요.”란 현수막을 내걸었다. 10월 말 국민의 힘 김기현 당대표는 김포시를 서울시로 편입하는 방안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역시 11월 8일 모임에서 김포시 서울 편입의 “장점으로는 재산 가치가 증식되는 것”이라고 대놓고 발언하였다. 윤석열 정부가 유독 땅을 투자(투기?) 대상으로 보아 뉴타운 등을 추진한 이명박 정부의 인사들을 대거 포진시키고 있는 만큼, 서울시 확장 발언을 단지 총선용이라고 치부할 수 없게 되었다.

적지 않은 김포시민들이 서울로 출퇴근을 하느라 갖은 고생을 하고 있기에 그들의 처지도 헤아릴 필요는 있다. 다만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고양과 의정부, 안양, 용인 등이 유사하다. 지척의 구리와 광명, 하남 등도 있으니 이런 도시 모두를 서울로 편입해야 하겠는가? 성숙한 시민이라면 일시적 재산 가치의 증식보다 나라의 미래까지 헤아릴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과거 노무현 정부는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을 핵심 정책과제로 설정하고 이를 과감하게 추진하였었다. 서울공화국의 폐해 불식을 위한 것이었는데, 원론적으로 올바른 방향이었다. 혁신도시 개념으로 수도권에 집중된 공기업 190여 개를 광역자치단체 10곳으로 분산시켰다.

예컨대 최대 공기업 한전은 광주권 나주, 다음의 대한주택공사(LH)는 경남권 진주, 국민연금공단과 한국토지공사는 전북 전주, 한국교육개발원은 충북 진천, 그리고 한국관광공사는 강원도 원주 등으로 보냈다.

해당 지역은 반길 사태이지만, 대략적 평준화의 파장은 미미해서 여전히 지방은 소멸 위기 국면이다. 효과가 미약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땅 보상금을 싸들고 서울로 몰려든 토호세력들이 아파트 사재기를 시작하면서 전국적 부동산 폭등을 초래함으로써 끝내는 폐족으로 내몰리는 비극을 자초하였다.

땅과 관련되는 한, 보수 정치는 나쁜 욕망을 부추기기 일쑤고, 진보 정치는 무능력으로 의도치 않게 사태를 악화시키는 일을 저질러왔다. 국민, 특히 수도권 바깥이나 집 없는 국민은 참담함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다. 희망을 찾을 길은 없는가? 조심스럽게 공화주의에서 길을 찾아보고자 한다.

2. 공화주의의 기본 가치인 자유와 자치

현대사회에서 의미 있는 공화주의는 둘로 분별된다. 하나는 시초의 로마 공화주의로서 그것은 이상적 가치를 놓지 않되 현실에 뿌릴 내릴 수 있는 실용주의에 의거하여 리더십의 군주제와 합리적 식견 지닌 원로원의 귀족제, 그리고 평민의 자유 지켜줄 민주제, 셋을 융합하여 공화정을 출범시켰다. 근대의 마키아벨리가 강조하여 후세에 전한 것처럼 로마 공화주의는 법 이외에 어느 누구의 지배(군림)도 허용하지 않는 비지배적 자유를 최고로 천명한다.

다른 하나는 미국 건국 때 천명된 것으로서 오늘날 마이클 샌델이 주도적으로 발전시키는 공화주의이다. 로마 공화주의가 다분히 귀족적이라면, 미국 건국 공화주의는 민주주의를 동반하기 때문에 시민적이다.

전자는 시민의 덕과 공적 봉사를 어디까지나 자유를 위한 것으로 보아 도구적인 것으로 본다. 반면 후자는 시민이 덕을 갖추고, 타인의 의견도 존중하는 가운데 공적인 정치 활동에 자치적으로 참여하며, 이로써 더불어 좋은 공동선을 추구할 수 있을 때 진정 자유롭다고 판단한다. 시민의 덕과 자(율적 통)치, 공동선이 자유를 받쳐주는 자세와 과정, 목표로서 중시된다.

프랑스의 지성 토크빌은 1831년에 미국을 찾는데, 기초적 지역 공동체인 타운에서 시작하여 카운티, 주, 그리고 연방국가로 구성된 공화정의 미국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그는 후일 출간한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뉴잉글랜드 정치 생활은 타운에 그 기원을 두고” 있고, “타운들은 자기 자신에게만 관련된 모든 일에 있어서는 자주적”이기 때문에, “합중국에 있어서의 자치의 자주성은 바로 주권재민 원칙의 자연스런 결과”라고 언급하였다. 그는 타운의 자치에서 출발하는 공화적 민주주의가 갖는 강점을 프랑스대혁명 이후 여전히 혼란 속에 놓인 조국 프랑스와 대비시킨 것이다.

국민의힘이 김포시의 서울 편입안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5일 오전 경기도 김포시 한 거리에 서울 편입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연합뉴스]

3. 공화주의 따른 한국 행정구역의 개편 기조

오늘날의 한국이 근대 미국과 동일하지는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간이 서로 모여 사는 공동체에서 자신들의 운명을 타자(또는 타국)에게 매이지 아니하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조건과 역량을 갖추는 정도로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자치의 역량 강화는 공화주의와 민주주의를 잇는 핵심 연결고리이다.

그렇다면 생각을 해보자. 각각의 지역이 최고 메가시티인 서울로 편입되면, 얻는 것은 일시적 재산 가치의 상승과 편리함이겠지만, 잃는 것은 획일적 집중화로 인한 자치적 자율성이다. 물질을 얻고 정신적 가치를 잃는다. 역사와 문화가 고유한 수원이나 안동, 전주가 모두 서울공화국으로 편입된다면, 얼마나 큰 비극이겠는가!

결국 돈과 권력의 마법으로 모든 것을 흡인하는 서울의 원심력으로부터 소멸되지 않으려면, 각 지방이 구심력에 해당하는 독자적 역량을 갖추도록 정책을 새로운 시각으로 펼쳐야 한다. 이때 노무현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정책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도 있다. 수도권 밖 지방의 다원적 구심력이 합세하도록 조성할 때 두 힘 사이의 균형을 나름 이루게 할 수 있다. 수도권 바깥 핵심 지역(부산과 광주 등) 몇 곳에 메가시티를 구축하는 것도 한 방도다.

미국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토마스 제퍼슨은 공화주의의 나라에서 모든 시민이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시민의 미덕을 함양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자치적 삶의 농업을 강화해아 한다고 판단하여 대규모 제조업의 육성에는 적극 반대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런 조치는 시대사적 대세를 읽지 못한 단견이었다. 관건은 어떤 조건과 상황이라고 해도 자치 역량을 놓치지 않고 강화하는 데 있다.

로마나 미국의 (다소간의) 실용주의는 공화주의로 하여금 이상을 지향케 하더라도 현실적 토대를 굳건히 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늦었더라도 지역 공동체에서 자치의 기회와 역량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제 정치권은 행정구역을 개편하더라도 김포시 서울 편입 사안과 같이 시민의 욕망을 불건전한 방향으로 이끄는 데 한눈팔지 말고, 오히려 수도권 바깥 지방에도 청년과 인재가 모여 자연 친화적으로 문명적 삶을 누리는 가운데 행복을 더욱 크게 맛볼 수 있도록 하는 정책 추진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한면희

현재 21세기공화주의클럽 상임대표 (성균관대 철학박사)
전 창조한국당 대표(비대위원장), 한국환경철학회 회장
전 녹색대학 대표, (사)환경정의 연구소장,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 위원장
저서로 <환경윤리>, <초록문명론>, <제3정치 콘서트>, <21세기 공화주의>(공저)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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