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 “한동훈, 스스로 물러나야…지도자 될 수 있다는 환상에 젖어있어”

“한동훈, 비대위원장으로서 강성 지지층이 보내는 환호에 도취” “야당과의 성공적 투쟁을 자랑…이것은 심한 착각” “김건희 여사 명품백 사건 내막엔 ‘여성혐오’ 존재해”

2024-01-22     고영미 기자
신평 변호사 [사진=신평 변호사 페이스북]

[폴리뉴스 고영미 기자] 신평 변호사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겨냥해 “스스로 비대위원장직에서 물러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신 변호사는 '윤대통령 멘토'로 알려져 왔지만 윤 대통령에 대한 강한 비판을 쏟아내왔다. 그러나 '윤석열-한동훈 대첩' 사태에서는 한동훈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을 연일 하고 있다.

신 변호사는 22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그는 비대위원장으로서 여권의 강성지지층이 보내는 환호와 열성에 도취했다”며 “급기야 그가 나라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자기 암시를 강하게 걸기 시작했고, 그것이 만든 환상에 완전히 젖어있다”고 주장했다.

신 변호사는 이어 “그러나 그는 지금 단계에서 그렇게 될 만한 마음 그릇을 갖추지 못했다”며 “누구 말대로 그는 발광체가 아니다. 다른 발광체의 지나가는 자리에 앉아 마치 빛을 내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애초에 나는 한 위원장을 옹립하려는 것을 보고 혀를 찼다”며 “여권에 저토록 사람 보는 눈을 갖춘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깊이 낙담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가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을 법무관으로 하겠다는 기자회견을 했을 때, 우연히도 나는 그의 손이 떨리는 걸 본 적 있다”며 “그가 가진 마음의 그릇 크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신 변호사는 “다들 그가 법무 장관직을 성공적으로 잘 수행한 것으로 말들 하지만 나는 일관되게 그렇지 않다고 말해왔다”며 “대야 투쟁의 점에서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하지만 법무 장관이 대야 투쟁하는 자리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검사로서는 대단히 유능한 사람이었고, 법무장관으로 있으며 검찰 조직을 잘 통할했다”며 “그러나 법무장관의 업무는 결코 검사의 직무를 통할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야당과의 성공적 투쟁이 마치 자신의 존재를 빛나게 하는 보검인 양 이를 하늘에 휘두르며 자랑했다. 이것은 심한 착각”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인재영입 환영식에서 고동진 전 삼성전자 사장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건의 여사의 명품백 사건 부주의 했으나 더 비난 할 수 없어 

한편 신 변호사는 20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어둠의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는 글에서 “말을 끄집어내기도 상스러운 ‘줄리설’이 조금 잦아들더니 요즘은 ‘명품백 사건’으로 그에 대한 공격이 다시 극을 달리고 있다”고 했다.

이어 “그 과정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그럴 수 있겠으나 어느 국민의힘 비대위원까지 이 사건을 오해해 그를 프랑스 혁명 당시의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하고 당장 국민 앞에서 석고대죄해야 한다고 다그친다”고 적었다.

신 변호사는 “명품백 사건은 음습한 골방에서 오랜 시간 머리를 맞대고 치밀하게 계획한 일”이라며 “김 여사의 선친을 잘 아는 것으로 설정해 김 여사의 경계심을 해제한 것도 특출한 계략이다. 그렇게 야금야금 접근해 시가 300만원 한다는 파우치 하나를 떨구고 가버렸다”고 했다.

이어 “김 여사는 그 후 남은 물건이 포장지를 직원에게 지시해 뜯어보았으나 이를 사용한 일이 전혀 없고 관련 법 규정에 따라 소관기관에 보관하고 있을 뿐”이라며 “이를 반환하면 될 일이나, 형사적으로 문제가 된 이상 법규상 반환할 수도 없다”고 했다.

신 변호사는 “이것이 ‘명품백 사건’의 전모”라며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줄리사건’에서처럼 일방적으로 피해를 당한 여성을 옹호하기는커녕 비난하기 바쁘다. 일부 언론이 비난 대열에 합류하더니 여당 일부까지 여기에 가담했다”고 했다.

그는 “이해하기 힘든 이 현상의 근저에는 ‘여성혐오’와 ‘남근숭배’의 어두운 모습이 자리잡고 있다”며 “그렇게 설명하지 않으면 이성과 상식 혹은 공정의 관념에서 도저히 김 여사의 비난으로 편향적으로 향하는 ‘이상한 열기’를 감당할 길이 없다”고 밝혔다.

신 변호사는 “명품백 사건에서 김 여사의 부주의를 나무랄 수는 있지만 여기에서 나아가서 더 무엇을 비난할 수 있을 것인가”라며 “그에 반해 야비한 음모의 실행은 문명사회 범주를 훨씬 넘는 고약하고 더러운 소행 아닌가. 이를 방치한다면 그들 세력이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어둠의 포로가 된다”고 했다.

[다음은 신평 변호사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거취에 관하여, ‘어둠의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서 전문]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거취에 관하여’ 

시골에 사는 무명의 한사(寒士)이나 여권의 핵심에서 일어난 일로 걱정이 되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작게는 내가 가진 벽돌 하나를 이 정부라는 집을 짓는데 바친 사람으로서 아쉬운 마음이 강했고, 크게는 이제 겨우 바로 잡히기 시작한 나라의 진로가 다시 휘청거리라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애초에 나는 한동훈 법무장관을 비대위원장으로 옹립하는 것을 보고 혀를 끌끌 찼다. 여권에 저토록 사람 보는 눈이 없다는 사실에 깊이 낙담했다. 일찍이 그가 윤석열 당선인이 자신을 법무장관으로 하겠다는 기자회견에 배석했을 때, 우연히도 나는 그의 손이 떨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가 가진 마음의 그릇 크기를 대번 짐작할 수 있었다.

다들 그가 법무장관직을 성공적으로 잘 수행한 것으로 말들을 하는데 나는 일관하여 그렇지 않다고 말해왔다. 그렇다고 하여 내가 그에게 무슨 개인적인 나쁜 감정이 있을 턱이 없다. 그가 대야투쟁의 점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었다고 한다. 하지만 법무장관이 대야투쟁하는 자리는 아니다. 법무장관은 비유컨대, 좋은 나라를 만드는 기본뼈대를 짜는 자리이다.

그의 법무장관직 수행이 불충분했다는 면에 관해 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자. 우리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민법과 형법은 아득히 먼 1960년대 초반에 마련한 법률들이다. 그 사이 시대는 엄청나게 변하였다. 이런 변화를 따라가느라고 그때그때 급히, 꼭 필요한 내용들을 끼워 넣으려고 하다 보니 두 법률은 누더기로 돼버렸다. 우리와 법체제를 같이 하는 독일과 일본은 물론, 벌써 깔끔한 새 법률들을 갖추었다. 그는 이에 관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가 법무장관으로서 어느 정도 소양을 갖춘 사람이라면, 적어도 개정작업을 주도할 위원회라도 발족시키는 작업을 해야 했다. 그는 검사로서는 대단히 유능한 사람이었고 또 법무장관으로 있으며 검찰조직을 잘 통할하였다. 그러나 법무장관의 업무는 결코 검사의 직무를 통할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야당과의 성공적인 투쟁이 마치 자신의 존재를 빛나게 하는 보검인양 이를 하늘에 휘두르며 자랑했다. 이것은 심한 착각이다.

나는 딱 열흘 전인 1월 13일 ‘한동훈 비대위는 도돌이표’라는 이름으로 페이스북에 한동훈 비대위가 강성지지층 규합으로 일관하여 총선참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마침 발표된 갤럽 여론조사를 인용하였다. 그러나 그 글에서는 차마 쓰지 못한, 그가 여권 내부에서 일으키는 불화와 냉담을 전해 들으며 큰일이라는 생각에 그 글을 썼다. 그는 모든 공을 자신이 차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유치한 사고방식의 틀에서도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 체제가 그대로 가서는 안 된다는 전제하에 나는 다음과 같은 대책을 제시하였다. 첫째 한동훈 비대위원장을 교체하는 것, 그러나 이는 여권이 감당하지 못할 부담을 초래하리라고 보았다. 둘째는 안목을 갖춘 다른 사람을 그와 함께 공동비대위원장으로 임명하는 것이고, 셋째는 선거대책위원회를 빨리 발족시켜 그가 갖는 역량부족과 인간적 결함이 묻히도록 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이미 그의 교체시도가 나온 이상 교체를 하는 쪽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는 비대위원장으로서 여권의 강성지지층이 보내는 환호와 열성에 도취하였다. 급기야는 자신이 나라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자기암시를 강하게 걸기 시작했고 그것이 만든 환상에 완전히 젖었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나, 지금의 단계에서 그렇게 될만한 마음그릇을 갖추지 못했다. 누구의 말대로 그는 ‘발광체’가 아니다. 다른 발광체의 빛이 지나가는 자리에 앉아 마치 빛을 내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가혹하게 들리겠지만 그는 스스로 비대위원장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나마 여권에 초래될 상처의 크기를 작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리고 그가 그런 희생의 자세를 보일 때 비로소 자신의 정치적 장래가 어느 정도 보장될 것이다.

‘어둠의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서

몇 해 전 일본의 쯔꾸바 대학에서 강연을 마친 다음 한국을 선진국이라고 보는 사람은 손을 들어달라고 요청하였다. 놀랍게도 대다수의 학생이 손을 들었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선진국이 된 것은 맞다. 이는 세계사적 관점에서 봉건주의를 경험하지 않은 나라로서 선진국이 된 최초의 예이다. 그만큼 인류의 역사에서 지대한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일반의 선진국에서 살며 느끼는 원칙이나 상식 혹은 공정의 의식이 우리 사회에서도 무르익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인가? 아마 대부분의 한국인은 그렇지 않다는 데 동의하리라. 이는 여성에 대한 편견이 아직 뿌리 깊게 내린 현실에서도 잘 엿볼 수 있다. 가장 단적인 예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무자비한 폭행이나 중범죄가 ‘묻지마’ 형태로 자주 일어나는 것이다. 적어도 다른 선진국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현상이다.

여성혐오의 연원은, 아마 문명화되지 못한 의식을 가진 정신적 미성숙의 남성이 여성을 ‘엄마’ 혹은 ‘창녀’ 이외의 존재로 보지 못하는 성녀-창녀 컴플렉스 (Madonna–whore complex)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의식의 반면은 과도한 ‘남근숭배’일 것이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설명에 따라 우리가 ‘김건희 여사’에 대한 집요하고 비열하고 무자비한 공격을 바라보면 그 공격의 성격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 말을 끄집어내기도 상스러운 ‘줄리설’이 조금 잦아들더니 요즘은 ‘명품백 사건’으로 그에 대한 공격이 다시 극을 달리고 있다. 그 과정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그럴 수 있겠으나, 어느 국민의힘 비대위원까지 이 사건을 오해하여 그를 프랑스 혁명 당시의 ‘마리 앙뚜와네트’에 비유하고 당장 국민 앞에서 석고대죄하여야 한다고 다그친다.

‘명품백 사건’은 재미교포인 최 목사와 ‘서울의 소리’ 이명수 기자가 음습한 골방에서 오랜 시간 머리를 맞대고 치밀하게 계획한 일이다. 시나리오도 섬세하게 잘 짰다. 최 목사가 김 여사의 선친을 잘 아는 것으로 설정하여, 김 여사의 경계심을 우선 해제한 것도 특출한 계략이다. 그렇게 야금야금 접근하여 시가 300만원 한다는 파우치 하나를 떨구고 가버렸다. 김 여사는 그 후 남아있는 물건의 포장지를 직원에게 지시하여 뜯어보았으나 이를 사용한 일이 전혀 없고, 관련 법규정에 따라 소관기관에서 보관하고 있을 뿐이다. 이를 반환하면 될 일이나, 지금 형사적으로 문제된 이상 법규상 반환할 수도 없다.

이것이 지금 세상을 뒤흔드는 ‘명품백 사건’의 전모이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줄리사건’에서처럼, 일방적으로 피해를 당한 여성을 옹호하기는커녕 비난하기에 바쁘다. 일부 언론이 비난의 대열에 합류하더니 어느덧 여당의 일부까지 여기에 가담하였다. 

이해하기 힘든 이 현상의 근저에는 ‘여성혐오’와 ‘남근숭배’의 어두운 모습이 자리잡고 있다. 그렇게 설명하지 않으면, 이성과 상식 혹은 공정의 관념에서 도저히 김 여사의 비난으로 편향적으로 향하는 ‘이상한 열기’를 감당할 길이 없다.

‘명품백 사건’에서 우리는 김 여사의 부주의를 나무랄 수는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나아가서 더 무엇을 비난할 수 있을 것인가? 그에 반해 최 목사나 이명수의 흉측하고 야비한 음모의 실행은 문명사회의 범주를 훨씬 넘은 고약하고 더러운 소행이 아닌가? 우리가 이를 방치한다면 우리는 그들 세력이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어둠의 포로’가 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그들을 결코 용서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