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대령-김계환 사령관, '항명죄' 법정서 맞대면.. '이첩보류 지시' 공방

박정훈 대령 "해병대 사령관으로 명예로운 선택 하시길" 김계환 사령관 "명확한 이첩 보류 지시 어겨" "장관 지시 없었다면 이첩했을 것" 김 사령관-국방부 군사보과관 메시지.. "지휘 책임 관련 인원은 징계로 검토" 외압 정황 경찰 간부 "대통령실서 전화 받았다" 진술 파문.. 공수처, 군 수사기관 압수수색

2024-02-01     김승훈 기자
법정 향하는 박정훈 대령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해병대 채모 상병 사망 사건을 수사하다 항명죄 등으로 기소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의 재판에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이 출석했다. 이날 김 사령관은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이첩 보류 지시를 박 대령이 어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박정훈 대령이 채상병 순직사건 결과를 경북경찰청에 이첩한 뒤 국방부 검찰단이 이를 회수한 과정이 적법했는지를 수사 중인 공수처는 국방부 검찰단과 조사본부를 대상으로 강제수사에 나섰다. 앞서 경북경찰청을 대상으로 진행한 수사에서 대통령실 행정관이 경찰과 국방부 사이를 연결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만큼 대통령실의 개입이 있었는지 여부가 드러날지 관심이 모아진다.

박정훈 대령 "해병대 사령관으로 명예로운 선택 하시길"

중앙지역군사법원은 이날 오전 10시 박 대령의 두 번째 공판을 열었다.

국방부검찰단은 지난해 10월 '기록 이첩 보류 중단 명령에 대한 항명'과 '상관 명예훼손' 등 혐의로 박 대령을 불구속 기소한 바 있다.

이날 재판에서는 김계환 사령관(중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두 사람의 대면은 지난해 8월 초 항명 사건이 불거진 이후 처음이다.

박정훈 대령은 이날 출석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그간의 소감을 전했다.

박 대령은 "돌이켜보면 저를 둘러싼 이 모든 일들이 고 채 상병의 시신 앞에서 너의 죽음에 억울함이 남지 않도록 하겠다는 저의 다짐으로부터 모든 것이 비롯됐다"고 말했다.

이어 "채상병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이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과연 떳떳하고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지 물어야 한다"며 "한 병사의 죽음을 엄중하게 처리해야 되는 이유는 그것이 옳은 일이고 정의고 또한 제2의 채상병 같은 억울한 죽음을 예방하는 길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령은 "오늘 해병대 사령관께서 증인으로 출석 예정이신데 그동안 어떤 어려움이나 힘듦이 있었는지 제가 알 수 없다"면서도 "지금이라도 해병대 사령관으로서 명예로운 선택을 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박 대령은 지난해 7월 폭우 실종자를 수색작업을 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사망한 채 상병 사건을 조사했다. 조사결과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에게 결재 받은 후 경북경찰청으로 이첩하는 과정에서 항명 혐의로 보직해임됐다. 이후 박 대령에게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했던 발언 중 일부가 이종섭 전 장관에 대한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며 '상관명예훼손 혐의'까지 더해졌다.

박 대령은 김계환 사령관으로부터 이첩 보류 지시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12월7일 첫 재판에서도 박 대령은 항명 및 상관 명예훼손 혐의 등을 전면 부인했다. 또한 조사결과 작성 과정에서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으로부터 '죄명을 빼라. 혐의자를 빼라' 등 부당한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 사령관은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계환 사령관 [사진=연합뉴스]

김계환 사령관 "명확한 이첩 보류 지시 어겨" "장관 지시 없었다면 이첩했을 것"

이날 재판에서도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은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지시가 없었다면 해당 사건을 경찰에 이첩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종섭 전 장관은 지난해 7월 30일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포함한 8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명시해 경찰에 이첩하겠다는 해병대 수사단 보고를 받고 서명했지만, 이튿날 출국을 앞두고 갑자기 보류를 지시했다.

김 사령관은 "(박 대령은 나의) 명확한 (이첩 보류) 지시를 어겼다. 이 부분은 재판부에서 판단해주실 것"이라고 맞섰다. 그는 모두 3차례에 걸쳐 이첩 보류를 명시적으로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수사 책임은 경찰에 있다는 조언을 받아서, 여러 이견이 있지만 (유재은) 법무관리관이 혐의자를 단정지을 필요가 없다고 한 것을 존중했고, 저도 결심해서 이첩 보류를 지시한 것"이라고 전했다.

김 사령관은 "박 대령을 포함해 수사단 전체 인원이 잠 안 자고 열심히 노력한 것을 충분히 인정한다. (조사)한 것에 대해 (내가) 신뢰한 건 인정한다"며 "이첩 전까지 수사단에 수사를 위한 모든 권한과 여건을 보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수사 내용은) 이첩보류 지시와는 엄격히 구분돼야 한다"며 박 전 단장이 자신의 지시를 어기고 사건을 이첩했다는 기존 입장을 견지했다.

다만 '피고인이 이첩보류 지시를 못 따르겠다고 노골적으로 반항한 사실이 있느냐'는 변호인 질문에는 "그런 사실이 없다. (못 따르겠다고) 명시적으로 발언한 바 없다"고 했다.

재판부가 '항명과 관련해 피고인에 대해 처벌 의사가 있느냐'고 묻자 "지금도 제 부하다. 법원에서 공정히 판결해달라"면서도 "이첩 보류와 관련한 지시를 어긴 건 명확하다. 군인이 지시를 어긴 것은 어찌 됐든 처벌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김 사령관-국방부 군사보과관 메시지.. "지휘 책임 관련 인원은 징계로 검토" 외압 정황

이날 재판에서는 김 사령관이 당시 이 전 장관의 군사보좌관이던 박진희 육군 준장(현 소장)과 보고서 이첩 보류에 대해 나눈 텔레그램 메시지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해당 메시지에는 박 보좌관이 김 사령관에게 "확실한 혐의자는 수사 의뢰, 지휘 책임 관련 인원은 징계로 하는 것도 검토해 달라"고 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미 이종섭 전 장관이 결재를 마친 조사결과 보고서의 내용을 바꾸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 김 사령관은 박 전 보좌관에게 유족 여론 악화 가능성과 야당의 쟁점화 등을 이유로 수사결과의 경찰 이첩을 늦추기가 어렵다는 취지로 말했는데, '이 메시지가 결국 사령관 생각 아니었느냐'는 변호인 질문에 "박 전 단장 판단을 글자 하나도 안 바꾸고 그대로 전달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한테 자꾸 (저렇게 생각했냐고)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에 대해선 답변 안 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8월 2일 박 전 단장의 부하와 통화하면서 "우리는 진실되게 했기 때문에 잘못된 건 없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도 "수사단원들의 동요를 방지하기 위한 차원이었다"고 설명했다.

김 사령관은 당초 임성근 1사단장이 사의 표명을 한 만큼 인사 조치를 추진했지만, 이 전 장관이 '그대로 정상 출근시키라고 지시했다는 증언도 했다.

김 사령관은 장관 지시사항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혐의자를 특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 수사권 없는 군에서 언론 발표를 할 경우 향후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 유가족과 경찰이 오해하지 않게 잘 설명하라는 것, (박정훈) 수사단장과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이견을) 정리하도록 해주라는 것, 1사단장을 업무 복귀시키라는 것이었다"고 답했다.

이날 재판부로부터 마지막 발언 기회를 얻은 김 사령관은 "(지난해) 8월2일 박 대령이 (이첩을) 강행한 과정에서 '제가 사령관님 지시 어긴겁니다'라고 말하며 고개를 숙인 것 분명히 기억한다"라며 "자의적인 법 해석과 본인이 옳다고 믿는 편향적인 가치를 내세워 해병대를 살리고 지키고, 본인이 책임지겠다고 한 모습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기 바란다"라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이어 "선배들의 피와 땀으로 이뤄진 해병대의 역사와 전통을 사령관인 나를 포함해서 현역, 예비역, 누구 할 것 없이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착각과 영웅심리에 해병대를 결코 흔들어선 안 될 것"이라며 "항명 사건이 없었다면 채 상병의 부모님 말씀처럼 이미 진상이 밝혀졌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박 대령 또한 발언 기회를 얻어 "(김 사령관과) 같이 근무하면서 정말 부하를 위하고 해병대를 사랑하는 마음에 가슴 깊이 존경해왔고, 그리고 항상 충성으로 보답을 했었다"라면서 "(그런데 오늘) 얼마나 고충이 심하실까 가슴이 너무 아프다. 사령관님에게 진심으로 수고하셨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라고 언급했다.

경찰 간부 "대통령실서 전화 받았다" 진술 파문.. 공수처, 군 수사기관 압수수색

한편, 수사외압 의혹을 수사 중인 공수처는 지난달 30일 국방부 검찰단과 조사본부에서 관련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공수처는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채상병 순직사건 결과를 경북경찰청에 이첩한 뒤 국방부 검찰단이 이를 회수한 과정이 적법했는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사건을 이첩 받은 경찰을 대상으로 수사를 진행하던 중 국방부가 경찰에 넘어간 사건을 회수하면서 대통령실 행정관이 경찰과 국방부 사이를 연결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달 31일 MBC 보도에 따르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이 모 과장은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 소속 박 모 경정이 전화해, 국방부와 해병대 수사단 사이 갈등을 설명했다"고 진술했다.

이어 "'국방부 유재은 법무관리관이 채 상병 사건 기록 회수에 대해 관할 경북경찰청에 전화할 것'이라고 알려줘 자신이 이 내용을 경북청 노 모 수사부장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즉, 대통령실에 행정관으로 파견된 경찰관이 사건 회수 과정에서 경찰과 국방부를 연결한 사실이 진술로서 처음 확인된 것이다.

수사 외압의 핵심으로 지목돼 온 유재은 법무관리관은 경북경찰청에 전화를 걸어 사건 회수를 협의한 사실도 확인됐다.

이에 공수처는 국방부 수사기관 압수수색에 나섰다. 지난 16~17일에는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 사무실과 자택, 박진희 전 국방장관 군사보좌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으며 17일에는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및 부사령관 집무실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