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 칼럼] 민주당의 ‘비명횡사’ 공천, 오만의 정치가 낳은 오판
'윤석열 심판'을 '이재명 심판'으로 바꿔놓는 패착
더불어민주당에서 ‘비명횡사’ 공천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로부터 사실상 '컷오프'(공천배제)에 해당하는 현역 의원 하위 평가 결과를 통보받은 비명계 의원들의 반발은 어제도 이어졌다. 21일에는 송갑석(재선·광주 서갑), 박영순(초선·대전 대덕), 김한정(재선·경기 남양주을) 의원 등 3명이 자신의 평가 결과를 공개하면서 날선 항의와 비판을 쏟아냈다. 지난 19일 김영주(4선·서울 영등포갑) 국회부의장, 전날 박용진(재선·서울 강북갑), 윤영찬(초선·경기 성남중원) 의원까지 포함하면 하위 평가 결과를 스스로 공개하며 반발한 의원은 모두 6명으로 늘었다.
민주당은 이번 총선 공천에서 '하위 10%'는 경선 득표의 30%를, '하위 10∼20%'는 20%를 각각 감산하는 '현역 페널티' 규정을 적용한다. 그러니 사실상 컷 오프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결정이다. 문제는 판정 결과가 불공정하게 비쳐진다는 점이다. 친명은 우대, 비명은 차별받는 공천으로 해석되고 있다. 당사자들은 "당권을 쥔 당 대표와 측근들은 밀실에서 공천학살과 자객공천을 모의하고 있다"며 "최근 공천 파동의 모습은 '친명횡재, 비명횡사'라는 말을 부인하기 어렵게 한다"(박영순 의원)고 비난한다.
당 지도부와 공관위는 공천 심사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임혁백 공천관리위원장은 이날 "우리 당 공관위는 원칙에 따라 공천을 하고 있다"며 "당이 정해놓은 원칙과 절차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켜보는 사람들의 피부에 와닿는 말은 '친명횡재, 비명횡사'임이 사실이다. 실제로 하위 10%, 20% 판정을 받은 의원들 명단을 보면 좀처럼 납득되지 않는 경우가 여럿이다.
급기야 당의 원로인 정세균·김부겸 전 국무총리도 우려를 표하며 공정한 공천을 주문하고 나섰다. 민주당의 두 전직 총리는 대해 “이재명 대표가 지금의 상황을 바로잡아야 한다”며 “당원과 지지자, 국민이 하나 될 수 있는 공정한 공천 관리를 간곡히 부탁한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인사들도 ‘비명횡사’ 공천 논란에 우려를 표한 것이다. “국민의 마음을 잃으면 입법부까지 윤석열 정부에 넘겨주게 된다”는 것이 이들의 우려였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는 지금과 같은 공천에서 물러설 기미가 없다. 이 대표는 비명계에서 분출되는 지도부 책임론에 침묵하고 있다. 단지 페이스북에 "앞으로 더 많은 원망이 나올 것도 잘 알고 있다. 모든 원망은 대표인 제게 돌리라"며 "온전히 책임지고 감내하겠다. 그리고 반드시 총선에서 승리하겠다"고 원론적인 말만 할 뿐이다. 사실상 물러날 뜻이 없다는 모습이다. 이 대표는 민주당을 일사불란한 ‘이재명당’으로 만들기로 작심한 듯하다. 그래야 다음 대선 재도전에 한치의 차질도 없을 것으로 믿는 모양이다.
하지만 비명계의 반발은 간단치 않아 보인다. 연쇄 항의와 탈당, 그리고 이재명 대표 퇴진 요구가 격화될 것 같다. 공천 파동에 버금가는 분위기이다. 민주당이 이런 상태에서 힘을 모아 총선을 치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는 이렇게 공천을 하고서도 총선 승리가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것일 까. 지난해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의 압승이 결국 오만을 낳은 독이 된 셈이다. 민주당을 ‘이재명당’으로 만들려는 모습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나타나면 민심은 ‘윤석열 심판’ 이전에 ‘이재명 심판’으로 선회할 가능성도 크다. 이러다가 만약 민주당이 총선에서 패배한다면 철저한 자업자득의 결과이다. ‘비명횡사’ 공천의 오만의 정치가 낳은 패착이고, 이는 민주당이 총선을 치르는데 대단히 어려운 환경을 만들게 될 것이 분명하다.
유창선
연세대학교 사회학 박사
(정치사회학 전공)
한림대, 경희 사이버대 외래 교수 역임
SBS, EBS, BBS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진행자 역임
현재 여러 언론에 칼럼 연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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