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의료대란' 나흘째, 보건의료 위기경보 사상 첫 '심각' 상향.. 정부 "협상없다", 의협 3일 총궐기 대회

전공의 70% 이상 사직서 제출.. 정부, 비대면진료 전면 허용.. "집단행동 구속수사" 대전협 "요구안 수용시 병원 복귀" 서울대의대 교수협 "주말 협상 못하면 파국" 한덕수 "의료계와 협상할 내용 아니다" "2000명 교육 여건 충분" 의협 "의사 부족은 자의적 해석".. 내달 3일 전국서 궐기대회

2024-02-23     김승훈 기자
전공의들이 병원을 이탈한지 나흘째인 23일 정부는 보건의료 위기경보를 사상 처음으로 심각 단계까지 상향했다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전공의들이 병원을 이탈한지 나흘째인 23일 정부는 보건의료 위기경보를 사상 처음으로 심각 단계까지 상향했다. 이에 따라 의료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23일부터 한시적으로 비대면진료가 전면 허용된다.

일부 의사단체는 정부와 협상을 진행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으나 정부는 추가 협상은 없다며 강경 일변도를 달리고 있다. 또, 업무 미복귀 전공의에 대해서는 고발 접수 즉시 출석을 요구하고, 이에 불응할 경우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할 계획이다.

전공의 70% 이상 사직서 제출.. 정부, 비대면진료 전면 허용.. "집단행동 구속수사"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이 병원을 이탈한지 나흘째인 23일 상급병원을 중심으로 의료대란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의사 집단행동 대응을 위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22일 오후 10시 기준 주요 100개 수련병원 전공의 74.4%인 9275명이 사직서를 제출했고 64.4%인 8024명이 근무지를 이탈했다. 보건복지부는 근무지 이탈이 확인된 전공의 6038명에 대해 업무 개시 명령을 내렸다.

보건복지부는 업무개시명령에도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들에 '의사면허 정지'를, 법무부는 집단행동 주동자에 대한 '구속수사' 원칙을 내세우며 압박에 나섰지만, 환자 곁을 떠난 전공의 수는 계속 늘고 있다.

전공의 집단행동에 따른 의료공백이 커지고,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의사단체가 다음달 3일 전국의사총궐기대회를 예고하는 등 국민 건강과 생명에 대한 피해가 커짐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이날 오전 8시를 기해 위기경보 '심각' 단계를 발령했다.

이번 결정은 '보건의료 재난 위기관리 표준매뉴얼'에 따른 것이다.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이 아니라 보건의료 위기 때문에 재난경보가 '심각'으로 올라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으로 인한 의료계 혼란을 막기 위해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를 전면 확대하기로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23일 중대본 회의 모두발언에서 "오늘부터 비대면 진료를 전면 확대해 국민께서 일반진료를 더 편하게 받으실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비대면 진료가 전면 확대되면서 의료취약지가 아닌 곳이나, 초진이라도 평일에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동안은 의료취약지인 경우, 혹은 주말이나 공휴일에만 초진 환자의 비대면 진료가 가능했다.

병원급 이상의 비대면 진료도 대폭 확대된다. 이전에는 병원급 이상에서는 재진 환자 중 병원급 진료가 불가피한 희귀질환자(1년 이내), 수술·치료 후 지속적인 관리(30일 이내)가 필요한 환자만 비대면 진료가 허용될 정도로 엄격히 제한됐다.

하지만, 현재 진료 차질이 빚어지는 곳은 중증·응급환자를 중점 진료하는 상급종합병원을 비롯한 수련병원인데 정부의 비대면 진료 전면 확대는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날 중대본에서는 의사 집단행동에 대한 부처별 대응계획도 논의됐다.

법무부는 "불법 집단행동 주동자는 물론 배후에서 조종하고 부추기는 사람들까지 철저하게 수사해 원칙적으로 구속수사하고, 업무개시명령을 불이행한 전공의는 의료법위반죄로 구공판하는 등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청은 "수술·진료 지연으로 사망 등 위해 발생시 시·도경찰청 형사기동대에서 직접 수사하고, 불법행위자는 구속수사 원칙으로 엄단한다"고 했다. 위해 발생을 방임하는 의료기관 책임자와 진료기록·전자의무기록 훼손 행위까지 철저히 수사하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업무개시명령에 불응하는 전공의에 대해서는 "고발 즉시 출석요구하고, 불응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하는 등 신속하게 수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넷 상으로 복귀 거부나 진료기록 훼손을 선동하는 경우 등 '악의적 가짜뉴스'에도 엄정 대응한다.

한 총리는 이날 회의에서 공공의료기관 가동수준을 올리고 병원에서 임시 의료인력을 추가 채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집단행동에 나선 의료진에 대해선 "불법 집단행동은 존경받는 의사가 되겠다는 젊은 의사들의 꿈을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한 방법"이라며 경고했다.

의사단체들은 정부가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들어준다면 언제든 복귀한다는 입장이다 [사진=연합뉴스]

대전협 "요구안 수용시 병원 복귀" 서울대의대 교수협 "주말 협상 못하면 파국"

의사단체들은 정부가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들어준다면 언제든 복귀한다는 입장이다. 또, 의대 증원 확대를 놓고 협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전공의들의 단체행동을 이끌고 있는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이 "우리 요구안을 어느 정도 정부가 수용한다면 (전공의들은) 언제든 병원에 돌아갈 의향이 있다"면서 "빨리 결정을 내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은 22일 오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요구안을) 사실 어느 정도 정부가 수용한다면 언제든지 병원에 돌아갈 의향들이 다 있다"면서 "그래서 정부가 오히려 빨리 결정을 내려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협은 20일 긴급 총회 뒤 성명서를 통해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2000명 증원 전면 백지화 △의사 수급 추계 기구 설치와 증·감원 논의 △수련병원 전문의 인력 채용 확대 △불가항력 의료사고 법적 부담 완화 대책 △주 80시간에 달하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요구했다.

또 최근 전공의들의 사직서 제출에 대한 정부 방침과 관련해 △전공의를 겁박하는 부당한 명령들 전면 철회와 전공의들에게 정식 사과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는 의료법 제59조 업무개시명령 전면 폐지, 대한민국 헌법과 국제노동기구(ILO) 강제 노동 금지 조항 준수를 촉구했다.

박 위원장은 "2000명 의대증원만 놓고 보면 일단 숫자에 대한 근거가 납득이 안 된다"면서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그 교육 여건이 마련돼있는가. 전공의들도 오래 일을 시킬 수 있는 사람을 늘려 병원을 더 싸게 운영하려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가 우선 있다"고 지적했다.

복지부와의 의료현안협의체에도 참여했지만 '2000명 증원'은 논의한 적 없으며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가 구체성이 떨어진다면서 "'무조건 너네는 그냥 따라와야 된다'는 스탠스에 아무리 목소리를 내도 정부가 듣고 있지 않다고 판단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인한 환자들의 불편에 대해 그는 "저희도 충분히 알고 마음 아파하고 있다"면서 "의료정책을 너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고, 요구안에 어느 정도 정부가 수용한다면 언제든 병원에 돌아갈 의향들이 (전공의들에게) 다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대의대 교수들도 정부를 향해 "이번 주말을 넘기기 전에 대화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정진행 서울대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분당서울대병원 병리과 교수)은 입장문을 통해 "전공의, 의대생 등 젊은 의사들을 투쟁 최전선에 세우는 현 상황이 맞나. 의대 교수들과 합의점을 도출하는 게 적절해 보인다"라며 "정부가 교수들과 대화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를 전국 단위로 확대해 연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정부 관계자는 서울대 비대위는 협상 상대가 아니다라며 채널을 닫아버렸다"며 "이런 식이라면 제한적이나마 돌아가고 있던 병원 진료가 열흘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전공의들에 대한 설득작업을 계속하고 있지만 정부가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그들과 함께 행동할 수 밖에 없다고 판단했다"며 "주말 동안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면 그 이후에는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파국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덕수 "의료계와 협상할 내용 아니다" "2000명 교육 여건 충분"

하지만, 정부는 의대 증원 확대는 의료계와 협상할 내용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2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서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의 관련 질의에 이와 같은 입장을 밝혔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요구로 국민적 관심을 끈 후 누군가 타협을 이끌어 내기 위한 정치쇼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는데 동의하느냐"라고 묻자 한 총리는 "의대 정원이라는 것은 협상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어 한 총리는 "만약 그것이 협상에 의해 이뤄져왔다면 그건 잘못된 것"이라면서 "국가의 현재와 미래를 보며 우리 국민들의 건강과 안전을 어떻게 보장해 줄 것인가 하는 것을 과학과 진실에 기초해서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대 정원 (확대) 규모를 정부가 단독으로 결정했느냐"는 윤 의원의 질문에 한 총리는 "그동안 의료계에서 말했던 것에 대해 여러가지 협의를 했다"며 "(대한의사협회와 지난해 1월 이후) 28회 정도 논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한 총리는 의대 정원을 2000명 확대할 경우 충분한 교육이 이뤄질 수 없다는 의료계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면서 "의대가 40개인데 2000명이면 한 대학에 50명 정도 더 늘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의과대학들이) 2000명, 2151명인가를 (증원) 요청을 했을 때 전문가들은 (의대) 정원, 수요에 비춰봤을 때도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검토를 했다"면서 "2000명은 우리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고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답변했다.

정부는 의대 증원 확대는 의료계와 협상할 내용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의협 "의사 부족은 자의적 해석".. 내달 3일 전국서 궐기대회

대한의사협회는 연일 현재 의사수가 부족하지 않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의사수 부족으로 인해 의대 정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은 자의적 해석이라고 주장했다.

주수호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 위원장은 22일 오후 2시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을 통해 "정부가 해당 연구들이 2000명 증원의 근거라고 밝히는 이유는 해당 연구에서 나오는 일부 내용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면, 지금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의 근거로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이 연구들 이외에는 의대 정원 증원의 논리를 뒷받침할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라고 했다.

또, 고령화 사회와 맞물린 의사 고령화 가속화로 의대 증원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주장에 대해서는 "의사는 일반 근로자 은퇴 연령과 달리 훨씬 고연령까지 일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의사는 일반 근로자와 다르게 은퇴 연령이 정해져 있지 않기에 사실상 일상생활이 가능한 연령까지는 지속해서 현업에 종사하고 있다"며 "대한민국은 1980~1990년대에 의대를 많이 신설했고, 이로 인해 현재 활동 의사 중 30~50대 젊은 연령 비율이 외국과 비교가 안 되는 수준으로 높다. 의대 정원이 3000명대 수준에서 증원되지 않았음에도 활동의사 수 증가율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평균을 훨씬 상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철회를 촉구하는 의사단체의 시위도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의사회는 22일 오후 7시께부터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의대정원 필수의료패키지 저지를 위한 제2차 궐기대회'를 열었다.

단상에 오른 의사들은 정부를 맹성토하며 의대 증원 정책 철회를 요구했다.

마이크를 잡은 김성근 대한의사협회(의협) 비대위 조직위부위원장 겸 서울시의사회 부회장은 전공의 집단 사직을 거론하며 "나는 전공의들이 환자 곁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그들과 함께 수술하며 좋은 의사로 길러내고 싶다"고 했다.

그는 "하지만 그들을 환자 곁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는 건 이제 정부와 대통령"이라며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철회하고 전공의들이 환자 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좌훈정 서울시의사회 정책이사는 "정부는 의사들더러 환자를 볼모로 삼지 말라고 하는데, 의사들이 무슨 힘이 있다고 국민들을 볼모로 삼냐"며 "의사들이 병원을 떠나 거리로 나올 걸 알면서도 환자가 죽든 말든 정책을 밀어붙이는 정부야말로 국민을 볼모로 삼은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국민들이 원하니까 의대 증원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만약 내일 국민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해 대통령이 하야하란 답변이 50% 이상으로 나온다면 할 거냐"고 따져 물었다.

이들은 결의문을 통해 "의대 증원과 의료 정책 패키지는 의료계와 함의 없는 일방적이고 무계획적인 정책이다. 무너지고 있는 대한민국 의료의 붕괴를 가속할 것"이라며 ▲의대 증원 및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 정책 철회 ▲의료계와의 재논의 ▲정책 책임자 문책 등을 요구했다.

의협 비상대책위원회(의협 비대위)는 대정부 투쟁 수위를 높일 방침이다. 이들은 내달 3일 전국 집회를 개최하고 조만간 전체 회원을 대상으로 집단행동 시점과 종료 등을 묻는 투표도 진행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