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정부 '의대 증원 1년 유예' 오락가락 "내부 검토 하겠다" → "검토한 바 없고 계획도 없다"

尹-전공의 대표 만남 이후 의협, 의대 증원 1년 유예 제안 대통령실 "의대 증원 1년 유예 검토할 계획 없다" 의정갈등, 총선 전 해결 난망.. 2000명 힘겨루기 지속 오늘부터 의대 35% 수업재개.. 유급에 국시까지 '벼랑 끝'

2024-04-08     김승훈 기자
정부가 8일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1년 유예하자는 의료계의 제안에 대해 오락가락한 대응을 보였다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정부가 8일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1년 유예하자는 의료계의 제안에 대해 오락가락한 대응을 보였다. 오전에는 "내부 검토를 하겠다"는 입장이었으나 오후에는 "검토한 바 없고 계획도 없다"고 선을 그은 것.

대통령실도 의대 정원 증원을 1년 유예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검토한 바 없고 앞으로 검토할 계획도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尹-전공의 대표 만남 이후 의협, 의대 증원 1년 유예 제안

대통령실 "의대 증원 1년 유예 검토할 계획 없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이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 후 브리핑에서 의대 정원 증원 1년 유예 제안에 대해 "내부 검토는 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의 대화가 성사된 이후 의협 내에서 '의대 정원 증원 1년 유예' 아이디어가 나온 것에 대한 대응이다.

김성근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5일 KBS라디오 '전격시사'에 출연해 "과학적 근거가 없어 반발이 큰 의대 2000명 증원을 꼭 2025년에 해야 하느냐"면서 "급격한 의대 증원으로 교육할 수 없다는 각 의과대학의 목소리도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년을 미루고 (의대 증원 규모 등을) 정확히 검토할 수 있는 위원회를 구성하면 충분히 서로 존중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이날 박 차관은 브리핑에서 "1년 유예안이 일단 과학적 근거나 이런 걸 제시한 건 아니고 잠시 중단하고 추가적 논의를 하자는 취지로 이해하는데 내부 검토는 하겠다"며 "현재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결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간 정부는 "국민의 불편이 예상돼 유예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일단 한 발 물러선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즉각 1년 유예 가능성은 없다는 입장을 냈다.

8일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2000명이라는 증원 규모에 대해서는 1년 이상의 어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의료계와 수차례 협의해 결정한 것"이라며 "결정에 흔들림 없지만 그렇다 해도 만약 의료계에서 이 부분에 대해 조정의 의견이 있거나 하다면 합리적 근거, 의료계의 통일된 의견을 제시한다면 논의할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저희가 어떤 시한을 정한다거나, 언제까지 안 내면 안 되겠다 이런 가이드라인은 가지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이 관계자는 "신속하게 제시해달라는 바람이 있을 뿐이지 그것을 저희가 강요한다거나 어떤 식으로 해오라거나 등 물밑에서 어떤 내용으로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며 "소통, 연락 부분에서 단절되거나 끊어진 것은 아니다. 구체적 안이 어떻게 오느냐에 따라서 향후 검토하는 것에 대해 방향이 정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다만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각 대학이 입학전형 계획을 끝내고 구체화하는 절차는 절차대로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거기에 대해 중단한다거나 그런 것은 전혀 없다. 절차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박 차관도 이날 오후 긴급 브리핑을 통해 '의대증원 1년 유예' 방안에 대해 내부 검토한 바 없으며 향후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입장을 바꿨다.

박 차관은 "2000명 증원은 과학적 연구에 근거해 꼼꼼히 검토하고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통해 도출한 규모"라며 "그 결정을 바꾸려면 합당한 수준의 과학적 근거, 이것들을 제시하고 또 통일된 안이 제시돼야 될 것이다. 이에 벗어난 다른 제안에 대해서는 지금 현 단계에서는 실질적으로 검토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료계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통일된 의견을 제시한다면 열린 자세로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의정갈등, 총선 전 해결 난망.. 2000명 힘겨루기 지속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의정갈등은 총선 전 해결이 어려워 보인다.

지난 7일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회는 총선 직후인 오는 11~12일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 등과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총선 이후에도 쉽사리 결론이 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의료계와 정부가 2000명을 놓고 힘겨루기를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성근 위원장은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의 만남은 의미 있는 만남이었다고 평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의료계의 통일된 안을 보내달라고 하는데, 저희는 초지일관으로 증원 규모 재논의를 요청하고 있다"며 "2000명 증원과 관련해 교육부의 프로세스부터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범석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교 비대위) 공보담당도 "일단 정부에서 협의안을 가져오라고 하니 대화는 하는데 지금까지 상태를 봤을 때 기대할 만한 게 있을지 의문"이라며 "별 의미는 없다고 생각한다. 전공의들이 복귀해야 한다는 표시 같은데 전공의들 복귀를 위해선 2000명을 원점으로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정부는 초지일관 2000명 철회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8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 모두발언에서 "의대정원 2천명 증원은 과학적 연구에 근거해 꼼꼼히 검토하고,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통해 도출한 규모"라며 "국민이 지지하고 있는 의료개혁을 반드시 완수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의 의료개혁 의지는 확고하다. 의료개혁만이 보건의료체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진정성을 가지고 의료계와 대화하고 설득하겠다"며 "과학적 근거와 논리를 바탕으로 더 합리적이고 통일된 대안을 제시한다면 정부는 열린 자세로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오늘부터 의대 35% 수업재개.. 유급에 국시까지 '벼랑 끝'

의과대학생들의 집단 휴학과 수업 거부로 학사 일정이 멈춰섰던 의대들이 속속 수업을 재개, 8일 현재 35%의 의대가 수업에 들어간 것으로 조사됐다. 다음 주에는 17개교가 추가로 수업을 재개하기로 하는 등 수업을 정상화하는 학교가 더 늘 것으로 보인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은 이날 용산 청사에서 브리핑을 통해 "정부와 40개 의과대학은 학생들이 학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의대수업 정상화를 위해 그동안 여러 노력을 기울여 4월 4일 기준으로 12개대학이 수업을 진행했고, 오늘부로 14개교로 늘어나 전체 의과대학의 35%가 수업을 진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다음 주인 4월 15일부터는 부산대, 전남대, 건양대, 단국대 등 17개 정도의 대학이 추가로 수업을 정상화할 계획을 갖고 전력을 다해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수석에 따르면 충남대, 가천대, 영남대 등 지난 4일에 수업을 재개한 12개 대학은 대면수업을 원칙으로 하되, 온라인 수업을 병행하고 있다.

8일부터 수업을 재개한 학교는 경북대와 전북대로 재학생이 각각 650명, 814명이다.

경북대는 우선 온라인 비대면 형태로 수업을 재개하고, 전북대는 대면 수업에 불가피할 경우 비대면 수업을 보충하는 방식으로 한다.

장 수석은 "경북대와 전북대는 지역완결적 필수의료체계에서 중추역할을 할 지역 거점국립대학으로, 교육부 장관이 대학을 직접 방문해 의대 학사 운영 정상화를 위해 학생들의 복귀를 독려해달라고 총장과 대학 관계자들에 협조를 요청한 바 있다"고 밝혔다.

이어 "대학측에서도 의대 학생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수업 재개가 시급하다 판단했고, 그동안 대학본부와 의과대학이 한 뜻으로 협력해 지속적인 개별학생 상담과 설득을 한 결과 오늘부터 다시 수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라고 경과를 알렸다.

대학들이 의대 수업을 8일부터 재개하기 시작한 배경은 집단 수업 거부에 대응한 '버티기'가 한계에 달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수업을 더 미루면 학생들이 집단 유급에 처하고, 본과 4학년은 졸업을 하지 못해 의사 국가고시에 응시할 수 없는 상황이 코 앞에 와 있다는 게 대학가 반응이다.

이날부터 의대생들이 얼마나 수업에 복귀하는지에 성패가 달려 있지만 회의적인 시선이 더 많아 보인다. 사태가 길어질수록 결국 학생들의 피해만 누적되는 만큼 속히 의정갈등을 매듭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각에선 의대생들을 돌아오게 만들기 위한 '압박 카드'라는 분석도 있다. 정부 시책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려 한다는 뒷말도 나온다. 공교롭게도 이날 의대 정원이 늘어나는 32개 대학이 교육부에 교육여건 확충을 위한 재정 지원 수요 신청을 마감하는 날이기도 하다.

그러나 수업을 재개하는 것 만으로는 의대생들이 돌아올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은 개강을 단행하는 대학 관계자들조차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대목이다. 전공의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과 대화 물꼬를 텄지만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