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흠 칼럼] 정당민주주의 역행하는 자가당착의 개혁국회론
22대 국회 출범을 앞두고 민주당이 개혁 국회를 강조한다. 국회를 대표하는 국회의장 후보들도 모두 개혁 국회를 말했다. 사실상 의장으로 확정된 추미애 후보는 물론 중도 사퇴한 후보들의 명분도 모두 ‘개혁 국회’였다. 민주당의 주도권이 관철되는 국회를 개혁 국회로 상정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와의 호흡, 민주당의 승리, 정권교체를 직접적으로 내건 후보도 있었고, 이미 추미애 후보는 ‘의장은 중립이 아니다’고 했다. 국회법에서 의장의 중립성을 강조하기 위해 무소속 규정까지 두고 있음에도 말이다. 민주당 일부에서는 중립을 지키고자 했던 역대 국회의장들을 비난하기까지 했다. 우리가 극복해야 할 개혁 과제인 진영정치, 패권정치를 개혁의 이름으로 거리낌없이 전면에 내걸고 있다.
우리 국회는 늘 문제였다. 근래 10여 년간 정부기관 신뢰도에서도 국회는 최하위였다. 물론 정치에 대한 불신이 국회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 면이 크다. 구조적으로는 한국형 대통령 중심제가 갖는 한계로 보기도 한다. 그래서 민주화 이후 역대 국회의장들은 대통령 중심제의 개편을 국회 개혁의 제1과제로 제시했다. 내각책임제가 아니면서도 국회에 여당ㆍ야당이 있고, 여당 우위일 때는 국회가 무력화됐다. 그나마 여소야대일 때 행정부에 대한 견제기능이라도 발휘했다. 역대 국회 중 활동이 두드러졌던 제헌국회는 여야 정당구조가 만들어지기 전이었고, 13대 전반기 국회의 5공청문회, 20대 전반기의 탄핵소추 등은 모두 여소야대일 때였다.
우리 국회는 대통령 권력을 둘러싼 여야 진영정치의 무대였고, 이에 따른 정쟁의 정치로 비난받았다. 대통령제의 개편을 동반하는 개헌이 어려운 가운데, 대신에 국회 운영의 개혁적인 대안들이 보완되기도 했다. 2002년에는 국회 운영을 책임지는 국회의장의 중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의장 재직시 당적을 갖지 못하도록 했다. 또 헌법(제46조의②)이 규정하고 있는 국회의원의 양심에 따른 직무수행을 뒷받침하고 진영 대결의 정치를 통제하기 위해 ‘당론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는 자유투표 조항을 국회법에 명시했다(제114조의2). 놀랍게도 최근 민주당은 이와 반대되는 국회 운영을 하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밝히고 있다. 의장 후보들은 의장의 중립성을 조롱하고, 이재명 대표는 당론을 지켜야 한다는 단일대오를 강조한다.
18대 국회 임기 말에는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을 도입하기도 했다. 전기톱까지 난무한 몸싸움 국회를 반성하면서 물리적 대결을 통제하고 대화와 토론을 통한 협의의 국회를 운영하자는 취지였다. 무제한토론제(필리버스터), 안건신속처리제, 국회의장 직권상정 제한 등이 그때 도입된 것이다. 질서유지나 의장직권상정제한 등은 직접적인 효과가 있었지만, 극단화돼가는 진영정치는 협의와 타협의 국회 운영이라는 제도의 취지를 무력화시켰다.
극단화된 진영정치의 문제다. 헌법과 국회법이 규정한 대로 ‘국가이익과 국민을 위해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는’ 대의민주주의의 전당이 아니라 여야 정당들의 대리전 무대가 되고 있다. 영국 같은 양당제적 내각제 국가에서 아무래도 정당 대결이 강한 경향이 있으나, 우리나라는 대통령 중심제임에도 국회가 완전히 진영정치의 대리전 무대가 되고 있다. 동물국회에서 바뀐 식물국회 현상도 여기에서 비롯되고, 국민들의 국회에 대한 불신도 이 때문이었다.
21대에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원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의 역할이 크다. 그만큼 책임도 크다. 이 점에서 국회 운영을 책임질 의장 후보나 당 대표의 최근 발언을 보면 심히 우려된다. 한국 국회는 정당이 주도한다. 정당 내부의 자유토론과 다양성이 작동되는 정당민주주의 없이 대의민주주의 전당으로서 국회를 기대하기 어렵다. 당내에서 국민의 보편적 의사보다 특정 정파적 시각만 강화된다면 민주당의 혁신회의가 내건 ‘당원중심 정당혁신’과 ‘국민주권 정치개혁’은 공존하기 어렵다. 당원과 보편적 국민이 유리되기 때문이다. 국민과 유리된 정당 독점으로 충원되는 국회의원들의 자질 또한 ‘국민의 눈높이’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총선 결과 의석으로는 압도적 승리를 거뒀지만, 최근 상대적으로 저조한 정당 지지율이 그 우려를 반영해 주고 있다.
역대 여소야대 국회가 그나마 호평을 받았지만, 21대 후반기 국회가 유일하게 예외가 된 배경도 마찬가지다. 10건에 이르게 될 윤석열 대통령의 과도한 거부권 때문이라 말하지만, 보다 큰 요인은 알다시피 사법리스크를 둘러싼 공방이 민생정치를 뒷전으로 밀어냈기 때문이다. 원내의석은 여소야대였지만, 국민 신뢰도에서 명실상부한 여소야대를 뒷받침하지 못했다. 60% 정도의 원내의석으로 압도적 다수였지만 국민 지지도는 30%대로 국민의힘과 비슷하거나 때로는 더 밀리기도 했다.
결국 22대 국회의 개혁 과제는 민주당의 패권 실현이 아니라 보편적 민심에 충실한 대의정치의 구현이다. 무엇보다 정당민주주의에 역행하면서 민주주의의 전당인 국회 개혁을 말할 수 없다. 요즘 이재명 대표 연임 추대론과 더불어 자주 등장하는 ‘이재명 대표와 함께’ 구호는 민주주의 체제의 공당이 아니라 카르텔세력이나 유사 종교집단을 연상시키고 있다. 한국 정당정치, 매우 위태롭다.
김만흠
폴리뉴스 논설고문
전 국회입법조사처장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박사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
서울신문 독자권익위원장
가톨릭대학교 교수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