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흠 칼럼] 정당민주주의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2024-06-06     김만흠(폴리뉴스 논설고문, 전 국회입법조사처장)
더불어민주당은 22대국회 당선인 워크숍에서 '당원 민주주의' 강화를 결의했다.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김만흠(폴리뉴스 논설고문, 전 국회입법조사처장)] 민주당이 당원중심 대중정당을 내세우고 있다. ‘국민주권 정치개혁’ ‘이재명과 함께 정권교체’와 더불어 한묶음의 3종 세트로 선창되고 있는 요즘 민주당의 혁신구호다. 당원 중심의 정당, 국민주권의 정치, 모두 민주주의 원리에 부합하는 좋은 말이다. 그러나 당연한 말이 새삼 강조되고 있는 배경을 보면, 오히려 민주주의가 왜곡될 수 있는 포퓰리즘의 동원 전략이 있다. 이재명 대표 연임 추대가 당연시되는 ‘이재명과 함께 정치개혁’ 구호 또한 민주 정당과 어울리지 않는다. 카르텔의 보스나 종교집단의 교주에게나 헌사하는 합창이다.

돌출돼 보이던 수준의 홍위병들이 이제 아예 주도세력이 되었고, 당헌도 이재명 대표의 행보에 맞춰 정비하고 있다, 비민주적 1인체제를 노골화하면서도 거리낌이 없다. 정당민주주의의 강화가 아니라 자의적으로 민주주의 원칙들이 재단되는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의 침대가 되고 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당은 각기 다른 조직운영 원리나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 정당의 특성에 따라 주권자 국민들은 선택하거나 지지하면 된다. 물론 헌법과 정당법에 규정하고 있듯이 정당의 목적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부합해야 한다. 자유로운 자발적 조직이지만 사조직과는 다르다. 정치참여에서 우선권을 부여받고, 국가보조금도 지원받는 공적인 정치조직이다. 이런 공적인 조직이 카르텔 사조직처럼 된다거나, 정당민주주의에 반하게 되면 명실상부한 공당으로서 정당이 아니다. 더구나 거대 정당의 경우 막강한 독점적 특권을 누리면서 한국정치를 좌우한다. 이점에서 정당, 특히 거대정당은 공적 기구로서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게 자명하다. 

민주당에서 당원 중심 대중정당이 다시 전면에 부상한 것은 국회의장 경선 파동을 거치면서다. 당의 주류와 강경세력이 밀었던 추미애 후보가 예상과 달리 패배하자 나온 것이다. 우원식 후보로 결정된 민주당 의원들의 선택이 당원들의 뜻과 배치된다며 당원 중심 정당이 되어야 한다고 나섰다. 과연 의원들의 뜻이 당원 전체의 의사에 반하는 것인지, 국회의원과 국회를 대표하는 의장의 선택에 당원들의 직접 개입이 적정한 것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크다. 

그런데 민주당에서 당원, 책임당원의 권리를 강조할 때마다, 이른바 ‘개딸’들의 횡포가 두드러졌다. 이재명 대표가 당원들의 직접 참여를 강조하면서 당사에 개방 공간으로 마련한 ‘당원존’은 사실상 강경당원 개딸의 무대가 됐다. 당내 이견을 제시하거나 비판의견을 내기도 하는 정치인을 수박‘으로 규정하고 집단 성토했다. 알다시피 ’수박‘의원들의 사무실이나 행사장에 몰려가 욕설까지 퍼부으며 비난했고, 그 ’수박‘의원들은 대부분 22대 총선 공천에서 탈락했다.

후안 린쯔(J. Linz) 등 여러 정치학자들이 정리하고 있듯이, 가짜와 진짜 민주주의를 구분하는 중요한 척도 중의 하나가 이견에 대한 비폭력, 관용 여부다. 사실상의 폭력을 가하는 ‘개딸’들의 행태와 민주주의는 공존할 수 없다. 당원주권 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 실제는 반민주적 전체주의를 주도하고 있는 셈이다. 이재명 대표가 간혹 이런 극단적 행위를 자제하라는 입장도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여전히 이재명 대표의 포퓰리즘 기반이 되고 있다.    

물론 총선에서 지지는 당원 중심 민주당이 결국 국민주권을 반영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할 지 모른다. 유감스럽게도 양당 독점의 체제에서 상대적으로 승리한 결과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된다. 선거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대장동 리스크, 돈봉투 사건에 공천 파동까지 겹치면서 민주당의 대패가 점쳐지지 않았던가. 그러다가 이종섭 대사임명 출국 강행 건에 의대증원 밀어붙이기 등으로 윤대통령 리더십 문제가 불거지면서 정권심판을 자초한 결과가 22대 총선 결과였다. 그동안 민주당 스스로도  강경세력이 주도하는 민주당 내부의 기조가 일반의 민심과는 괴리는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당내 경선에서 점차 일반 국민의 여론을 배제하고 당원들의 참여비중을 높여온 사실이 말해준다. 총선 결과는 민심을 동반했던 민주당의 승리라기보다 불량정치 세력들의 하향경쟁에서 민주당이 상대적으로 승리한 것이다. 요즘 한국정치의 실상이자 비극이다. 

민주당은 여소야대를 넘어 압도적 다수로 사실상의 분점정부를 구성하면서 한국정치를 주도하고 있다. 심각하게도, 민주당의 프로크루스테스 침대 정치는 정당 내부뿐 아니라 이미 국가적 차원에서도 일상화됐다. 기존의 민주주의 원리나 제도가 아니라 자신들에 유리한 자의적 기준으로 재단한다. 범죄 혐의로 기소가 되면 검찰 책임이고, 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나도 판사가 아니라 검찰독재 탓이라고 한다. 연예인은 1심에서 유죄만 나와도 방송출연 금지를 시키지만, 그들은 2심까지 유죄 확정돼도 끄덕없이 국민의 대표가 된다. 1심에서 34건의 의혹이 모두 유죄 평결을 받자 부패한 판사 탓을 하면서 진짜 재판은 11월 대선이라며 사법적 판단까지 포퓰리즘으로 뭉게는 트럼프와 나란히 선다. 오히려 요즘 민주당 주변의 행보는 트럼프보다 더해 보이기도 한다. 판사의 법률 적용까지 별도로 심사하겠다는 이른바 ‘법 왜곡죄’를 발의하겠다고 한다. 판결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3심제도가 있고 헌법재판소도 있는데 말이다. 황당한 그들만의 침대 기준이다.

여․야, 이쪽저쪽 모두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한다. 대통령과 여당은 양극화와 진영정치를, 민주당과 여당은 검찰독재를 위기의 원인이자 현상으로 말했다. 김진표 국회의장도 퇴임 회견에서 양극화의 진영정치를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다. 리더십의 문제와 극단화된 진영정치 구조의 문제다. 리더십은 교체하면 된다. 교체를 위한 유력한 대안 주체가 더 심각하다. 요즘 민주당의 운영 방식으로 정부조직을 꾸리고 국정을 운영한다고 가정해보라. 리더십의 실패로 국민신뢰를 잃고 있는 윤석열 정부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민주주의로 포장될 수 없는 일이다. 마음대로 재단해 통치하는 정치는 말 그대로 전제정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