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김정은·푸틴, 북러정상회담서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 체결.. 북러 밀착에 동북아 정세 급변
푸틴, 24년만 방북.. 김정은, 새벽 2시에 공항 마중 나가 영접 금수산 태양궁서 북러정상회담..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 체결 푸틴 "침략당하면 상호지원" 동맹 수준으로 격상 북-러, 군사·에너지·철도·우주·보건 등 전 분야 협력 전망 외교 전문가 "북러 밀착, 양국 모두 이득.. 미국 입지 좁아질 것" 한중, 푸틴 방북 시각차 "깊은 우려" vs "평화 기여하길" 美, 푸틴 방북에 "크게 우려" "한반도 확장억제에 초점"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9일 북러정상회담을 갖고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을 체결했다. 이로써 양국은 경제, 군사,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보다 활발한 교류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협정 당사자 중 한쪽이 침략을 당할 경우 상호 지원을 제공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만큼 양국 관계는 동맹 수준으로 격상됐다는 평가다.
이번 북러정상회담은 북한과 러시아 모두에게 외교적 성과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는 최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동유럽 국가에 이어 북한과 우호 관계를 맺으며 외교적 영향력을 확대했다.
북한도 중국과 교역량이 회복되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와 관계 개선에 성공하면서 더 이상 미국이나 한국에 매달릴 필요 없이 경제와 군사 발전을 꾀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푸틴, 24년만 방북.. 김정은, 새벽 2시에 공항 마중 나가 영접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9일 새벽 2시경 북한 평양에 도착해 국빈 방문을 시작했다.
푸틴 대통령의 방북은 2000년 7월 19∼20일 이후 24년 만이다. 당시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지도자로선 처음 북한을 찾아 김 위원장의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하고 북러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2019년 4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북러 정상회담, 지난해 9월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 북러 정상회담을 이어 푸틴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직접 만나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지난달 집권 5기를 공식 시작한 이후 가장 먼저 중국(5.16∼17)을 찾았던 푸틴 대통령은 벨라루스(5.23∼24), 우즈베키스탄(5.26∼28)에 이어 북한을 네 번째 해외 방문지로 택했다.
푸틴 대통령은 방북 일정을 마친 뒤 19일 오후 베트남으로 향한다. 그는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의 초청으로 19∼20일 베트남을 국빈 방문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늦은 시간임에도 직접 공항에서 푸틴 대통령을 영접했다.
연합뉴스와 타스, 리아노보스티 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이 비행기 트랩을 걸어 내려오자 미리 활주로의 레드카펫 위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 위원장은 푸틴 대통령의 어깨를 감싸 안고 친밀감을 표시했다.
두 사람은 두 차례 포옹 후 긴 악수로 인사를 나눴으며 이후 한복을 입은 북한 여성이 고개를 숙이고 푸틴 대통령에게 환영의 꽃다발을 전달했다. 이후 푸틴은 김 위원장의 안내를 받으며 공항에 미리 도열해 있던 북한측 고위 관리들과 악수를 나눴다. 두 사람은 시종 밝게 웃으며 미소를 보였다.
푸틴과 김정은은 러시아산 최고급 리무진 '아우르스'에 동승해 금수산궁전까지 함께 입장했다.
금수산 태양궁서 북러정상회담..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 체결
푸틴 "침략당하면 상호지원" 동맹 수준으로 격상
김정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19일 금수산태양궁에서 북러정상회담을 진행했다.
스푸트니크 통신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이날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전세계 상황이 빠르게 변하고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며 "이런 배경에서 우리는 앞으로 러시아, 러시아 지도부와 전략적 소통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북·러 관계에 대해 "지난 세기 조·소련 시기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새로운 번영의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고 평가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김 위원장은 또 "북한은 세계의 전략적 안정과 균형을 유지하는 데 있어 강한 러시아의 중요한 사명과 역할을 높이 평가한다"며 "러시아 정부와 군, 인민이 주권과 안보 이익, 영토보전을 수호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서 특별군사작전(전쟁)을 수행하는 데 전폭적인 지지와 연대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정책을 포함해 러시아 정책에 대한 (북한의) 일관되고 확고한 지지에 감사한다"고 화답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는 수십년간 미국과 그 위성국의 패권적, 제국주의 정책에 맞서 싸우고 있다"며 "양국 간 소통은 평등과 상호 이익에 관한 존중을 기반으로 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작년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결과로 우리는 오늘날 양국 관계 구축에 있어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뤘다"며 "오늘, 장기적으로 양국 관계의 기초가 될 새로운 기본 문서가 준비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과의 회담 성공을 확신한다며, 차기 북러 정상회담은 모스크바에서 열리길 기대한다고 초청 의사를 밝혔다.
이날 양 정상은 장기적인 북러 관계의 토대가 될 새로운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을 체결했다. 이로써 북러 관계는 선린 우호 관계에서 사실상 동맹 수준으로 격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회담 뒤 푸틴 대통령은 "오늘 서명한 포괄적 동반자 협정은 무엇보다도 협정 당사자 중 한쪽이 침략당할 경우 상호 지원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이는 1961년 북한과 옛 소련이 체결한 '조·소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조약(조·소 동맹조약)'에 포함됐던, '유사시 자동군사개입 조항'의 부활에 가까운 수준으로 해석된다.
푸틴 대통령은 새 협정을 토대로 러시아와 북한이 군사 분야에서 협력할 것이며, 군사 기술 협력을 발전시키는 것도 배제하지 않는다며 북러 군사 밀착을 심화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북-러, 군사·에너지·철도·우주·보건 등 전 분야 협력 전망
외교 전문가 "북러 밀착, 양국 모두 이득.. 미국 입지 좁아질 것"
북한과 러시아가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을 체결함에 따라 양국은 군사분야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영역에서 협력 관계를 공고히 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회담에 참석한 인사들의 면면만 봐도 어느 정도 짐작이 된다.
스푸트니크 통신에 따르면 북한 측에서는 김덕훈 내각 총리, 최선희 외무상, 박정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윤정호 대외경제상 겸 북러경제공동위원장, 김성남 당 국제부장, 임천일 러시아 담당 외무성 부상 등 주로 외교, 군사 분야 대표들이다.
반면, 러시아 측에서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과 안드레이 벨로우소프 국방장관을 비롯해 에너지, 교통, 철도, 우주, 보건 등 분야 수장이 참석했다.
특히, 이번 회담에 보리소프 우주공사 사장도 참석한 만큼 러시아가 북한의 우주기술 발전을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9월 김 위원장의 방러 당시 북한의 인공위성 개발을 도울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또, 경제분야 협력도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석유 등 에너지를 담당하는 노박 부총리와 코즐로프 천연자원부 장관이 회담에 참석했기 때문이다.
스타로보이트 교통장관과 벨로제로프 철도공사 사장은 양국의 철도 협력을 논의했을 가능성이 있다.
푸틴 대통령이 전날 노동신문 기고문에서 인도주의적 협조를 발전시키겠다고 언급한 가운데 무라시코 보건장관이 참석한 것을 볼 때 의료 분야 협력도 예상된다.
외교 전문가들은 이번 북러 정상회담으로 양국이 모두 외교적 성과를 거두게 됐다고 평가하며 결국 한반도에서 미국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19일 유튜브 김어준의뉴스공장에 출연해 "러시아가 북한을 군사적으로 지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경제적으로 북한을 도와줄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정세현 전 장관은 "국경 철도는 이미 개통이 곧 시작되는 것 같다"며 이를 통해 북한 노동자들을 러시아에 유치하고, 러시아는 현대화된 장비와 원부자재를 제공할 것으로 전망했다.
러시아 전문가인 제성훈 한국외대 교수는 같은 방송에서 "러시아는 유라시아 동부에서 전략적 안정이 훼손되고 있다고 본다"며 "한미일 삼각협력이 강화되고 대만의 의해서 위기가 고조되고 남북 갈등이 심화되면서 전략적 안정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안정화 시켜야 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즉,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가 북한과의 협력을 통해 동북아 지역에서 힘의 균형을 유지하려 한다는 것이다.
국립외교원장을 지낸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도 "미국과 서구가 계속 압박을 하다 보니 벨라루스, 우즈베키스탄, 북한, 베트남까지 대항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며 같은 시각을 보였다.
그러면서 김 의원은 북한도 러시아와 협력을 통해 한국이나 미국과 관계 개선을 서두르지 않게 됐다고 분석했다. 즉, 북한이 과거 문재인 전 대통령 시절에는 남한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미국과 수교를 맺으려 했으나 이제는 러시아를 대안으로 삼게됐다는 것이다.
한중, 푸틴 방북 시각차 "깊은 우려" vs "평화 기여하길"
이번 북러 정상회담에 대해 한국은 깊은 우려를 표명한 반면 중국은 러북 간 교류가 역내 평화에 기여한다는 입장만 보여 시각차를 드러냈다.
한중 양국의 외교부와 국방부가 참여하는 한중 외교안보대화가 전날부터 열렸다.
한국은 김홍균 외교부 1차관, 중국은 한반도를 포함한 아시아 지역 양자 업무를 담당하는 쑨웨이둥 외교부 부부장(차관)이 각각 수석대표로 참석했고, 각 9명의 외교·국방 관계자가 배석했다.
우리 측은 회의에서 최근 북한이 탄도미사일, 오물풍선 살포 및 위성항법장치(GPS) 전파 교란 등 일련의 도발로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가운데 푸틴 대통령의 방북이 이뤄지는 데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푸틴 대통령의 방북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저해하고 러북간 불법적 군사협력의 강화로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라는 단호한 입장도 표명했다.
또 러북 간 군사협력 강화에 따른 한반도 긴장 조성은 중국의 이익에도 반하는 만큼 중국 측이 한반도 평화·안정과 비핵화를 위해 건설적 역할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중국 측은 "중국의 대(對)한반도 정책에 변함이 없다"면서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건설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의 방북에 대해서는 "러북 간 교류가 역내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기를 바란다"는 입장만 냈다. 앞서 린젠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3일 "원칙적으로 중국은 러시아와 관련 국가(북한)가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발전시키는 걸 환영한다"고 밝힌 점에선 러북 교류에 환영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美, 푸틴 방북에 "크게 우려" "한반도 확장억제에 초점"
미 백악관은 푸틴 대통령의 방북에 우려를 표명했으며 국방부는 한반도에서의 억제력을 유지하는데 초점을 맞추겠다고 밝혔다.
커린 잔피에어 미 백악관 대변인은 18일(현지시각) 백악관 정례브리핑에서 푸틴 대통령 방북과 관련해 "푸틴과 시진핑이 지난달 공동성명에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정치적, 외교적 수단이라고 재확인한 것을 주목한다"며 "푸틴이 이번 회담에서 김정은에게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협력 심화 가능성에는 거듭 우려를 표했다.
잔피에어 대변인은 "러북 협력 심화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세계 비확산 체제를 지지하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을 준수하고, 러시아 침략에 맞서 자유와 독립을 방어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을 지지하는데 관심있는 모두가 크게 우려해야할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는 잔인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도록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하는 동안 우리가 계속 경고해왔던 것"이라며 "어떤 국가도 우리가 우크라이나에서 보는 것처럼 침략 전쟁을 촉진하는 도구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패트릭 라이더 미 국방부 대변인도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이 탄약과 무기를 러시아에 제공해 불법적이고 도발적인 전쟁을 지속하는 것을 돕는 것을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실 것"이라며 "이 문제를 계속 주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과 러시아간 자동 군사개입 협정 체결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에 대해서는 "러북간 구체적인 협정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겠다"며 "우리 초점은 역내 안보와 안정을 증진하고 한국, 일본과의 동맹을 지원하는 확장억제 노력에 계속되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