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훈 칼럼] 김여사의, 김여사에 의한, 김여사를 위한 전당대회
[폴리뉴스 이종훈 명지대 연구교수, 시사평론가] 2006년 ‘김여사 놀이’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운전이 서툰 김여사가 운전대를 잡은 다양한 사진을 온라인에 올리는 놀이였다. 한 개그프로그램에서 비롯된 이 놀이는 당시 꽤 인기였다. ‘김기사, 운전해~’
그로부터 18년, 그러니까 강산이 최소한 두 번은 변했을 요즘 정치권에서는 단연 ‘김여사’가 화제다. 특히 집권 여당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등장한 김여사는 당대표 후보 간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며 인기몰이(?) 중이다. 김건희 여사 문자 ‘읽씹’ 논란이다.
누가 이 문자를 공개했을까? 문자를 주고받은 두 사람만 아는 내용이기 때문에, 김건희 여사 측에서 공개했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논란은 ‘김여사에 의한’ 것이다.
김여사 측은 왜 이 문자를 공개했을까? 한동훈 책임론을 제기하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명품백 논란으로 국민적 분노가 극에 달했던 당시,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김여사의 의사를 받아들여 대국민 사과가 이뤄졌더라면, 총선에서 참패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란 전제하에서다.
한동훈 책임론을 제기함으로써 기대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첫째, 한동훈 낙마다. 당대표 경선에서 중도 포기하거나 최종 패배하는 결말이다. 둘째, 한동훈에 대한 지렛대 확보다. 한동훈 전 위원장이 당대표에 당선된 뒤에도 일정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보험이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초기 구도는 친윤(석열) 대 비윤이었다. 한동훈 전 위원장을 비윤으로 전제하고 나머지 원희룡, 나경원, 윤상현 후보가 친윤인 그림이다. 그런데 김여사 문자 이슈가 제기된 이후 구도가 친김(건희) 대 비김으로 재편되는 형국이다. 이에 따라 ‘김여사의’ 전당대회가 되고 말았다.
김여사는 여야 간에도 쟁점이다. 범야권이 채상병특검법 공세를 강화하는 속에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에 김여사가 개입했다는 설이 제기된 탓이다. 범야권은 이미 대통령이 거부권을 한차례 행사한 김건희특검법 카드를 다시 꺼내 들 태세다.
김여사가 문자를 공개해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영향을 행사하려 한 이면에는 범야권의 공세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데 여당이라는 방패막이가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친윤 당권주자 3인은 김여사 보호에도 열심이다. 사실상 ‘김여사를 위한’ 전당대회가 되고만 한 단면이다.
결국, 누가 대표가 되더라도 김여사 보호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한동훈 전 위원장마저도 김여사가 보낸 문자에 발목이 잡혀 과감하게 손절하기 어려워진 때문이다. 이번에 공개한 문자가 전부가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김여사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어차피 김여사에게 필요한 것은 김기사일 뿐이다. 좌로 가라고 하면 좌로 가고 우로 가라고 하면 우로 갈, 특히 야당을 향해 직진하라고 명하면 앞뒤 재지 않고 들이받을 김기사말이다.
대통령이 전당대회에 자주 출몰해도 논란인데, 이번에는 영부인이 아예 핵심 주제로 자리 잡았다. 한국 정당사는 물론 세계 정당사에서도 이례적인 이런 광경을 보는 심정은 착잡하다. 이런 환청이 들릴 정도다. ‘김기사, 물어~’
이 종 훈
정치평론가
정치학박사
명지대 연구교수
정치경영컨설팅(주) 대표
전 국회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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