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 칼럼] 윤 대통령 죽마고우 이철우 교수의 보석 같은 고언

2024-08-20     유창선 칼럼니스트 정치평론가

[유창선 정치평론가]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출마를 도운 55년 지기 죽마고우이다. 그는 친구인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2027년 5월, 퇴임 후 청와대를 나온 뒤 다시 만나자"며 "이게 마지막 연락이 될 것"이라는 당선 축하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네가 임기를 마치고 나오는 2027년 5월, 그 다음달이 나의 어머니 90세 생신이다. 전직 대통령 신분이 된 뒤 어머니 생신 때 와달라"는 내용도 알려졌다. 혹여라도 ‘측근 정치’ 시비에 휘말리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사려깊은 태도였다.

그 때 "당선인과 나는 이제 아무 관계가 없다"고 했던 이 교수가 작심한듯 윤 대통령을 향한 고언을 꺼냈다. 이 교수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광복회가 올해 8·15 광복절 경축식을 정부와 별도로 개최한 데 대해 “정부가 독립기념관 이사로 일제의 수탈을 부정하는 낙성대경제연구소 소장을 임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장에 ‘반일 종족주의’ 공저자를 임명한 데 이어 독립기념관장에까지 논란이 많은 인물을 임명한 걸 (광복회가) ‘도발’로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느냐”며 “대통령 주위에 역사에 대한 이상한 견해를 부추기는 이들이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일제의 식민지배가 불법 무효’라는 대한민국의 일관된 기조를 분명하게 밝혀 모든 논란을 없애길 바란다”는 주문을 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 광복회 등은 이날 불참했다. (사진=연합뉴스)

 

이 교수는 최근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 임명으로 윤석열 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는 이종찬 광복회장의 아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버지의 편을 들어 그런 얘기를 꺼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뉴라이트의 역사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윤 대통령의 주변에 포진해 있는 사람들을 제외한다면 국민 다수의 공감을 얻는 객관적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교수는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대통령에게 ‘중도 민심을 잃지 말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주위 사람들에게도 ‘중도 민심을 잃으면 곤란하지 않으냐’고 했는데, ‘콘크리트 지지층을 확보해야 중도로 확장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답을 들었다”고 밝혔다. 그래서 “(대통령이) 중도 지향성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한다”는 것이 이 교수의 우려였다. 물론 “아직 임기가 절반 이상 남아 있으니, 국민의 여망을 담았던 윤석열의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고 덧붙이기는 했지만, “어리둥절한 상황이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자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었는데, 좁아져 매우 아쉽다”는 안타까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지켜보다가 오죽이나 안타깝고 답답했으면 55년 지기가 이런 쓴 소리를 공개적으로 꺼냈을까 싶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들이 많은 세상에 대통령이 된 친구를 향해 이런 고언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철우 교수의 고언이 보석과도 같은 말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교수가 꺼낸 우려들은 단지 그 개인만이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납득하지 못하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내용의 것들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절친’이 민심을 대신하여 총대를 멘 것이다.

윤 대통령은 어째서 자신을 대통령에 당선시켰던 넓은 스펙트럼을 스스로 해체시키고 극우의 좁은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우파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아무리 단단하게 다진다 해도 중도층의 마음을 잃으면 정권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기초적인 사실을 왜 모르는 것일까.

하필이면 이철우 교수의 고언이 보도되던 날, 윤 대통령은 다시 ‘반국가세력’ 얘기를 꺼냈다. 윤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우리 사회 내부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반국가 세력들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면서 "북한은 개전 초기부터 이들을 동원해 폭력과 여론몰이, 선전·선동으로 국민적 혼란을 가중하고 국민 분열을 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분열을 차단하고 전 국민의 항전 의지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 윤 대통령의 주문이었다.

이미 느닷없는 이념전쟁을 선포했다가 22대 총선에서 여당에게 최악의 참패를 안겨줬던 윤 대통령이었다. 그런데 다 잊어버린듯 다시 ‘반국가세력 암약’ 얘기를 꺼낸다. 그런 ‘반국가세력’이 대체 얼마나 어디서 ‘암약’하고 있는 것인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지만, 그런 말을 꺼내는 윤 대통령의 모습은 제2의 이념전쟁을 불사하려는 것으로 비쳐진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윤석열 정부가 탄생했던 것은 보수-중도연합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스스로 그 연합을 스스로 해체하고 극우의 좁은 진영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개인의 소신과 철학이 무엇이든, 나라의 통합을 위해 노력해야 할 대통령이 한쪽의 극단적 이념에 갇히는 모습은 국가적 불행이다. 이쯤되면 “대통령 주위에 역사에 대한 이상한 견해를 부추기는 이들이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는 이철우 교수의 말과 똑같은 얘기를 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