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여야 대표 합의한 지구당 부활, '정치 퇴행' 비판에도 20년 만의 부활 '속도전'

한동훈-이재명, 대표회담 후 지구당 부활 공식화 2002년 대선 '차떼기' 논란, 돈먹는 하마 '지구당'.. 2004년 노무현 정부서 폐지 '원외' 한동훈 'TK 공략' 이재명, 지방선거·차기 대권 위해 '지구당 필요' 판단 오세훈 "양당이 짝짜꿍 맞아서 역사 거슬러".. 조국혁신당·개혁신당 반대 입장 김만흠 "지구당 부활보다 지역당 체제 도입이 정치개혁" 경실련 "팬덤정치 강화 될 것".. 진보·보수 언론 모두 우려 목소리

2024-09-04     김승훈 기자
한동훈 대표와 이재명 대표가 합의한 지구당 부활에 속도가 붙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공감대를 이룬 '지구당 부활'이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 2일 관련 법안인 정당법·정치자금법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행안위)에서 소위원회로 회부된 것.

지구당은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의 이른바 '차떼기' 방식의 불법 정치자금이 문제가 되면서 2004년 노무현 정부에서 폐지됐다. 지구당이 '돈 먹는 하마'라고 불리며 불법 정치자금 온상으로 지목되면서 '깨끗한 정치개혁' 차원에서 폐지 됐다. 

이런 가운데 지난 1일 여야 대표회담에서 지구당 부활에 적극 협의하기로 한 만큼 이달 중에 본회의에서 여야 합의 처리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차기 대권을 바라보고 있는 한 대표와 이 대표 입장에서는 지구당 부활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조국혁신당과 개혁신당 등 소수 정당은 물론 언론도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정치 퇴행'이라는 비판을 하고 있다는 점은 부담이다.

한동훈-이재명, 대표회담 후 지구당 부활 공식화

'원외' 한동훈 'TK 공략' 이재명, 지방선거·차기 대권 위해 '지구당 필요' 판단

지난 1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대부분의 의제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지만 지구당 부활에 대해서는 공감대를 보였다. 이후 입법 절차는 순풍에 돛단 듯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회담 다음 날인 2일 국회 행안위는 전체회의에서 김영배 민주당 의원과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각각 발의한 정당법·정치자금법·공직선거법 개정안 등 지구당 부활과 관련된 법안을 일괄 상정해 법안소위원회에서 심사하기로 했다.

또, 김 의원과 윤 의원은 오는 9일 국회에서 함께 토론회를 열고 지구당 부활 여론 조성에도 나선다.

지구당 부활론은 지난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계기로 본격화됐다. 한 대표는 지난 5월 "기득권의 벽을 깨고 정치 신인과 청년들에게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지구당 부활이 정치개혁"이라고 말했고, 이 대표도 한 대표의 주장에 공감하면서 이번 대표회담 합의에 이르게 됐다.

정치권에서는 양당 대표가 공동 발표문을 통해 선언한 내용인 만큼 이르면 이달 26일 열리는 본회의에서 관련 법이 통과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구당은 지역위원장을 중심으로 사무실을 두고 후원금을 받을 수 있는 중앙당 하부 조직을 말한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이 '차떼기' 방식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실이 문제가 되면서 노무현 정부 들어 대대적으로 개편됐다. 현재의 '당원협의회'는 기존의 지구당과 비슷한 구조지만 원외 위원장의 경우 현역 의원처럼 정치 후원금을 모집하거나 사무실을 열지 못한다.

여야 대표 모두 지구당 부활을 원하는 것은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차기 대권을 위한 조직 구성이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원외 대표인 한 대표 입장에서는 지구당을 부활시켜 원외 세력의 지지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 대표 역시 취약 지역인 TK를 포함해 전국적인 지지 기반을 다지려면 지구당 조직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민주당에서는 지구당 부활이 '당원 민주주의 강화'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오세훈 "양당이 짝짜꿍 맞아서 역사 거슬러".. 조국혁신당·개혁신당 반대 입장

다만 지구당 부활은 '정치 퇴행', '돈먹는 하마'라는 비판이 여야를 막론하고 나오고 있다.

2004년 지구당 폐지를 주도한 바 있는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한국정치학회 주관 서울-부산시장 특별 대담회에서 "양당이 짝짜꿍이 맞아서 지구당에 정치 후원회를 만드는 게 가능해질 것처럼 보이는데 역사를 거스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오 시장은 "일하는 국회를 만들고 민주주의의 본질에 가까운 정치를 하는데 원외에서 왜 중앙당의 대표가 필요한가"라고 지적했다.

조국혁신당과 개혁신당 등 소수정당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지구당이 부활하면 양당 정치 구조가 강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김보협 조국혁신당 수석대변인은 1일 논평을 내고 "거대 양당의 이해가 걸려 있는 지구당 부활을 마치 정치개혁의 최우선 과제인양 언급했다"며 비판했다.

신장식 혁신당 원내대변인은 3일 원내대책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지구당이 더는 돈 먹는 하마가 되지 않을 만한 제도적 대책이 논의되지 않은 채 부활만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구당 부활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며 국회 정개특위를 구성해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신 원내대변인은 "이른 시일 내 공식적 국회 절차를 통해 정개특위 구성안을 제시할 것이고, 국회의장님께도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도 지난 5월 개혁신당 연석회의에서 "지구당이 부활하면 지역 토호와 유착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내비쳤다.

김만흠 "지구당 부활보다 지역당 체제 도입이 정치개혁"

경실련 "팬덤정치 강화 될 것".. 진보·보수 언론 모두 우려 목소리

정치 전문가와, 시민단체, 언론도 지구당 부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만흠 폴리뉴스 논설고문은 2일 폴리뉴스 칼럼에서 "지구당 재도입은 그렇잖아도 중앙집중의 전국적인 정당조직을 하위 단위까지 확장해 제도적 특혜를 더 강화하자는 주장에 다름 아니"라며 "정치개혁 차원에서는 중앙당 독점체제를 전제로 한 지구당의 부활보다 지역별 정당을 허용하는 지역당 체제의 도입이 더 긴요하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지난 7월 개최한 토론회에서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구당 중심의 오프라인 공간이 소수의 강성 지지자들이 실권을 갖는 기제로 활용된다면 한국정치는 더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고 우려했다.

조 교수는 "지구당의 부활이 강성 지지자 중심, 팬덤정치 중심의 정당정치 변화를 도모하는 기제가 될 수 있는지 면밀한 고찰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지구당 부활은 돈 많은 사람이나 후원금을 많이 걷을 수 있는 사람에게 유리하고, 지역구 중심의 선거제도를 고착화 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김동원 인천대 행정학과 교수도 "정치신인과 원외 정치인을 위한 기회일지 의문"이라면서 "일부 당원이나 연줄을 대려는 사람들만의 공간이자 정치자금의 유통경로가 되진 않을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언론도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지구당 부활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겨레>는 지난 6월 사설에서 "지구당이 부활하면 일반 국민에게는 어떤 이로움이 있나"라며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여야가 머리를 맞대야 할 만큼 이 문제가 그렇게 시급한 과제인가"라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2일 사설에서 두 대표의 합의를 언급하며 "이번 합의는 지구당이 왜 폐지됐는지를 까맣게 잊은 결과"라며 "지구당은 지난 시절 지역 정치인과 토착 세력의 결탁 공간으로 퇴행했다"고 짚었다.

이어 "20년이 흘렀으니 이젠 달라졌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라며 "여야는 그 후로도 당 대표 선거 때 돈봉투를 돌리다가 적발되곤 했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도 같은 날 사설에서 "두 대표가 지구당제 도입을 적극 협의키로 한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며 "정당정치 활성화란 명분이 있지만 구태 돈정치가 되살아날 것이란 걱정도 나온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