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추석 연휴 '응급실 뺑뺑이' 속출하며 불안 고조.. 정부, '소방대원 입틀막'도 논란
청주 임신부 75개 병원 수용 거부.. 호흡 곤란 환자도 이틀 기다려 병상에 의료계 "올 겨울이 최대 고비.. 암환자 뺑뺑이 나타날 것" 與,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 박차.. 野, 종교계에 중재 요청 정부 "소방대원 언론 접촉시 보고하라".. 소방노조·野 "소방관 입틀막"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추석 연휴 기간 우려됐던 '응급실 뺑뺑이'가 전국에서 속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행히 현재까지 응급 진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사례는 나오지 않고 있으나 연휴 마지막날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국민들의 불안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의료대란 해결을 위한 해법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추석 연휴가 끝나는대로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에 다시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은 종교계가 정부와 의료계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해 줄 것을 요청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추석 연휴 직전 정부가 소방대원들의 언론 접촉시 이를 소방관서장에게 보고하고 소방 활동복 착용 금지 등을 당부하는 내용의 공문을 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당장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와 민주당은 "소방관 입틀막"이라고 반발했다.
청주 임신부 75개 병원 수용 거부.. 호흡 곤란 환자도 이틀 기다려 병상에
의료계 "올 겨울이 최대 고비.. 암환자 뺑뺑이 나타날 것"
18일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주말부터 이어진 추석 연휴 기간 전국에서 응급실 뺑뺑이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4일 충북 청주에서 하혈 중인 25주 임신부가 75개 병원의 수용 거부로 신고 접수 6시간여만에 치료를 받았다. 전남 광주에서는 문틈에 손가락이 절단된 환자가 발생했지만 인근 병원 4곳에서 수용을 거부해 전주로 이송돼 접합 수술을 받았다.
16일에는 대전 동구의 복부 자상 환자가 대전과 충남 논산 등 지역 병원 10곳에서 치료를 거부당하고 4시간 만에 천안의 한 병원으로 이송됐다.
서울도 예외가 아니었다. 서울대병원 응급실 일반 병동은 8시간 이상 대기를 해야 진료가 가능했고, 안과나 이비인후과 등은 응급 진료가 불가능했다. 강북삼성병원도 응급의학과 전문의 1명이 진료 중이어서 응급 환자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호흡 곤란 증상을 겪던 한 췌장암 환자는 지난 15일 응급실 네 군데를 전전하다 2시간 만에 서울대병원에 도착했으나 의료 인력과 병상 부족으로 수액과 수혈 처치만 받았고, 17일 오전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고 나서야 병상을 지정받았다.
세종시에 거주하는 고령의 백혈병 환자도 고열 증세로 관내 종합병원에서 진료를 거부당한 후 160km를 달려 서울대병원에 도착했지만 2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다행히 연휴 기간 응급실 뺑뺑이로 인한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으나 의료계는 겨울이 되면 상황이 더욱 심각해 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채희복 충북대병원·의대 비상대책위원장과 김충효 강원대 의과대학·강원대병원 교수 비대위원장, 박평재 고대의료원 교수 비대위원장은 지난 13일 단식 농성 마무리 기자회견에서 "올 겨울이 최대 고비가 될 것"이라며 "의정 갈등이 장기화한다면 응급실 뺑뺑이뿐만 아니라 암 환자 뺑뺑이도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건강검진이 통상 연말에 집중돼 새로 암 진단을 받은 환자들이 늘어나는데 이 시기에는 호흡기계 질환과 심혈관, 뇌출혈 질환 역시 급속도로 증가하기 때문에 암 환자들이 중환자실 자리를 찾지 못해 뺑뺑이를 도는 경우가 증가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채희복 교수는 "충북대병원의 경우 전공의들이 떠난 뒤 원래 5~6개 정도 열리던 수술방이 3개만 열리고 있다"며 "한 곳은 응급 외상 환자를 수술하고 한 곳은 스탠바이를 해야 해서 정규 수술용은 한곳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與,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 박차.. 野, 종교계에 중재 요청
이에 여야 정치권에서는 의료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추석 연휴가 끝나는대로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기독교, 불교, 천주교 등 종교계가 중재에 나설 것을 요청하고 있다.
'여야의정 협의체 선 출범'을 주장하고 있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17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서 "(여야의정이) 다 같이 책임감을 갖고 이 문제를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응급실 대란 등 현재의 의료 상황에 대해 "불안감을 많은 분이 느끼는 것 자체가 이미 상황은 벌어진 것이고, 이 상황을 해결하고 싶다"며 "지금 이런 상황 앞에서는 정치적 유불리를 누구든 따질 문제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5일 조계사에서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을 만나 의정갈등에 대한 종교계의 중재를 요청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표는 "종교계 어른들이 나서주시는 게 충돌 양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며 "현재 상황에서 중재나 윤활유 역할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이에 진우 스님은 "중재는 종교계가 권유하는 부분에 대해 의료계와 정부가 수용한다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며 "그게 되면 종교계 차원에서 한 번 정부하고도 대화해보고 노력해보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기독교·천주교 등 종교지도자와도 수일 내 차례로 예방해 의료대란 중재를 거듭 요청할 예정이다.
하지만 정부와 의료계의 간극이 워낙 커 추석 이후에도 여야의정 협의체 출범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부는 2천명 수준의 증원은 의료개혁의 핵심 요소이므로 타협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3일 국민통합위원회 성과보고회 및 3기 출범식 자리에서 "현재 구조적 문제를 방치하면 더 이상 우리 사회가 지속 가능하기 어렵기 때문에 국가적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개혁을 더 이상 늦출 수가 없다"고 말했다.
반면, 의료계는 2천명 증원이 잘못된 정책임을 인정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협의체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최안나 의협 대변인은 13일 의협회관에서 의협 등 8개 의사단체의 공동 입장문을 발표하면서 "정부가 잘못된 정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이 사태는 해소되지 않는다"며 "정부의 태도 변화가 없는 현 시점에 협의체 참여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정부 "소방대원 언론 접촉시 보고하라".. 소방노조·野 "소방관 입틀막"
이런 가운데 일부 소방대원들이 '응급실 뺑뺑이' 관련 언론 인터뷰를 하자 소방청이 소방대원들에게 언론 접촉 시 소방관서장 보고 및 소방 활동복 착용 금지 등을 당부하는 내용의 공문을 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당장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와 민주당은 "소방관 입틀막"이라고 반발했다.
소방청의사집단행동비상대책본부는 지난 12일 <구급현장 활동 관련 언론대응 유의사항 알림> 제목의 공문에서 "최근 개별 방송·인터뷰 등에서 개인적 의견이 조직 전체의 공식적 입장으로 오해·왜곡되는 경향이 있다"며 유의사항을 첨부했다.
그러면서 △현장 영상 및 음성물 무단 유출 금지 △업무처리 중 알게 된 사실에 대한 비밀 누설 금지 △소방활동 외 제복 착용금지 △방송출연 및 인터뷰 시 왜곡 우려 있는 개인적 의견 발언 지양 △언론 접촉 시 소방관서장 보고 등을 적시하고 "언론 대응과 관련해 부적절한 사례가 발생할 경우에는 경위 및 내용 등 사실관계를 조사해 관련 절차에 따라 조치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허석곤 소방청장도 13일 '추석명절 비상응급 대응 전국 지휘관 회의'에서 "일부 대원들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정제되지 않은 개인의 의견을 소방의 공식적인 의견인 것처럼 제복을 착용하고 표명함으로써 국민 불안을 조성하고 있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소방활동과 관련해 개인적 언론 접촉이 필요한 경우에는 반드시 소방관서장에 보고 절차를 이행할 수 있도록 조치해주시고 언론 인터뷰에 응할 때에는 소방공무원 복무규정을 준수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자 전국공무원노조 소방본부는 14일 성명을 내고 "코로나 호흡기 질환 발생 전후를 기점으로 병원의 수용거부는 현저히 늘어났고 그 이후로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며 "전공의 사태가 발생하고 이러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119 구급대원들은 힘겨운 현장으로 출동하고 있고 곪을 대로 곪아 터진 것이 지금의 실상"이라고 했다.
언론접촉 시 관서장에게 보고해야 하는 것에 대해 "실정법 위반"이라며 "업무 외 시간의 활동을 보고할 의무가 어느 법에 있는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추석명절 비상응급 대응 전국 지휘관 회의에 국민의 생명을 지킬 대책은 없고 소방관의 입을 틀어막아 위기 상황을 모면하려는 소방청에 깊은 분노와 유감을 표명한다"며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힘들고 지친 구급대원들을 힘으로 통제하고 탄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어루만져주는 것임을 명심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민주당도 15일 브리핑을 통해 "소방관들 입을 단속한다고 의료대란이 감춰지느냐"고 비판했다.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윤석열 정부가 응급실 뺑뺑이 대책을 촉구하는 소방대원들의 입을 틀어막겠다고 나섰다"며 "의료대란의 최일선에서 고군분투하는 소방대원들이 응급실 뺑뺑이의 실상을 알릴까봐 입단속에 나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무총리가 잇따르는 응급실 뺑뺑이 사망을 두고 '가짜뉴스'라고 발끈하니, 이제 현장의 목소리마저 틀어막아 현실을 숨기려고 하느냐"며 "윤석열 정부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들지 말고, 늦었지만 책임감을 발휘해 의료대란 해결에 나서길 바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