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재원 칼럼] 북핵 위협 속 ‘고농축’의 안보 위기

2024-09-18     차재원 칼럼니스트
추석 연휴 전 지난 13일 김정은 위원장은 핵탄두를 만드는데 쓰이는 고농축 우라늄(HEU) 제조시설을 처음으로 공개해 북핵 위협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차재원 칼럼니스트]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추석이면 으레 주고받는 덕담이다. 올해는 이 말 건네기가 적잖이 꺼려진다. “추석(秋夕)이 아니라 하석(夏夕)”. 그냥 우스개가 아니다. 기후 위기가 실감 날 정도로 늦더위가 무섭다. ‘발등의 불’ 의료대란은 점입가경이다. 모두가 기대했던 ‘여야의정협의회’. 명절 연휴 전 출범은 끝내 무산됐다. “추석 땐 절대 아프지 마세요.” 비상 대책에도 응급실 ‘뺑뺑이’ 우려는 더 커졌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하는 상황. 절로 ‘안 아파야지’라고 스스로 되뇔 수밖에 없다. 여기다 연휴 직전 들려온 북한 핵 도발 뉴스. 꼼꼼히 따져보다 새삼 공포와 함께 개인적 낭패감에 전율했다. 비전문가 눈썰미에도 큰 위기가 어른거린다. 국민 목숨과 안전이 북핵의 볼모가 될 처지. 정작 정부와 정치권은 사실상 뒷짐이다. ‘대체 이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담벼락에 고함이라도 쳐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이다. 이런 심정으로 나름의 진단과 위기를 공유해본다.

지난 13일 북한 노동신문 등 관영매체들은 일제히 국무위원장 김정은의 주목할만한 동선을 공개했다. 핵무기 제조에 사용되는 고농축 우라늄(HEU) 제조시설 방문이었다. 공개된 사진에는 원심분리기가 빼곡하게 들어선 실내를 김정은이 둘러보고 지시하는 모습이 담겼다. 이 원심분리기에 천연 우라늄을 넣고 고속 회전시키면 핵무기에 필요한 HEU가 만들어진다. <동아일보>(9월 14일) 추산으론 2천 개 원심분리기가 연간 40kg의 HEU를 생산한다. 현재 영변과 강선 두 곳에만 1만~1만 2천 개의 원심분리기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맞는 정보라면 북한은 연간 200~240kg의 HEU를 생산할 수 있는 셈. 핵탄두 1개에 제조에 25kg의 HEU가 사용되니 매년 8~10개 핵탄두를 만들 수 있다. 사실 북한이 HEU 제조시설을 공개한 건 처음. 지난 2002년 몰래 HEU를 제조한 첩보를 미국이 제시하자 이에 반발, 경수로 발전소 제공을 보장한 제네바 합의를 깨버리기도 했다. 이후 북한은 HEU 제조를 극비에 부쳤다. 그만큼 내밀한 시설을 깜짝 내보인 건 분명한 의도가 있단 분석이다. 언론은 일제히 대선을 앞둔 미국에 대한 무력 시위로 해석했다. ‘핵보유국’ 지위를 내세워 대미 협상력을 키우려는 포석이라는 지적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좀 더 다면적으로, 복합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협상용 시위가 아니라 핵 무력 완성과 이를 바탕으로 한 실제 도발. 이를 위한 치밀한 ‘빌드업’ 과정이 뚜렷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동아일보>는 지난 13일 북한이 전술 핵탄두로 개발한 ‘화산-31’의 소형화, 표준화에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10kt의 핵탄두를 여러 종류의 단거리 미사일과 근거리 유도탄 등에 마치 “건전지 깔아 끼우듯 신속하게 실어 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주목되는 게 대남 타격용 단거리 탄도미사일 3종 세트. ‘북한판 이스칸데르’ KN-23(사거리 800km), ‘북한판 에이태큼스’ KN-24(600km), ‘초대형 방사포’ KN-25(400km)이다. 남한 전역이 타깃이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의 기밀성과 기동성을 위해 이동발사대(TEL) 개량과 대량 생산에도 주력하고 있다. 북한이 지난달 휴전선 전방에 배치했다고 주장한 신형 TEL만 250대. 한 대에 발사관 4개를 갖추고 있어 250대를 모두 가동하면 한 번에 1000발을 무더기 발사할 수 있다. 이 경우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로 다 막을 수 있을까. 재래식 탄두와 함께 ‘섞어 쏘기’한 핵탄두 화산-31이 하나라도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 파괴력엔 좀 못 미친다고 하지만 정말 상상조차 하기 싫다.

만에 하나, 실제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우리 군은 ‘대량응징보복(KMPR)’을 즉각 실행할 것이다. 미국 또한 확장억제 지침에 따라 핵무기 사용까지 포함한 대규모 공격에 가세할 것이다. 북한 정권의 몰락은 예정된 수순이다. 바로 이런 시나리오에 대비해 김정은이 HEU 시설 방문 자리에서 생산 증대를 독려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른바 ‘2차 핵 공격 능력’ 확보를 통한 생존전략이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명예교수는 <중앙일보>(9월 14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이) 실효적인 핵 억제력을 가지려면 적의 핵 일차타격에 살아남아 반격할 수 있는 2차 핵 타격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다. 이를 위해 핵무기를 100~200기 이상으로 늘려 핵의 생존성을 높이려는 의도다.” 현재 북한이 보유한 핵탄두는 50기로 추산된다. 지난 6월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연례보고서 추정치다. 지난해보다 무려 20기 더 늘어난 숫자다. 그만큼 증가 속도가 빠르다. 여기다 즉각 핵탄두로 만들 수 있는 핵물질의 양도 HEU에다 핵발전소에서 추출한 플루토늄을 합쳐 90기에 해당 된다고 추측했다. 이를 감안하면 북한은 올해 안에 2차 핵 타격 능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정말 이곳은 보기만 해도 힘이 난다.” 김정은이 이번 HEU 시설 방문에서 흥분한 이유가 납득된다. ‘한국을 핵공격하고도 버틸 수 있다’. 진짜 이런 자신감을 품는다면? “기회가 되면 남한 초토화”, “전쟁 피할 생각 없다” “한국 완전 수복” 등. 그간 그가 뱉어온 말폭탄이 실제 핵폭탄으로 날아올 수 있다.

그러나 정부 어디에서도 사태 심각성은 그리 감지되지 않는다. “북한의 어떠한 핵 위협이나 도발도 굳건한 한미동맹의 일체형 확장억제 체제를 기반으로 한 우리 정부와 군의 압도적이고 강력한 대응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 물론 이렇게 목소리를 높이긴 했다. 2차 핵 타격 능력을 자신하는 김정은에겐 ‘하나 마나 한’ 경고 아닐까. 과반의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은 아예 침묵이다. ‘김건희 봐주기’나 ‘초부자 감세’ 비판도 중요하다. 그렇다고 북한의 HEU 시설 공개와 생산 증대가 초래할 파장을 결코 가볍게 봐선 안 된다. 그토록 외쳐온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화와 타협. 이럴수록 민주당이 적극 역할을 해야 한다. 정말 걱정되는 대목은 대통령의 리더십이다. 연휴 직전 20%로 추락한 국정 지지율(한국갤럽 조사). 민심의 따가운 질책에도 오직 ‘마이 웨이’식 오만과 독선에 대한 냉엄한 평가다. 그러나 바뀔 조짐은 없다. 추가 하락은 불문가지(不問可知). “식물 대통령”이 국력을 제대로 모을 수 있을까. 우리 안보 위기가 점점 ‘고농축’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