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_K-AI][기고] 국가AI위원회의 3가지 과제...디지털거버넌스·인재개발·초기집중투자
국가AI위, 부처가 미리 짜맞춘 정책∙비전…민간위원은 거수기 위원회 헤드는 행정학 전문가, 민간위원은 교수 출신 ‘태반’ "정부 디지털 거버넌스 합의안 만들어야" "과제에 투자할 것 아니라 사람에 투자해야" ‘찔끔찔끔’ 분산 투자안돼…초기 집중 투자해야 ‘분절적 정책 추진’은 곤란…통합 추진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9월 26일 ‘국가인공지능위원회 출범식 및 제1차 회의’를 주재했다. ‘인공지능 대전환, 도약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슬로건 아래 개최된 행사는 국가 AI 정책 수립의 구심점인 ‘국가인공지능위원회 출범’을 알리고 국가 AI 비전과 청사진을 국민께 제시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에 대해 문용식 전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장이 <폴리뉴스>에 국가인공지능위원회가 실효성있게 활동하기 위한 3가지 과제와 1가지 제언을 보내왔다.<편집자주>
[문용식 전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장] 9월 26일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위원회가 출범했다.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고, 민간위원 30명에 주요부처 장관급 정부위원이 10명이나 참여하는 매머드급 민관합동기구다. 위원회는 우리나라를 AI 3대강국으로 도약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자임했다. 출범식과 함께 개최된 1차 회의에서는 부위원장이 ‘국가 인공지능위원회 비전 및 미션’을 발표했고, 과기정통부장관이 ‘국가 AI전략 정책방향’을 발표했다.
부처가 미리 짜맞춘 정책∙비전…민간위원은 거수기
역시나 정부가 하는 일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어쩌면 5년 전, 10년 전에 하던 행태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인지. 7년전에도 거의 비슷한 주제와 포맷으로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출범했다. 4차위는 민간위원 20명에 정부측 위원 5명으로 출범했다. AI위원회에 비해 그때가 상대적으로 단촐한 게 유일한 차이점이라고 할까. 4차위 출범식 때에도 1차회의를 같은 날 개최했고, 과기정통부 장관이 ‘4차산업혁명 대응을 위한 기본정책방향’을 발표했다.
회의의 진행 시나리오가 머릿속에 쫘악 그려질 정도로 기시감이 든다. 4차위나 AI위원회나, 위원회에 참석한 위원들은 첫 회의에 참석하기 전까지 아무런 사전 정보교환이나 의견교환이 없었을 것이다. 출범식 하는 자리에서 정부측이 미리 준비한 ‘관계부처 합동’ 명의의 정책방향 발표를 듣고, 몇 마디 토론 후에 정부정책을 추인했을 것이다. 이 모양새는 거의 모든 민관 합동위원회에서 완벽하게 반복되고 있다. 부처가 미리 짜맞춘 정책과 비전을 놓고, 민간위원들은 거수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AI위원회 헤드는 행정학 전문가, 민간위원은 교수 출신 ‘태반’
위원회 구성 상의 한가지 아쉬움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고 있기 때문에 AI위원회의 부위원장이 실질적인 위원장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런데 부위원장이 AI 전문가가 아니다. IT, 디지털 전문가도 아니다. 정치학 박사 출신의 행정학 전문가이다. 아무리 AI가 미치는 영향이 폭이 넓고, 다루는 영역이 광범위하다고 하더라도 이건 아니다. AI 기술 개발의 특성과 현안을 꿰뚫고 있는 전문가가 위원회의 책임을 맡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 여러 번 거론했던 미국 인공지능국가안보위원회(NSCAI)는 위원장이 에릭 슈미트였다. 컴퓨터공학 박사 출신에 구글 최고경영자를 역임했던 분이다. 실리콘 밸리의 ‘인싸’ 중의 ‘인싸’였고, IT업계의 구루로 존경받는 분이다. AI 기술과 산업에 정통한 분이 책임을 맡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를 낳는 일이다.
게다가 민간위원 중에 교수 출신이 태반을 넘는다. 이것도 고질적인 문제다. 디지털 혁신이 이루어지는 현장은 대학이 아니라 기업이다. AI 기술은 더 확연하다. 굳이 챗GPT를 만든 오픈AI나 알파고를 만든 구글의 딥마인드 예를 들지 않더라도, 기업이 혁신을 주도한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트렌드이지 않는가. AI위원회는 AI 모델 전문기업, 응용기업, 원천기술 연구기업, 클라우드 기업, 데이터 기업 등이 주도해야 마땅한 일이다. 교수와 변호사, 대기업 경영자가 모여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마 AI위원회에서 하려고 하는 일들이 줄 지어 서 있을 것이다. 출범 초기에 의욕이 얼마나 넘칠 것인가. 그러나 대부분 부처별로 추진중인 AI 응용, AI 확산 사업을 보고 받고 심의 조정하는 일들이다. 지금 보고 예정된 계획만 봐도 AI 핵심인재 양성‧확보 방안, AI기본법 제정계획 (과기정통부), AI 바이오 혁신전략 (복지부, 산업부), 스마트농업 육성계획 (농림부), 중소기업 AI보급 확산방안 (중기부), AI 시대에 대비한 개인정보 보호법제 개선방안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금융분야 생성형 AI 활용 지원방안 (금융위) 등이다. 부처 입장에서는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계획이 없다. 그러나 이 계획들은 부처한테 맡겨 놔도 알아서 다 잘 할 일들이다. 위원회가 감놔라 배놔라 하지 않아도 된다. 구체적인 사업의 현황을 잘 모르는 민간위원이 한두 마디 거든다고 해서 사업의 방향이나 내용이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일 하는 척 시늉을 하기에는 좋지만,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기는 어렵다.
위원회가 성과를 내려면, 잔가지를 쳐내야 한다. 진정 AI전략을 국가 최상위 전략 차원으로 실행할 의지가 있다면, 위원회는 몇 가지 중요과제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굵직한 몇 가지만 하면 된다.
정부 디지털 거버넌스 합의안 만들어야
첫째, AI를 포함해서 국가 디지털 전환(DX)을 책임질 정부 디지털 거버넌스 체제의 밑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국가∙사회의 디지털 대전환을 총괄하는 국가 CDxO (Chief Digital Transformation Officer)는 누구인가? 위원회는 이 문제에 답을 내놓아야 한다. AI의 발전에는 알고리듬과 모델을 개발할 기술력, 방대한 데이터, 막대한 컴퓨팅 파워 등이 필수요소이다. 어느 것 하나 기존 부서별 사일로 체제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AI를 훈련시키는 데 필요한 충분한 데이터의 확보조차 거버넌스의 조정력 없이는 해결하기 어렵다. 전략적 돌파구를 낼 힘이 필요하다. 거버넌스의 힘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AI 국가전략은 탄력을 받을 수 있다. 국가 디지털 거버넌스의 합의안을 만들어내는 일이 위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AI 인재 육성∙유입안은 아직…과제에 투자할 것 아니라 사람에 투자해야
둘째, 우리가 흔히 기승전결이라 하듯이, AI전략은 기승전’인재’다. AI전쟁은 인재전쟁에서 결판이 난다. 미국과 중국은 AI 인재를 놓고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우리는 어떻게 인재전쟁에 대비할 것인가? 전국의 최상위권 이공계 인재들이 모두 의대로만 몰리는 기형적인 쏠림현상을 바꿔놓을 수 있을까? 현실에서 결코 만만치 않은 문제다. 수도권의 소프트웨어 관련 대학 정원은 절대 부족한 실정이지만, 지역 균형발전론에 따른 수도권 대학 정원 규제에 20년 넘게 꽉 막혀 있다. 기업의 수요는 늘고 있으나 소프트웨어 전공자의 배출 인원은 태부족이다. AI+X(인공지능 융합)가 본격화되면 또 다시 전 산업 영역에서 개발자 대란을 겪게 될 것이다. 단기적인 해법으로 외국인 전문직 비자 (E7 비자) 제도를 좀 더 유연하게 완화하자는 제안이 있었으나, 아직까지 해결책은 안 나오고 있다.
인재양성 문제는 과기정통부 한 부처에서 나선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기재부, 교육부,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국토교통부,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등 직접 관련 부처의 조율은 기본이다. 더 나아가 사회 내 가치의 배분과 우선순위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있어야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현재는 혁신성장과 지역균형발전의 가치가 충돌하고, 역동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혁신성장의 가치와 사회안정을 우선시하는 보수적 태도가 충돌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육계 내의 이해관계 갈등 때문에 초중고에서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교육 및 소프트웨어 교육 시간을 제대로 늘리지 못하고 있다.
국가 R&D 정책의 기본방향도 바뀌어야 한다. 과제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연구는 실패해도 연구자는 키울 수 있다. 연구 활동에 가장 왕성한 국내외 포닥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해외 고급인력을 전폭적으로 영입하여 글로벌 차원의 연구전문가 네트워크를 활성화해야 한다. AI위원회가 해야 할 일은 이런 일들이다.
‘찔끔찔끔’ 분산 투자안돼…초기 집중 투자해야
셋째, 과감한 예산 배분과 민간의 AI 투자에 대한 과감한 지원책을 세워야 한다. 미국 빅테크 기업은 수십 조원을 투자하여 엔비디아의 A100, H100 등 고성능 AI반도체 칩을 수십만 장 규모로 구입한다. 그들은 기업의 생존을 걸고 대규모 컴퓨팅 인프라 구축 전쟁에 돌입했다.
우리가 그들과 규모의 싸움을 하기 어렵다는 건 잘 안다. 그래도 기본은 갖춰야 할 것 아닌가. AI가 국가전략기술이라면, 전략과제에 걸맞는 투자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투자를 하려면 찔끔찔끔 분산 투자할 것이 아니라 초기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데이터 네트워크 효과로 인해 갈수록 기술격차가 벌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국가의 자원을 집중 투자하는 일은 기재부나 과기정통부 등 개별 부처에게 맡겨놓아서는 안된다. AI위원회가 국가 최상위 전략 차원에서 마스터플랜을 세워야 겨우 해결될까 말까 하는 과제이다.
데이터→클라우드→Ai전략 ‘분절적 정책 추진’은 곤란…통합 추진해야
마지막으로 제언 한가지. 데이터가 초점이 되면 데이터정책을 세우고, 클라우드가 현안이 되면 클라우드 육성정책 만들고, 이제 AI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니 국가AI전략을 세운다. 이런 식으로 분절적인 정책 추진은 곤란하다.
AI, Big Data, Cloud, 줄여서 ABC 정책은 통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인간의 신체에 비유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AI가 지능을 담당하는 두뇌라면, Big Data는 두뇌에 산소를 공급하는 혈액이고, Cloud는 혈액을 저장∙공급하는 심장과 같다. 깨끗한 산소가 공급되어야 두뇌가 잘 돌아가듯이, AI의 성능은 데이터와 클라우드 인프라가 좌우한다. 클라우드 산업 없이 데이터경제, AI경제 없다. 클라우드 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정책수단을 최대한 동원해야 한다. 국가기관의 민간 클라우드 이용 전환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보안 규제도 현실화하고, 클라우드 이용에 필요한 디지털 서비스 구매제도도 손을 봐야 한다. AI국가전략을 세우면서 데이터와 클라우드에 대한 정책을 소홀히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