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흠 칼럼] ‘장님 무사’ 어깨에 올라탄 주술사라고?
[폴리뉴스 김만흠(폴리뉴스 논설고문, 전 국회입법조사처장)] “총장님은 ‘장님 무사’이고 사모님은 ‘앉은뱅이 주술사’다.” 무사는 주술사의 안내를 받아야 칼을 제대로 쓸 수 있고, 주술사는 무사의 등을 타야 움직이며 칼잡이 실력을 빌릴 수 있다는 것이다. 논란의 명태균씨와 함께 일했던 강혜경씨가 지난 21일 국회 법사위에 증인으로 나와서 한 말이다. 윤 대통령의 정치입문 시기에 명태균이 부부에게 했다는 조언이다. 물론 명태균의 자기과시성 허언일 수도 있고, 전해들은 강혜경씨의 증언이니 직접 확인한 사실은 아니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그럴 듯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끝없이 불거지고 있는 김건희 여사 논란과 국정 상황을 보면, ‘대안적 사실’이라도 그대로 받아들여질 분위기다. 더구나 주술적, 무속적 영감을 화두로 서로 교감했다는 증인의 이야기는 손바닥 왕(王)자 해프닝에서부터 이어져온 대통령 부부의 무속 의존 논란에 힘을 실어준다. 물론 우리도 일상에서 무속에 의존하는 일이 흔하긴 하다. 그러나 국가운영의 최고 책임자가 국민여론이나 전문적 판단보다 무속에 의존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역사에서 보면 국가의 혼란기나 말기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
더구나 영부인을 둘러싼 논란들이 ‘장님 무사와 앉은뱅이 주술사’ 우화를 연상시키듯 해 심히 우려된다. 장님 무사와 다른 개념이지만 일본의 카게무샤(影武者)가 떠오른다. 주군을 호위하는 그림자 무사다. 흔히 주군을 보호하기 위해 대역으로 적을 기만하는 인물, 그런 역할을 뜻한다. 실세를 대신하는 대역이다. 씩씩하게 어퍼컷을 날리는 검찰총장 출신의 대통령이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어렵사리 성사된 한동훈 여당 대표와의 면담 사진을 보면 면담이라기보다는 대통령 비서실장과 한동훈 대표 두 사람을 앞에 앉혀놓고 훈시하는 듯한 모습도 보여주지 않았던가? 시대착오적 권위주의와 장님 무사라는 극단적 의혹이 오가는 윤석열 대통령의 리더십이다.
얼마 전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은 조선일보에 게재하는 그의 ‘간신열전’과 또 다른 칼럼에서, 임금이 경계해야 할 다섯 가지 한심한 일(五寒)을 소개했다. 근래 주류 언론에 소개된 대통령 리더십에 대한 비판으로 가장 통렬한 내용이었다. 한나라 유학자 유향(劉向)이 지은 ‘설원(說苑)’ 권10 경신(敬愼) 편에 실린 내용을 발췌 정리한 것이다. 기자출신 고전연구자답게 시대에 필요한 교훈을 고전에서 찾아 매우 적절하게 소개했다. 해당 부분을 그대로 인용한다.
경계해야 할, “첫째는 정사를 외부 사람에게 맡기는 것(政外)이고, 둘째는 여자로 인한 어지러움(女厲)이고, 셋째는 기밀스러운 모책들이 새어 나가는 것(謀泄)이고, 넷째는 유능한 경사(卿士)들을 공경하지 않아(不敬卿士) 나라가 패망하는 것이고, 다섯째는 나라 안을 제대로 다스리지도 못하면서 나라 밖에만 힘쓰는 것(不能治內而務外)이다.”
어느 것 하나,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다음달 10일로 윤석열 대통령 임기의 절반을 넘어선다.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도 절반이나 남았다. 그런데 정권 말기처럼 수렁에 빠진 채, 성찰의 계기마저 보이지 않는다. 영부인을 둘러싼 논란과 국정 불신에 대한 해법을 듣기 위해 마련했던 여당 대표와의 면담 이후 대통령실의 메시지는 더욱 절망적이었다.
무엇을 반성하고 새롭게 하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당정이 하나가 되는 것에 의견을 같이 했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헌정유린을 막아내기 위해서’라고 했는데 야당의 공세에 대한 방어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야당의 대표 두 사람이 모두 1심 또는 최종심 선고를 앞두고 있는 피고인들이다. 근신해야 할 그들이 공세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은 대통령에 대한 국민 신뢰 부족과 영부인을 둘러싼 격에 안 맞는 의혹들이 피장파장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당정이 하나가 되자고 했다지만, 면담 이후 여당 내 갈등은 더 심각해진 듯하다. 마치 2016년 국정농단에 대한 대응을 두고 여당 내부의 분열로 탄핵까지 이르게 됐던 분위기가 재현되는 느낌이다. 집권 중반인데도 말이다.
사법리스크와 영부인리스크가 공생하고 대통령의 일방주의와 국회다수당의 횡포가 맞서면서 우리의 대의민주주의 체제가 총체적으로 망가지고 있다. 내각제라면, 총선거를 통해 정부와 의회를 새로 구성해야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의 대의제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모두 특권적으로 임기가 보장된 경직된 체제다. 임기 만료 이전이라도 두 세력 중 어느 쪽이 재편되거나 자멸하는 일이 생길지 모르겠다.
김 만 흠
폴리뉴스 논설고문
전 국회입법조사처장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박사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
서울신문 독자권익위원장
가톨릭대학교 교수
한성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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