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흠 칼럼] 탄핵 정국, 제7공화국 체제 전환 모색해야
탄핵정국, 권력구조 개편과 정당정치 개혁이 관건
[폴리뉴스 김만흠(폴리뉴스 논설고문, 전 국회입법조사처장)] 시대착오적이고 황당한 비상계엄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에서 탄핵소추를 당했고, 직무가 정지된 채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내란,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수사 대상도 돼 있다. 직무정지된 그는 위법행위가 없었다는 듯 탄핵과 수사에 맞서 싸우겠다고 한다. 헌재 판결의 향배와는 별도로 윤 대통령은 이미 국민에게 파면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정상적인 복귀는 어려워 보인다. 불량정치의 공생 구조를 만들어온 우리나라 정치체제 자체에 대한 전환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지난 수년간 지속된 불량정치의 공생 구조에서 대통령의 자폭으로 한쪽이 무너졌다. 남은 한쪽인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이 승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대통령에 대한 국민 불신과 김건희 의혹으로 물타기 해 온 공생의 기반이 해소돼 버린 것이다. 이젠 이재명 대표나 민주당이 국민 앞에 오롯이 책임있는 모습으로 심판받고 호소해야 하는 상황이다. 대통령의 자멸로 사법리스크가 면탈된 게 아니다. 민주당의 입법권력 남용과 방탄정치 무대로 퇴락해버린 한국 의회정치도 혁신 과제로 남아 있다.
대통령의 자멸로 붕괴된 여당은 당연히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원내 소수세력에 탄핵 책임론까지 더해져 당의 정치적 전망마저 불투명하다. 책임론과 리더십을 둘러싸고 서로 삿대질하는 자중지란의 모습이다.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은 여전히 사법리스크가 결정적인 질곡이 되고 있다. 그동안 트럼프를 성공모델로 예시까지 하면서 정치적 권력투쟁의 승리로 사법리스크를 넘어가고자 했다. 윤 대통령의 자폭으로 성공한 셈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형사범죄 전과가 대통령 피선거권의 제약요인이 되지 않는 미국과 한국은 다르다. 무엇보다 권력이 사법적 책임을 면탈하는 수단이 된다면 민주공화국의 법치 기반은 무너진다. 탄핵소추 과정에서 민주당이 탄핵 투표에 불참한 국민의힘을 향해서 외쳤던 ‘당내민주주의’ ‘국회법에 규정된 자유투표’ ‘헌법과 국회법에 명시된 국익우선의 원칙’은 민주당 자신을 향해서도 외친 자성의 소리나 다름없었다.
당내 이견을 내는 사람들에 대한 ‘개딸’의 집단린치, 이 대표 체포동의안에 찬성한 의원 색출 소동,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조어를 만들었던 민주당의 22대 총선 공천 파동 등이 옛 이야기가 아니다. 국익 우선을 강조했지만, 정당의 이익도 아니고 이 대표 호위가 제1의 가치였다. 윤 대통령의 극우 유튜버 의존을 지적했던 민주당 자신의 음모론 의존 또한 심각하다. 탄핵 소추 과정에서 대표적인 유튜버 음모론자를 국회 상임위에 출석시켜 근거없는 황당한 유언비어를 공식적으로 유포하도록 자리를 만들어준 민주당 소속 상임위원장의 행태는 우리 의정사 흑역사로 남을 것이다.
“지금부터 말씀 드린 내용은 전부를 다 확인한 것은 아니라고 전제하고 말씀드립니다”라고 시작하는 발언이었다.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생중계 방송되는 국회 상임위에서 발언토록 한 것이다. '정치인 체포조가 아니라 암살조가 가동됐다' '북한 소행 자작극 준비' '김건희 통일 대통령' 등, 엄청나고 황당한 주장들이다. 아직까지 어떤 설득력 있는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극우 유튜버에 의존하다가 결국 시대착오적인 황당한 비상계엄을 선포하게 만들었다고 성토했던 민주당이다. 그런데 사실은 민주당이 대표적인 음모론자인 김어준을 거의 공식적인 프로파간다로 삼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훨씬 더 심각하다. 강준만 교수 등은 그를 '정치무당'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이재명 대표도 김어준 주장에 호응하더니, 역풍을 의식했는지 이번에는 민주당이 '잠정 허구 결론'을 자처했다.
12.3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는 윤 대통령의 비정상적인 리더십이 만든 것이지만, 공의를 잃어버린 극단화된 진영정치가 배경에 있었다. 우리의 정당정치를 주도하고 있는 민주당은 자신들의 역사를 1955년의 민주당으로까지 소급하면서 민주주의를 대표적인 정치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는 재정립하지 못한 채 과거의 유산에 바탕을 둔 권력카르텔이 돼버렸다. 시대는 변화하는데, 시계는 멈춰버렸고, 윤석열․김건희에 대한 성토를 권력투쟁의 도구로 삼았다. 그마저도 자신들의 사법리스크라는 약점으로 보편적 비판여론을 담지 못하고 방탄 전략에 그쳤다. 그런데 44년만의 황당한 비상계엄이 역으로 그 시절 멈춰버린 시계에 궁합을 맞춰준 셈이다.
시대착오적 정치가 폭발한 탄핵정국을 한국정치의 정상화 계기로 삼아야 한다. 8년 전 국정농단 탄핵정국에서도 제7공화국으로의 전환이 제기됐었다. 늘 그렇듯이 기득권자의 현상유지 전략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윤 대통령 임기단축 목적으로 개헌을 주장하던 야당이 탄핵으로 목적을 달성했는지 입을 다물고 있다. 민주주의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극단적 진영정치, 카르텔 세력이 돼버린 정당의 독과점 정치에 대한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대통령 권력을 둘러싼 무한투쟁과 승자독식의 권력구조에 대한 개혁이다.
대통령에게 국가 권력을 5년이나 위임하는 시대는 진즉 아니다. 권력구조 개편을 동반하는 개헌을 통해 제7공화국 체제를 도모하든지, 최소한 카르텔 정당의 독과점체제를 개혁하는 제도개편이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비상계엄과 탄핵의 후유증을 넘어서는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내세울 수 있을 것이다.Ⓟ
김 만 흠
폴리뉴스 논설고문
전 국회입법조사처장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박사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
서울신문 독자권익위원장
가톨릭대학교 교수
한성대학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