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미국 우선' 트럼프, 유럽 버리고 러시아와 밀착.. 외교 지형 격변
트럼프 "EU, 美 망치려 태동.. 25% 관세 부과할 것" 백악관 "나토 회원국, 6월까지 방위비 인상하라" 우크라에 720조 규모 광물채굴권 요구.. 러시아와는 경제협력 유엔서 '러시아 규탄' 반대.. 北·러와 '한배' 유럽 '부글부글' "더는 동맹 아냐".. '자체 핵우산' 논의까지 전문가 "한미일vs북중러 인식 깨야"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트럼프 2기의 외교 지형이 격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간 미국의 최대 동맹이었던 유럽을 버리고 사실상 적대국인 러시아와 밀착하고 있는 것.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주도의 외교안보동맹체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을 향해 방위비 증액을 요구하고 있으며, 정치·경제·외교안보 등 포괄적 측면에서 동맹인 유럽연합(EU)을 "미국을 망쳐놓고 있는 존재"라고 맹비난 하면서 25%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나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 과정에서 러시아와 밀착하며 유럽을 패싱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반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는 연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경제 협력 의지를 내비쳤다.
기존의 가치를 버리면서 경제적 이익만을 강조하는 트럼프식 외교가 펼쳐지고 있는 상황인 만큼 한국의 외교도 국익 중심으로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트럼프 "EU, 美 망치려 태동.. 25% 관세 부과할 것"
백악관 "나토 회원국, 6월까지 방위비 인상하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은 단 4주 만에 미국 외교정책을 전환해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의 종식을 예고했다"고 평가했다.
WSJ이 이러한 평가를 내린 것은 트럼프 2기가 '미국 우선주의'라는 기치아래 전통적인 외교 행보에서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탈유럽' 행보다. 미국은 냉전 시기 구 소련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유럽과 끈끈한 동맹을 이어왔다. 대표적인 것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존재다.
이에 미국과 유럽은 정치·경제 등 포괄적 측면에서 동맹 관계라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줄곧 유럽을 향한 반감을 표현하고 있다.
26일(이하 현지시간) 집권 2기 첫 각료 회의에서도 EU에 대한 적대감을 분출했다.
그는 EU를 '미국을 망쳐놓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면서 25%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EU)은 우리 차, 농산물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우리는 EU에 약 3000억 달러(약 430조원)의 적자를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나토 회원국을 대상으로 방위비 인상도 압박하고 있다. 현재 GDP의 2% 수준인 방위비 지출을 5%로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0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10년 전 GDP의 2%를 방위비로 내기로 한 약속을 나토 회원국 중 3분의 1이 이행하고 있지 않다"면서 "6월에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까지 100%(모든 회원국이 GDP의 최소 2%를 방위비로 지출하는 것)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왈츠 보좌관은 또, "그리고나서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대로 (방위비로) GDP의 5% 넘게 지출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며 "유럽은 파트너로서 자국의 방위를 위해 한발짝 더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유럽 주둔 미군도 줄일 계획이다. 1기 행정부 때 동맹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인상했던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2차 세계대전 후 80여년간 미국이 주도해온 나토 집단방위체제까지 전면 재검토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우크라에 720조 규모 광물채굴권 요구.. 러시아와는 경제협력
유엔서 '러시아 규탄' 반대.. 北·러와 '한배'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을 밀어내면서 대신 그 자리를 사실상 적대국인 러시아로 채우려는 모습이다.
'24시간 내 종전'을 공약으로 걸고 집권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2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90분간 통화하고 종전 협상 계획을 전격 발표했다.
이후 지난 18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고위급 회담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미국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패싱하고 종전 협상을 진행하기로 했다.
또, 우크라이나에게는 3년간 지원의 대가로 5000억 달러(약 720조원)를 요구하며 이를 빌미로 광물 채굴 계약을 맺었다. 또, '돈이 드는' 전후 관리 책임은 유럽에 직접 맡긴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이다.
뉴욕타임스(NYT)가 확보한 지난 21일자 협정문 초안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가 광물, 가스, 원유 등 천연자원뿐만 아니라 항만과 다른 기반 시설에서 창출하는 수입의 절반을 미국에 넘긴다는 내용을 담았다. 우크라이나의 자원 수입은 미국이 100% 지분을 갖게 되는 기금에 투입되며, 우크라이나는 기금액이 5000억달러에 달할 때까지 계속 돈을 넣어야 한다.
영국 국제전략연구소(IISS) 나이젤 굴드-데이비스 선임연구원은 뉴욕타임즈에 "미국은 종전 협상을 단독으로 벌이겠다면서 협상에서 배제된 유럽이 돈을 내고 합의 이행을 담당하라고 한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유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시도라는 러시아 주장에 힘을 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불렀으나 푸틴에 대해서는 친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조만간 모스크바 방문 의사도 밝혔으며 러시아와 경제 협력도 논의중이다.
이러한 흐름은 국제 무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25일 열린 유엔총회에서 '러시아 규탄' 내용을 담은 우크라이나 주도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이날 반대표를 던진 러시아, 북한, 이란 등과 같은 편에 선 것이다.
반면, 안전보장이사회에선 '러시아 침략'을 배제한 '분쟁의 신속한 종결'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항구적 평화'를 촉구한 결의안을 직접 제안했고 러시아와 중국의 지지를 받아 채택했다.
한편, 미국이 우크라이나와 유럽을 배제하면서 러시아와의 관계 회복에 힘을 쏟는 배경에는 패권 경쟁국인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이를 '역(逆)닉슨' 전략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1960년대 옛 소련과 중국 간 관계 악화를 이용해 1972년 중국과 수교함으로써 소련을 견제한 점에 착안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푸틴 대통령이 이날 전화 통화를 하는 등 밀착하고 있어 중·러 관계 균열을 노리긴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럽 '부글부글' "더는 동맹 아냐".. '자체 핵우산' 논의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진짜 목적과 별개로 최근의 미국 행보에 유럽은 들끓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서 사무차장보 등을 역임한 스테파니 밥스트는 영국 타임스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더는 유럽의 동맹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자강론'도 퍼지고 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민주당(CDU) 대표는 23일 독일 총선에서 승리한 뒤 안보적 자립을 우선순위로 꼽았다.
총리가 될 것이 유력한 메르츠 대표는 "빨리 유럽을 강화해 단계적으로 미국으로부터의 진정한 독립을 달성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뉴욕타임스(NYT)는 "유럽 지도자들이 대륙 전체의 안보 공백을 메울 방법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고 전했다.
CNN도 "미국이 더는 유럽 안보의 보증인이 아니라는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 장관의 발언은 80년 된 규범을 뒤흔들어 놓았다"며 "유럽은 이제 미국의 도움 없는 세상을 상상하려 애쓰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안보의 최후 수단으로 꼽히는 핵무력 강화를 거론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메르츠 대표는 지난달 현지 방송 인터뷰에서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가 보유한 핵무기를 독일 보호까지 확대하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문가 "한미일vs북중러 인식 깨야".. 다자 구도 필요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 외교 지형이 흔들고 있는 만큼 기존 '한미일 vs 북중러' 구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이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다자 외교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오고 있다.
신범식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장은 27일 노컷뉴스에 "북중러와 한미일의 대립구도라는 경직적 사고를 타파해야 한다"며 "트럼프는 미러 관계를 유화적으로 가져가면서 대중국 견제에 활용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그 틈바구니에서 생겨나는 공간을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도 "러시아는 세계의 새로운 국제질서에서 미중과 함께 세 축을 이루는 나라가 됐을 뿐 아니라 경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나라"라며 "국익의 관점에서 관계를 반드시 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1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국익을 위해서라면 동맹국과의 관세전쟁을 불사할 뿐만 아니라, 적대관계에 있는 나라들과의 대화·협상도 전혀 망설이지 않는다"며 "우리 역시 이 점을 배워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견고한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이란 대원칙을 유지하면서도 국익과 평화를 지키기 위한 실용외교가 절실한 때라는 생각이 든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다자 체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14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통상 정책과 관련, "글로벌 통상 환경 변화에 대응해 중국·일본과 양자 소통을 지속하는 한편, 다자 체제를 활용한 협력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정 본부장은 이날 서울 중구 코리아나 호텔에서 '2025 제1차 동북아 정책 포럼'을 열고 중국·일본 지역·경제 전문가들과 함께 트럼프 2기 출범에 따라 변화하는 글로벌 경제·통상 환경에 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며 이같이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