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트럼프-젤렌스키, 정상회담 격돌 '광물협정 노딜'.. 트럼프식 협상 기술?

미-우, '종전' 조건 광물협정.. '미국 안전보장 조치' 빠져 트럼프-젤렌스키-밴스, 정상회담서 설전 젤렌스키 "미국은 러시아 위협 못 느껴" 밴스 "무례해..감사하라" 트럼프, 우크라 지원 중단 시사.. 젤렌스키 "우리는 미국 필요" "트럼프 '매복'에 젤렌스키 당했다" 의도적 '노딜'? 유럽도 당혹 "美, 자유세계 리더 자격 잃어"

2025-03-02     김승훈 기자
충돌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미-우 정상회담에서 설전 끝에 결국 '노딜' 정상회담으로 파국을 맞이했다. [사진=AFP=연합뉴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28일(이하 현지시간) 미 백악관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양 정상의 거친 설전 끝에 파국을 맞았다. 

당초, 이날 양 정상은 미국의 지원 대가로 우크라이나 광물 협정에 서명을 하기로 했으나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언에 트럼프 대통령과 밴스 부통령이 격렬하게 반응하면서 회담이 조기 종료됐고, 이후 공동 기자회견은 물론 광물협정 서명도 불발됐다.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노딜'은 의도된 시나리오라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노딜' 후 우크라이나 지원 중단 가능성을 시사했고, 젤렌스키는 즉각 "우리는 미국이 필요하다"며 자세를 낮춘 것을 볼 때 결국 트럼프의 협상 기술이 발휘된 것이라는 해석이다.

미-우, '종전' 조건 광물협정.. '미국 안전보장 조치' 빠져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28일 광물협정 체결을 위해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안보 지원액을 5000억 달러(약 720조원)로 추산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광물 협정 체결을 요구해 왔다. 

이에 양국 실무자가 협상을 진행해 26일 잠정 합의안을 공개했다. 

합의안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정부 소유의 광물, 석유, 가스 등에서 발생하는 미래 수익 중 50%를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공동 소유하는 기금에 넣는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 기금은 우크라이나 재건 프로젝트 투자에 사용될 예정이다.

트럼프가 언급한 '5000억 달러'라는 수치는 합의안에서 빠졌지만 미국측에 일방적으로 유지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합의안이 시행되면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희토류 등 광물 자원 채굴 수익을 가지면서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까지 챙길 수 있어서다. 재건 사업에는 트럼프 관련 기업이 맡을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합의안에 '미국의 안전보장 조치'를 포함시키려 했으나 반영되지 않았다.

대신 '미국 정부는 우크라이나가 지속적인 평화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안전 보장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지원한다'는 문구가 담겼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 국가들이 평화유지군을 파견하면 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젤렌스키-밴스, 정상회담서 설전

젤렌스키 "미국은 러시아 위협 못 느껴" 밴스 "무례해..감사하라"

통상의 정상회담은 서로 덕담을 나누며 실무 협의가 끝난 합의문에 서명을 하고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날 트럼프와 젤렌스키의 정상회담은 설전 끝에 파국으로 끝나버렸다. 협정 서명은 물론 공동 기자회견도 모두 무산된 '노딜'이었다.

묘한 기류는 정상회담 전부터 감지됐다.

이날 오전 트럼프 대통령을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나 악수하며 취재진을 향해 "오늘 제대로 차려입고 왔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 발발 후 러시아에 대한 항전 메시지를 담아 외국 정상을 만날 때 군복 차림을 고수해 왔다. 이날도 그는 우크라이나 국가 상징이 새겨진 검은색 셔츠에 카고 바지를 입고 전투화를 신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지적한 것이다.

미 언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 측은 사전에 젤렌스키 대통령 측에 군복을 입지 말 것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감안하면 트럼프는 회담 전부터 젤렌스키에게 불편한 감정을 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미 정치매체 악시오스는 두 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을 짜증나게 한 작은 요인 중 하나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정장을 입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후 시작된 회담에서 두 정상은 광물협정 및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 등에 대한 일반적 의견을 제시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광물협정에 대해 "매우 공정한 협정이며 미국의 큰 약속"이라며 "희토류 판매와 사용으로 많은 돈을 벌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또,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용감했다"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이 평화협정 체결시 러시아의 재침공을 막기 위한 안전 보장 조치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그는 "진짜 안전보장을 위한 첫 문서가 되길 희망한다"면서 광물협정 체결로 미국의 대(對)우크라이나 지원·지지가 지속되길 바란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어 "그(푸틴)는 살인자이자 침략자"라면서 "그들이 우리 땅을 침공했으며 전쟁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멋진 바다(대서양)가 있어서 아직은 (러시아의 위협을) 느끼지 못하지만, 미래에 느끼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당신은 좋은 상태가 아니다"며 "당신은 스스로 그렇게 나쁜 위치에 있게 만들었다"라며 전쟁의 책임이 우크라이나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당신은 수백만 명과 3차 세계 대전을 놓고 도박하고 있다"면서 "당신 나라에는 큰 문제가 있으며 당신은 이기지 못하고 있다"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만약 미국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2주 만에 졌을 것"이라며 "협상에 합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밴스 부통령도 거들었다.

그가 "트럼프 대통령이 평화를 위해 러시아와 외교를 하는 것"이라고 하자 젤렌스키 대통령은 "J.D. 무슨 외교를 말하는 것이냐"고 걸고넘어졌다. 

이에 밴스 부통령은 "당신 나라의 파괴를 끝낼 종류의 외교에 대해 말하고 있다"면서 "집무실에 와서 미국 언론 앞에서 이걸 따지는 게 무례하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당신은 이 분쟁을 끝내려고 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감사해야 한다"고도 했다.

설전 끝에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예정된 광물협정 서명과 공동 기자회견을 모두 취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SNS에 "젤렌스키는 평화를 위한 준비가 안 돼 있다"면서 "그는 평화를 위한 준비가 됐을 때 다시 올 수 있다"라고 썼다.

백악관은 성명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과 밴스 부통령은 미국 국민의 이익을 옹호했다"라면서 "그들은 결코 미국 국민이 이용당하게 두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충돌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 [사진=AFP=연합뉴스]

트럼프, 우크라 지원 중단 시사.. 젤렌스키 "우리는 미국 필요"

이날 빈손으로 백악관을 나온 젤렌스키 대통령은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의회, 미국 국민에 사의를 표한 뒤 "우크라이나는 정의롭고 항구적인 평화가 필요하다"라면서 "우리는 정확히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후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민을 존경한다"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지원 없이는 러시아를 막기 어려울 것"이라며 "미국 파트너를 잃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우리가 나쁜 짓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며 사과는 거부했다. 

그러자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젤렌스키의 사과를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루비오 장관은 CNN과 인터뷰에서 "일이 이렇게 실패로 돌아가도록 한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며 "그가 거기서 적대적인 반응을 보일 필요가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슬슬 젤렌스키가 평화협정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며 "그는 원한다고 하지만 아마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도 했다.

이어 "오늘 밤에도 우크라이나에서는 사람들이 죽을 것"이라며 "우리는 이 갈등을 끝내려고 하고 있고, 지금 전 세계에서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기회라도 있는 유일한 지도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며 우리는 그에게 그렇게 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중단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정상회담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해 "그는 자신을 과신했다"며 "평화를 만들길 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즉각적인 휴전을 원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계속 싸우기를 원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가 끝까지 싸운다면 그리 아름답지 않을 것"이라며 "왜냐하면 우리가 없으면 그는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우크라이나 지원 중단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와 관련, 워싱턴포스트(WP)도 트럼프 행정부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모든 대우크라이나 군사지원 물자 수송을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행정부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그러자 젤렌스키 대통령은 1일 엑스에 장문의 글을 올리고 사태 수습에 나섰다.

그는 "비록 대화가 어려울 때도 있지만 서로의 목표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직하고 직설적이어야 한다"며 전날의 격렬했던 설전에 대해 해명했다.

이어 "우리는 광물 협정 서명을 준비하고 있으며, 그것은 안보 보장을 향한 첫 번째 단계가 될 것"이라며 "하지만 미국의 지원 없이는 (안보 보장이) 어려울 것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할 수 없다면, 미국 동맹국들로부터 명확한 안보 보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 국민들은 우리 국민을 구하는 데 도움을 줬다. 인간과 인권이 최우선이다. 우리는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미국과 강력한 관계를 원하며, 이를 이루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매복'에 젤렌스키 당했다" 의도적 '노딜'?

한편, 이번 광물협정 '노딜'은 트럼프 대통령이 의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밴스 부통령이 던진 미끼를 물었다는 것이다. 

텔레그래프는 트럼프 대통령과 밴스 부통령이 '외교적 매복'(diplomatic ambush)을 꾀했고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에 넘어갔다고 짚었다.

친트럼프 인사인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도 악시오스에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 전에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미끼를 물지 말라"고 조언했었다고 말했다.

그레이엄 의원은 "긍정적인 이야기만 해라"고 충고했었다며 "이제는 젤렌스키와 다시 거래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정상회담이 파국으로 치닫자 회담에 배석한 옥사나 마르카로바 주미우크라이나대사가 절망에 빠진 모습도 언론의 시선을 끌었다.

그는 양측 정상이 충돌하자 놀란 듯 손을 들어 입을 막았고 이마를 짚어 보이기도 했다.

미국 정치권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공화당에서는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할 말을 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어떤 미국 대통령도 할 용기가 없었던 방식으로 미국을 대변해 준 대통령께 감사한다"며 "미국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줘서 감사하며, 미국은 당신과 함께 있다"고 적었다.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부 장관은 "우리 최고사령관이 매우 자랑스럽다"며 "우리는 미국에 대한 정치적 게임과 무례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돌아왔다"고 썼다.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미국이 이용당하고 무시당하던 시대는 트럼프 대통령 덕분에 끝났다"며 "오늘 백악관 집무실에서 목격한 것은 미국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미국 대통령이었다"고 칭송했다.

브랜던 길 하원의원도 역시 "미국 우선주의를 행동으로 보여줬다"며 "우리 국민을 우선시하고 평화를 증진해준 트럼프 대통령과 밴스 부통령에게 감사한다"고 적었다.

친트럼프 성향의 보수 평론가 찰리 커크는 "트럼프 대통령과 밴스 부통령은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이 젤렌스키에게 하고 싶었던 바로 그 말을 면전에서 정확히 했다"고 옹호했다. 

반면 민주당 측에서는 미국이 러시아의 편을 들고 있다는 반응이 나왔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트럼프와 밴스는 푸틴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대신해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도 "트럼프는 80년 만에 가장 피비린내 나는 유럽 전쟁을 시작한 독재자 푸틴의 편에 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킴 제프리스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행정부는 계속해서 세계 무대에서 미국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며 "오늘 회동은 끔찍했고, 잔인한 독재자 블라디미르 푸틴을 더욱 대담하게만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럽도 당혹 "美, 자유세계 리더 자격 잃어"

유럽은 노딜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카야 칼라스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엑스에 "오늘 자유세계에는 새로운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것이 분명해졌다"며 "이 도전을 받아들이는 것은 유럽인들의 몫"이라고 적었다.

가브리엘 아탈 전 프랑스 총리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의 책임은 "전적으로 러시아에 있다"며 "오늘밤 미국은 자유세계의 리더라고 말할 자격을 잃었다"고 트럼프를 비판했다.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 시절의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도 1일 공개된 영국 일간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미국은 더 이상 유럽의 동맹으로 간주할 수 없다"며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 정상들은 2일 영국 런던에 모여 종전에 대한 방안을 강구하기도 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우크라이나 평화유지군 파견에 대한 의견 교환과 함께 유럽 홀로서기의 방안으로 최근 거론되는 자체 핵 억지력 방안도 논의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동유럽을 중심으로 미국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강해 통일된 유럽의 대응책이 나오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강한 자는 평화를 만들고 약한 자는 전쟁을 일으킨다"며 "오늘 트럼프 대통령은 용감하게 평화를 지지했다"고 트럼프의 편을 들었다.

슬로바키아의 로베르토 피초 총리 역시 이날 "즉각적인 휴전 필요성"을 강조하며 "정상회의가 다른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우크라이나에 관한 결론을 내릴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