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윤석열, 한남동 관저 떠나…지지자들과 악수하며 입주 886일만의 퇴거
한남동 떠난 尹, 서초동서 ‘사저 정치’ 본격화하나
[폴리뉴스 김진호 정치에디터] 윤석열 전 대통령이 4월 11일 오후,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이후 일주일 만에 한남동 대통령 관저를 떠났다. 2022년 11월 7일 관저에 입주한 지 886일 만의 퇴거였다.
이날 오후 5시 9분, 윤 전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내자 한남동 관저 앞에는 ‘윤석열을 응원합니다’라는 손팻말을 든 지지자 수십 명이 모여들었다. 차량에서 내린 그는 지지자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포옹하며 약 4분간 인사를 나눴다. 일부 지지자들은 눈시울을 붉혔고, 윤 전 대통령은 짧은 미소와 고개 끄덕임으로 화답했다. 이어 다시 차량에 오른 그는 20여 분 만인 오후 5시 30분, 서초동 사저에 도착했다.
관저를 떠나기 전에는 국민의힘 소속 인사들과 청와대 참모진 일부가 찾아와 마지막 인사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윤 전 대통령은 참모진들과 국민의힘 소속 인사들이 “많이 배웠습니다”, “건강하시길 바랍니다”라는 짧은 작별 인사말을 건네는 데 대해 “고맙다”며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서초동 사저에 도착한 뒤에도 윤 전 대통령은 부인 김건희 여사와 함께 차량에서 내려 대기하던 지지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기자들과는 별다른 언급 없이 사저 안으로 들어갔다.
한편, 대통령경호처는 윤 전 대통령을 위해 약 40명 규모의 사저 경호팀을 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향후 최대 10년간 경호를 받을 수 있다.
한남동 떠난 尹, 서초동서 ‘사저 정치’ 본격화하나
헌재의 파면 결정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윤석열 전 대통령이 11일 한남동 관저를 떠나 서초동 사저로 복귀하면서, 정치권 안팎에서는 그의 ‘사저 정치’가 본격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서초동 사저는 윤 전 대통령이 대통령 취임 이후 약 6개월간 머물던 곳으로, 정치적 기반을 재정비하기에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윤 전 대통령은 이날 퇴거 직후 특별한 메시지는 내놓지 않았지만, 지지자들과의 연쇄적 인사, 정치인들과의 작별 인사 등을 통해 이미 사실상 ‘정치 행보’의 첫 단계를 시작한 셈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조기 대선 국면과 맞물려 윤 전 대통령의 향후 역할을 둘러싼 논의가 벌써부터 회자돼왔다. 특히 그가 서초동에서 비공식 모임이나 정치적 메시지를 발신할 경우, 사실상 당내 계파 결집의 중심축이 될 수 있다는 우려와 기대가 동시에 나온다.
지지자를 향한 메시지와 대선주자 면담 통한 '사저정치' 가능할까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 이후에도 국민의힘 의원들을 만나고 지지자를 향해 메시지를 내면서 차기 대선에서 세력화를 위한 정치 행보를 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 2017년 파면 이후 사저에서 칩거에 들어간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달리 윤 전 대통령이 사저로 옮긴 후 대선 주자와 정치인을 만나며 '사저 정치'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윤 전 대통령은 이미 파면 이후 관저에서 국민의힘 지도부와 여러 대선 주자를 만났다.
10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 5일 관저에서 윤 전 대통령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윤 전 대통령은 나 의원에게 "어려운 시기에 역할을 많이 해줘서 고맙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6일에는 윤상현 의원이 관저를 찾아가 윤 전 대통령을 만났다. 윤 의원은 윤 전 대통령이 신당 창당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전하며, 윤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신당 창당 움직임이 있다는 사실을 은근히 내비치기도 했다.
윤 의원은 이날도 탄핵 반대 집회에서 목소리를 높여온 한국사 강사 전한길 씨와 함께 관저를 방문해 윤 전 대통령을 만났다.
전날(10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철우 경북지사는 이날 출마 선언 직후 관저에서 윤 전 대통령을 만났다고 밝히며, 윤 대통령이 "사람을 쓸 때 가장 중요시 볼 것은 충성심이라는 것을 명심할 것을 당부했다"고 전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 국민의힘 유력 대선 주자 중 하나인 한동훈 전 대표를 겨냥한 발언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처럼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국면과 맞물려 윤 전 대통령이 대선 주자들을 선별적으로 만나고, 이들을 통해 강성 지지층을 대상으로 윤심(尹心)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尹 사저정치 동력에 한계 뚜렷...역풍만 불러올 것이란 비판도 있어
그러나 윤 전 대통령 사저 정치의 동력에는 한계가 뚜렷하고, 되레 역풍만 불러올 것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탄핵선고 전만 해도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인용될 경우 강성 지지층이 격렬히 반발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헌재 결정에 대한 수용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은 데다 시위대 규모도 줄어들어 사저 정치를 견인할 동력이 사라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날 공개된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7일부터 9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천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 결과를 보면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해 64%가 '잘된 판결', 28%가 '잘못된 판결'이라고 답했다.
국민의힘과 윤 전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출당시키고 정치적 관계를 정리하는 게 좋다'는 답변이 50%, '중립적 입장에서 법적 절차를 지켜보는 것이 좋다'는 응답이 27%, '계속 지지하고 정치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좋다'는 답변이 16% 순으로 조사됐다.
이런 상황에서 윤심의 후광은 당내 경선에서 강성 지지층의 표심을 움직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나, 본선에서는 중도층의 외면과 계엄과 탄핵에 대한 책임론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윤 전 대통령 본인의 형사재판과 수사기관의 수사가 남아있다는 점도 사저 정치에 큰 제약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오는 14일부터 윤 전 대통령의 내란 혐의와 관련한 정식 형사재판이 시작되고, 수사기관의 소환 통보도 줄줄이 이어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자연인으로서 재판과 수사에 대응하기에도 벅찬 상황에서 사저 정치에 힘을 쏟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